실시간 뉴스



[민영 KT 1년-중] 고삐풀린 공룡 '공포 분위기'


 

"육식 공룡을 들판에 풀어놓으려면 재갈을 물려라!"

지난해 5월 정부 보유 KT 주식 매각을 앞두고 통신업계의 정부에 대한 요구였다.

국내 최대의 통신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고, 이로 인해 선천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KT를 '민간기업'으로서 시장에 풀기 위해서는 사전에 후발업체들과의 경쟁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제조항을 마련할 경우 KT 주가가 하락, 정부의 주식매각 이익이 감소한다는 이유에서 업계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는 KT 민영화 이후 사후 규제를 가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재갈 없이 들판에 풀린 KT로 인해 이미 유선통신 시장은 설비투자 경쟁과 마케팅 경쟁이 심화돼 두루넷, 온세통신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하나로통신은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공익성보다는 주주 이익과 수익성을 강조하는 민간기업의 특성상 KT에 장비를 납품하는 많은 장비업체들이 고사위기에 처하게 됐다.

관련 장비를 싼 값에 구입,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KT의 경영 노력이 관련 장비업체들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장비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KT, 마케팅 강화로 후발업체들 고사 위기

KT는 민영화 이후 이용경 사장의 경영계약 준수와 매출 상승을 위해 갈수록 마케팅 강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초고속인터넷 신규 가입자 가운데 67.36%가 KT의 가입자로 집계됐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 초고속인터넷 신규가입자 수는 총 69만8천342명. 이 가운데 47만406명이 KT 가입자 이다.

◇상반기 초고속인터넷 신규가입자와 KT 가입자(단위 : 명)

구분 총 가입자 증가 수 KT 가입자 증가 수 비율
'03.6 84,133 44,715 53.15%
'03.5 89,963 50,761 56.42%
'03.4 55,126 49,250 89.34%
'03.3 175,334 118,193 67.41%
'03.2 126,638 76,933 60.75%
'03.1 167,148 130,554 78.10%
698,342 470,406 67.36%

결국 신규가입자의 32% 정도를 나머지 하나로통신, 두루넷, 온세통신, 데이콤, 드림라인등 5개 기간통신 사업자와 부가, 별정통신 사업자들이 나눠 먹는 실정이다.

이는 나머지 사업자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낳고 있다.

반면, KT의 시내전화 가입자를 끌어와야 하는 하나로통신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4% 대의 시내전화 점유율이 높아지지 않은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수익을 위해서는 불공정 경쟁도 불사"...경쟁사

KT의 신규가입자 쏠림현상은 KT가 마케팅을 강화해서 나온 결과라기보다는 '불공정경쟁으로 인한 성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관점이다.

이같은 문제가 결국 민영 KT 출범 이전 통신업계가 요구한 '재갈'의 실체인 셈이다.

통신위원회는 올 상반기에만 KT에 대해 총 10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불공정경쟁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2월 초고속인터넷 부당요금 감면으로 25억원, 역시 2월 시내전화 LLU(가입자 선로 공동활용) 협정위반 20억원, 4월 시내전화 등 부당요금감면 30억원, 6월 KT 재판매, 보조금 지급 29억원(법정 최고액) 등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제재로도 KT의 불공정경쟁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데 있다.

지난 7월 24일 정보통신부는 통신시장의 유효경쟁 체제 구축을 위해 유선시장의 경쟁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정책 목표와 함께 LLU 활성화, 시내전화 번호이동성 대도시 조기 도입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후발 통신업계는 "정책수단 제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수단이 이행되는지 여부에 대한 감시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 LLU나 번호이동성 등 경쟁수단이 시행되고 있으나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하나로통신의 한 관계자는 "LLU에서도 KT의 가입자 선로 이용대가가 높고 가입자 선로를 이용하는데 KT와의 세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공동활용 정책이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장비업계도 고사 위기...이면계약서까지 요구할 정도

지난 5월 정통부 회의실에서는 VDSL 업계 사장단과 KT, 정통부가 한자리에 모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사장은 "KT가 해도 너무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KT가 자사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 터무니 없이 싼 가격에 VDSL 장비를 입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KT가 이렇게 무자비하게 장비 가격을 깎으면 국내에서 장비업체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해외수출에서도 KT의 납품 가격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헐값 수출이 불가피 하다"며 "이면계약서라도 쓸테니 제발 외국에서는 KT가 제값 받고 장비를 구매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비단 VDSL 장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KT가 민영화를 앞두고 도입한 최저가 입찰제는 국내 IT산업 전반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KT에 장비를 납품하는 한 중견장비 업체 임원은 "KT가 자사 수익을 높이기 위해 싼 가격에 장비를 구매하려는 의도를 헐뜯을 수는 없지만 산업 전체가 공생할 수 있는 적정가격은 지켜주는 것이 통신산업 맏형으로서 KT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KT의 완전 민영 체질 변신이 공생 관계의 해법

장비와 후발 통신사업자들의 KT를 향한 '원성'이 이처럼 자자하지만, 한편으론 민영화 이후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KT 입장에서는 '통신산업의 공생'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KT는 유선시장 침체 이후 유·무선 복합, 통신·방송 융합을 통한 새로운 수익원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KT가 새로운 수익원 찾기보다 더 시급한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유통망의 취약성이다. 그동안 KT가 주력해 온 시내전화, 초고속인터넷 등의 상품은 전화국으로 찾아오는 가입자들을 처리하는 것으로도 매출이 창출되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무선랜, VDSL, PCS 재판매 등은 가입자들이 전화국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시내 주요 상권에 유통점을 설치하고 가입자를 유치해야 하는 '유통망 경쟁'이 대단히 중요하다. KT 영업맨들이 길거리로 나서서 기존 통신서비스를 새로운 무선랜이나 VDSL로 교체토록 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KT는 이같은 유통망이 없다.

유통망 취약은 불공정경쟁이라는 파행으로 표현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PCS 재판매. PCS 재판매는 KT가 매출성장을 위해 가장 주력상품으로 꼽고 있는 상품이다.

SK텔레콤, KTF 등 경쟁사업자들의 경우 시내 중심에 고객들을 유인할 수 있는 대리점망을 갖추고 있다. 반면, KT는 여전히 전화국에 앉아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같은 문제로 인해 결과적으로 KT는 직원들에게 판매량을 할당하고 이들을 밖으로 내몰 수 밖에 없으며 KT 직원들은 과다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기존 경쟁사들의 유통망에 KT PCS를 공급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통신시장에서는 여전히 KT의 시내망을 구조분리, KT의 불공정경쟁을 근원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취임한 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은 "시내망 중립화까지도 기대하고 있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KT의 시내망을 분리할 경우 KT의 경쟁력은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통신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정통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KT가 스스로 불공정경쟁의 고리를 끊고 통신산업의 공생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지 않을 경우 시내망 구조분리라는 극약처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현재 KT의 불공정경쟁 활동 지속은 결국 시내망을 잃게 되는 소탐대실의 전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신업계 한 전문가는 "민간기업으로 완전이 변신하기 위해서는 경영방식이나 유통망 구축 등 완전한 체질변신을 동반해야 한다"며 "매출 상승과 주주이익 향상이라는 캐치플레이즈민 내걸고 겉모습만 변화해서는 지속적으로 불공정경쟁을 통한 단기적인 매출증대의 효과만 얻을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같은 겉모습 변화는 산업 전체의 공생관계를 해치고 결과적으로 KT 스스로도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 민영 KT 1년을 지켜본 통신업계의 충언이다.

이구순기자 cafe9@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민영 KT 1년-중] 고삐풀린 공룡 '공포 분위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