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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간 엇박자로 130억원 날릴 판...PLC기술 사장 위기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기술로드맵이 실패해 국민의 세금 130억원이 지원된 국책기술개발 사업이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전기연구원은 총 241억원(정부 130억원, 민간 111억원)을 투입해 1999년 12월 1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고속전력선통신(PLC) 가입자망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전력·한전KDN·젤타워 등이 참가해 PLC칩과 모뎀을 개발한 것이다.

PLC란 전력선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 즉, 일반적인 전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이다. PLC는 기존 무선랜을 썼을 때보다 벽과 같은 음영지역이 적어 홈네트워크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전력은 이 기술을 활용해 대전·대구에서 1천500가구를 대상으로 홈네트워크 시범사업을 하고 있으며, KT·데이콤 등 통신회사들도 필드테스트를 진행중이다.

하지만 산자부 국책과제로 개발된 이 기술은 정보통신부가 준비중인 '전력선통신 고시(PLC 기술기준)'와 정면으로 부딛히면서, 기술 개발에 성공한 의미가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또한 이번 갈등이 국내 고속 PLC 산업 육성의 주도권을 둘러싼 정통부와 산자부간 힘겨루기로 변질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 일각에서는 하루 속히 과학기술부 산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조정권한을 행사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 정통·산자, '주파수 혼신' 대안 놓고 갈등

정부 예산 130억원이 투자된 '고속 전력선통신(PLC) 가입자망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은 고속 PLC 주파수가 해양 조난·호출 주파수에 혼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부터.

해안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PLC 모뎀을 이용해 홈네트워크 서비스를 할 경우, 해상조난통신과 주파수 혼신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파법 시행령이 개정돼 PLC 사용 주파수가 기존 450㎑ 이하에서 30㎒ 이하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PLC 사용 주파수 대역에 해양 조난 통신용 주파수와 어업 통신용 주파수가 포함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양 주파수의 혼신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기준(전력선통신 고시)을 마련, 9월 중순경 고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주파수 혼신 방지에 대한 정통부와 산자부(전기연구원)의 해법은 다르다.

정통부는 "국제적인 추세와 통상압력을 고려해 일정 범위를 PLC 운용 금지 지역(금지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고속 PLC 가입자망 기술' 개발을 주도했던 산업자원부와 전기연구원은 "해상조난통신용 주파수대역을 보호하자"며 금지대역 지정을 주장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일부 조난 대역을 운용금지 대역으로 정하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와 맞지 않으며, 국내 시장을 한 업체(젤라인)가 독점하게 돼 다른 업체들의 심한 반발과 외국의 통상압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옥내와 옥외를 구분해 규제하되, 해상 조난호출 주파수에 대해서는 지역적인 보호방안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책과제를 수행한 젤라인(젤타워 관계회사) 및 산자부 측은 "미국을 제외하고 고속PLC 기술기준을 정한 나라가 없으며, 국책기술개발 결과 PLC용 모뎀의 출력단에 필터를 설치해 조난 등 중요 무선 통신 주파수 대역의 방사를 금지할 수 있다"며 금지대역 지정을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정통부와 산자부(전기연구원)는 정통부 대안(금지지역)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재시험을 진행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전기연구원은 재시험을 진행, 지난 주 금요일 시험 결과를 정통부에 전달했고, 정통부는 이를 바탕으로 9월 중순경 'PLC 기술기준' 고시를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 PLC기준, PLC칩·홈네트워크 시장 판도에 영향

정통부 장관이 고시할 '고속 전력선통신(PLC) 기술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느냐에 따라 국내 PLC칩과 홈네트워크 시장의 판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통부 주장대로 일정 범위를 전력선통신 운용금지 지역(금지지역)으로 지정하면, 산자부 국책과제를 수행한 국내업체 젤라인은 칩 시장에서 선발업체가 갖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또한 전력량계를 홈네트워크 서비스의 게이트웨이로 활용하려던 한국전력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지난 99년 설립된 젤라인의 임수빈 연구소장은 "정통부 주장대로 옥내와 옥외를 구분해 지역규제를 하게 되면, PLC서비스의 커버리지가 축소되고 해상조난신호시 주파수 혼신에 따라 사고라도 나면 PLC의 신뢰성이 추락해 전력선 통신 서비스 시장 축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미 24Mbps급 PLC칩에 주파수 금지대역 지정 기능을 넣은 젤라인이 미국의 인텔론사나 스페인의 DS2와 경쟁할 때 기술우위를 상실하게 된다"며 "(정통부 주장은) 칩에 대한 원천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대만이나 미국에서 수입해 모뎀을 만드는 기업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산자부 주장대로 해상조난통신용 주파수대역을 보호(금지대역)할 경우 국제적인 표준화 추세에 부응하지 못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속PLC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홈네트워크서비스는 (반드시 전력량계를 게이트웨이로 이용해야 하는 것 뿐 아니라) 집안까지 들어온 인터넷회선이나 휴대전화·유선전화를 통해서도 제어가 가능하다"며 "옥내외 옥외를 나눠 규제하는 것은 미국의 FCC 규정 뿐 아니라 호주도 최근 유사한 개념의 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세계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그는 또 "PLC나 RFID 같은 신기술은 국제적인 표준화 추세에 부응하는 게 전체적인 산업 발전에 중요하다"며 "블로킹 필터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젤라인은 금지대역을 쉽게 추가할 수 있어 우리나라가 운용금지대역을 외국과 다르게 정해 국내시장을 독점하기를 바라지만, 이는 전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국내 고속PLC 상용화 계획(출처: 젤라인)

회사 분야 비고
한국전력공사 원격검침/인터넷 엑세스 대전/대구 1500가구 시범사업중
KT 홈엔 서비스 기술제안서 검토 및 필드테스트중
데이콤 BcN사업 홈/빌딩 고속 PLC 네트워크용으로 필드테스트중
삼성/LG 고품질 AV네트워크 무선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필드테스트중
기타 전화/네트워크 카메라/ 신용카드 조회단말기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예정임

◇ 해외 고속PLC 상용화 현황(출처: 젤라인)

국가 회사 형태 비고
중국 SGTC/Fibrlink 빌딩 네트워크 사업주관(2만가구 상용화 서비스)
미국 Mansssa전력 망 임대사업 전력망 개방
미국 시너지/퍼시픽 액세스 네트워크 사업주관/AT&T에 임대
일본 소니/마쓰시다 홈네트워크 가전기기용 고품질 AV네트워크(DTV/셋톱)
스페인 Endesa전력 엑세스 네트워크 Endesa 사업주관, 자회사 망구축, ISP 임대
홍콩 PowerCom 빌딩 네트워크 호텔적용(허치슨 그룹의 자회사)

◆범국가적 차세대 신기술 로드맵 실패...대안마련 시급

고속 PLC기술은 이미 집안에 들어와 있는 전력선에 데이터를 보내는 기술이다. 따라서 다른 홈네트워크 기술에 비해 구축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상용화된 무선랜 계열 기술보다 음영지역이 적다.

이에 따라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 등 전화서비스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PLC를 이용해 전화서비스를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130억원의 돈을 투자해 (데이터 전송이 목적이 아니었던) 전력선의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한 것도 바로 PLC 기술의 시장성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한쪽(산자부)에서 막대한 돈을 투자할 때, 다른 한쪽(정통부)과 제대로 정보가 교류되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적인 추세와 일부 부딛히는 스펙을 넣게 된 것이다.

특히 산자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정통부의 'PLC 기술기준'과 별도로 기술표준원을 통해 젤라인의 기술을 KS표준으로 추진중이어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이종걸 의원(열린우리)실 관계자는 "과학기술부 산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하루 속히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조정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정통부와 산자부의 대안중 누가 옳든지 간에, 범국가적인 기술개발과 표준화 작업이 엇박자가 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산자부 쪽 자금이 지원됐다지만 젤라인 기술에 130억원의 정부 돈이 지원된 만큼, 정통부가 기술기준을 정할 때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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