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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리미노이드(1회)… 제1장 사라진 지구(1)


 

● 제1장 사라진 지구

똑같은 꿈이다.

아주 캄캄한 공간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둡다. 제의의 냄새가 풍기는 입체적인 타악기의 사운드만이 들려올 뿐 눈을 감았는지 뜨고 있는 것인지 분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다. 혹시 내가 무덤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끔찍하게 무서운 타악기 소리는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산 자의 마지막 숨결인가. 아, 빛이다. 간혹 불빛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누굴까. 누가 보낸 것일까. 저 불빛은 저승길의 안내자인가 보다.

불빛은 서서히 주기적으로 앞에서 뒤로 움직이며 내가 서 있는 공간을 가른다. 아니다 불빛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로 어디론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점점 강력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강한 타악기의 비트 사운드는 나를 무아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나는 최고의 오르가즘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다. 정확히 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서인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길고 긴 어둠의 리미노이드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말한다. 당신은 리미노이드 터널을 지나면서 몽환의 경지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터널을 지나면서 당신은 현실의 모든 지위와 욕망을 남김없이 버려야 합니다. 이제 당신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최고 원로회의 의장이라고 할지라도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학생이든 교수이든, 사장이든 종업원이든, 미혼이든 기혼이든, 대통령이든 거리의 청소부이든, 우리는 당신의 신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은 모두가 새롭게 발가벗고 다시 새로 태어나는 곳입니다. 이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 당신은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극도의 신경불안 상태가 된다. 내가 이건 가위다 가위, 그냥 내버려 두면 나는 죽는 것이야, 하며 힘껏 소리치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려 몸부림친다.

그때 갑자기 어둠을 헤치며 찬란하게 빛나는 작은 공 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것은 하얀 나비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나비를 잡기 위해 몸부림친다. 겨우 잡았는가 싶었지만 나비는 내 손을 뚫고 다시 도망쳐 오른다.

하얀 나비는 그다지 멀리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저 내 손 주변에서 팔랑거릴 뿐이다. 내가 그 하얀 나비를 잡을 때마다 나비는 내게 이렇게 말을 한다. 그가 오고 있습니다. 그가 오고 있습니다. 그가 당신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일어나 그를 맞이하십시오. 일어나 그를 맞이하십시오.

나비의 음성을 들으며 나의 공포심은 한계를 넘어 선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젖을 먹던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며 나비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악-!

노인은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또 그 꿈이었다. 기력이 다 되어서일까 매일같이 똑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요즘은 몸을 가누기가 무척 힘들다. 심지어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도 힘에 벅차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죽을 때가 된 것일까. 하긴 그는 스스로도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체기관과 장기기관을 신품으로 교체하였으므로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머리 속의 뇌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이상 제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세월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의장님, 일어나셨습니까. 네트공화국 400년 6월 6일, 오늘 일정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전 5시 의사당 주변 아침 산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노인은 전자 비서의 음성에 미간을 찌푸리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운 뒤 천천히 창문 쪽을 바라다보았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지만 조금 열려진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 때문에 방안의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실내는 파란 새벽 빛깔로 어슴푸레 밝아 있었다.

"우주과학국"

노인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우주과학국부터 찾았다. 우주로부터 무슨 새로운 전언이 온 것이 있나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침실 공간을 가르며 나타난 홀로그래피 영상은 3차원 입체 TV를 보는 것처럼 우주과학국의 내부를 보여주는가 싶더니 이윽고 당직근무자가 나타나 노인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짤막하게 보고를 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의장님, 불행하게도 21번째 아미타 파이오니아는 여전히 통신 두절 상태이며 다른 20개의 파이오니아는 정상적인 항로를 향해 순항 중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상 보고를 마칩니다."

노인은 짧은 한숨을 내 쉬며 영상채널을 염력기지국으로 바꾸었다. 염력기지국 당직자 역시 특별한 것은 없다는 듯 암기한 책을 읽어 내려가듯 어제와 똑같은 보고를 했다.

"아미타로부터 ESP가 없어?"

"네, 의장님, 아미타의 ESP를 느끼는 직원이 없습니다. 다른 20개의 우주선으로부터는 지속적인 ESP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미타는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난 우주개척선 21대 가운데 마지막으로 출발한 21번째 우주개척선 선장의 이름이었다. 우주선이 모두 동일한 최고 속도로 항진하고 있으므로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어야할 아미타가 실종된 것이 이상했다.

노인은 그에게 가장 큰 희망을 걸었었다. 그의 초감각 능력은 대단히 뛰어났고, 그 역시도 자신만만하게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가 제일 먼저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창문 열어."

노인은 힘없이 웅얼거렸다. 그의 명령과 함께 커튼과 창문이 스르르 열리며 새벽공기가 방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열려진 창문을 타고 들어온 축축한 공기가 방 안 가득 퍼져 나가며 노인의 기관지를 자극했다.

"콜록 콜록."

노인은 기관지가 파열될 정도로 거친 해소기침을 오래도록 계속했다. 오히려 습기가 많은 날이면 기관지에 미세한 먼지들이 달라붙어 해소가 더 심해지곤 했다. 특히 달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는 날이면 그의 기침은 더 심해졌다. 그럴 때면 그의 기와 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가끔 의식을 잃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증세는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나타나곤 했으므로 이것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약에 그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이상증세가 의회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는 당장에 의장직을 내놓아야 할 것이었다.

노인은 핏기 없는 눈으로 여명이 동터오는 세상을 바라다보았다. 지극히 고요하다. 곧 몰아닥치게 될 커다란 우주의 재앙을 애써 위장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북동쪽 하늘에는 미처 사라지지 못한 새벽달이 수줍은 듯이 매달려 있었다. 커다란 보름달이었다. 새벽녘의 보름달은 한밤중의 그 어느 달보다도 더 투명하고 아름답다. 노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평생 저토록 크고 아름다운 달을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저 달이 재앙의 징표라니!

/이대영 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백두대간 이사 animorn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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