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인터넷 패러디 수사 '잣대가 없다'


 

'인터넷 시사 패러디'는 이번 총선의 최대 히트작이다. 수천만 네티즌은 물론이고, 경찰이나 선관위 같은 정부 관계자, 그리고 4.15 총선의 주역이라 할 수도 있는 정치인들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고 나면 수백개의 '정치 패러디'가 새로 나온다.

그렇게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패러디는 때론 악의적으로 비춰지기도한다. 그런데 누구도 여기서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풍자 예술의 힘 때문이다. 잘못된 현실을 눈치보지 않고 질타하면서도 국민한테 환멸의 대상이 됐을 정치를 제자리로 끊임없이 되돌려 놓는다. 인터넷이 망가진 현실 의회 정치에 '사이버 아크로폴리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풍자 예술이 갈 길은 험난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물론이고 경찰과 검찰도 눈에 불을 키고 이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이버 아크로폴리스'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인터넷 시사 패러디가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처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선관위와 경찰은 인터넷 패러디가 "선거법상 사전 선거운동에 걸리거나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특정 단어를 자동으로 검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패러디 작가를 붙잡아 조사하기도 한다.

인터넷 시사 패러디가 '사이버 아크로폴리스'를 창출해낸다 하더라도 없는 사실을 허위로 지어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처벌받아 마땅하다. 특히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 시기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터넷 패러디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개 패러디는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정치적인 사실이고 또 하나는 이를 대중한테 풍자적으로 알릴 수 있는 다른 문화적인 사실이다.

또 이런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패러디는 설 땅도 없고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다. 수천만 네티즌이 허위 사실에 조롱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점이 바로 인터넷 시사 패러디가 정치 개혁에 주는 힘이다.

아마추어만 수사 받는다

대학생 작가 A씨. 지난 8일 밤 자택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연행된 후 3차례 조사받았다. A씨는 '하얀쪽배'라는 아이디로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의 '합성-시사갤러리'와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에 27편의 작품을 올려왔다.

그가 다룬 건 ▲ 친일청산법에 대한 국회의 비정상적 처리 ▲ 일본의 독도망언 ▲ 서청원 의원 석방동의안 문제 ▲ 한민 공조에 대한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 ▲ 대통령탄핵 문제 ▲ 조갑제씨의 친북관련글에 대한 문제 등.

최근의 정치판에서 핫이슈가 됐던 사안들이다.

A씨는 "처음엔 패러디 자체에 대해 문제 삼더니 어제(17일) 조사 받은 땐 패러디물에 달린 본문글이나 댓글에 대해 문제삼더라"며 "특히 친일청산법(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과 관련, 김용균 국회의원에 대해 실명으로 작품을 만든 걸 문제삼았다"고 말했다.

◆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패러디 뉴스 전문

민주당은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피기 시작한 개나리를 사전선거법위반 혐의로 선관위에 고소하기로 당론을 모았다.

민주당의 조 아무개 대표는 '현재 전국 산과 들, 거리에서 개나리가 노란색으로 피는 것은 17대 총선에서 열린당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민주당은 이에 선관위 고발 등 필요한 모든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력하게 천명했다.

이를 들은 한나라당 대변인실과 조중동 등 찌라시들은 개나리가 하루 빨리 대국민사과를 하고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국의 개나리가시기를 맞춰 일제히 핀데에는 노사모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 노사모는 개나리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의 김아무개의원(아들 둘 군대 안보낸..)은 당 지도부에진달래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진달래가 북한 김정일의 사주를 받아 남한 전 지역에 퍼져서 우리 사회에 이념적 갈등을 심화 시킨다고 주장했다.

A씨에 앞서 정치 풍자 사이트인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도 선관위로 부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부터는 '친일청산법에 반대한 국회의원들'이라는 플래시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당했다.

라이브이즈닷컴 김태일 대표는 "선관위는 라이브이즈에 네티즌들이 만든 패러디물이 올라와 있다는 걸 문제삼았는데, 패러디물에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간에 사이트 게재 자체가 위법이라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도 선관위가 사전에 삭제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더라"며 "패러디는 그저 패러디로 봐 달라"고 말했다.

만평작가의 작품도 보는 사람에 따라 논란이 될 수 있다. 아마추어작가가 만든 패러디물은 신생 사이트 외에도 포털이나 언론사에도 올라가 있다.

국민일보는 정치풍자사이트 미디어몹과 제휴를 추진하고 있고, 한겨레21은 라이브이즈의 패러디 작가 '첫비'의 패러디를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 작가나 신생 정치 사이트와 달리, 신문사 만평작가나 언론사 사이트, 포털이 선관위로 부터 고발당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포털들, 크게 걱정 안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선관위에서 삭제 요청이 오면 응하지만, 그전엔 별다른 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다음의 박현정씨는 "기본적으로 뉴스 콘텐츠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게 아니라 DB로 이용해 보여주는 것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본다"며 "그러나 선관위나 사이버 경찰의 삭제 요청이 있을 때는 적극 협조한다"고 말했다.

네이버 채선주 홍보팀장도 "뉴스와 관련된 문제는 계약에 따라 모두 언론사 책임"이라며 "블로그나 카페의 게시물에 대해 '금칙어'는 관리하지만 패러디물 등은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야후 박지영 홍보과장도 "블로그 커뮤니티는 유저에게 선거법 위반에 관한 공지, 정보를 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해 공지성 메시지를 기획하고 있지만 네티즌의 자유 보장과 법 사이에서 중립성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선관위가 가이드를 내놓았으나 강압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가이드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선관위-수사기관 설득력 적어

선관위 관계자는 "영화포스터에서 얼굴만 정치인으로 바꾸면 형법상 모욕죄는 될 지 몰라도 선거법 위반은 되지 않는다"며 "분명하게 선거법상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거나, (특정인에 대한) 낙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할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경찰청 사이버범죄범죄수사대 관계자도 "인터넷 패러디에 다소 악의적인 부분이 있어도 패러디는 예술로 볼 수 있어 처벌하기 힘들지만 작가가 패러디에 쓴 글이나 네티즌과 대화할 때 단 댓글은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하얀쪽배) 패러디 가운데 일부는 특정 후보의 선거 포스터 같았다"며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은 개인끼리 주고 받는 메신저와 다른 만큼 (네티즌 모두가)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사 만평 작가 작품의 경우 공익성이 있다고 보고, 언론사 사이트 등은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선관위와 경찰은 인터넷 패러디에서 동영상이나 합성 사진보다는 '글로 표현된 부분'에 대해 문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정진 변호사(민주노동당 상근 변호사)는 "인터넷 패러디에서 그림이든 글이든 결과적으로 모두 작가의 개인적인 창작물이라고 봐야 하는데, 단지 글에 대해 수사 기준을 두겠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마추어 작가에 집중해서 수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김태일 라이브이즈닷컴 대표도 "부산경찰청은 우리가 '친일청산법에 반대한 국회의원들'이란 플래시를 트집잡았다"며 "패러디에 '법안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이라고 돼 있는데, 경찰은 '정확한 것은 '법'에 반대한 게 아니라 '발의에' 반대한 것'이라며 사실을 왜곡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 등의 반대로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돼 지난 2일에야 통과됐던 것은 국민 모두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어, 지난 12월 시점에서 국민들이 '발의에'라는 말을 뺐다고 잘못 이해할 리는 없다는 지적이다.

패러디 과잉수사는 표현의 자유 침해

김정진 변호사는 "선관위나 경찰이 문제삼는 것은 선거법상 명예훼손이 되는가 하는 것인데, 설사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더라도 사실에 기초했고 공익에도 도움이 된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인터넷 패러디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선거운동과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구분해 사전선거운동이란 이름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 밖에 없다"며 "돈 안드는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할 경우 현행법상 사전선거운동 조항에 걸릴 수 있더라도 정치발전을 위해 당국은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패러디에 대한 과잉수사나 기준없는 단속이 축제의 장이 돼야 하는 선거시기에 국민의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잘못하면 경찰은 선거사범 적발시 1계급 특진 유혹 때문에 과잉수사를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인터넷 패러디를 바라보는 혼란스러움이 선거법을 꼬집는 패러디뉴스를 유행시키고 있다.

'민주당, 개나리 선관위 고발'이란 글이 유행이다.

민주당이 전국적으로 피기 시작한 개나리를 사전선거법위반 혐의로 선관위에 고소하기로 당론을 모았다는 내용이다.

전국 산과 들, 거리에서 개나리가 노란색으로 피는 것은 17대 총선에서 열린당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과 다름 없기에 고발한다는 패러디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함정선 기자 mint@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인터넷 패러디 수사 '잣대가 없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