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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교권 침해의 '공범'들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10년 전 방영된 KBS 청소년 드라마 '학교 2013'에 등장한 정인재라는 인물. 그는 기간제 5년 차 국어 교사로 학교에서 잡무와 골칫덩어리 학급까지 떠맡고 있다. 이런 시련 따위 굴하지 않노라고 애쓰지만, 기간제라는 신분에서 비롯되는 약함 때문인지 반 아이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다. 교육에 열성인 일부 학부모의 간섭과 항의에 더해 심지어 일진 학생으로부터 폭행까지 당한다.

KBS2 드라마 '학교 2013' 포스터. [사진=KBS2]
KBS2 드라마 '학교 2013' 포스터. [사진=KBS2]

강산이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으나, 현실은 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 아니 교권은 이 작품의 내용보다 더 깊은 구렁텅이로 추락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 시간이 흘러가는 이 순간에도 정인재와 같은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달 18일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에서 2년 차 새내기 여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교사는 물론 국민의 공분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대 여교사가 어째서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과 등지려 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직 교사들은 학생들의 폭력과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을 주로 꼽고 있다.

학부모의 요구 사항 중에는 자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도 있지만, 모닝콜 요구나 결석 후 출석을 인정해달라는 무리한 요구 역시 적지 않다고 한다. 교사 단체에 따르면 학생들 간 갈등을 중재하던 선생이 학부모에게 욕설과 폭언을 듣거나 성적 처리와 관련해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을 듣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이의 마음이 상했다"라는 항의도 빗발쳐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기분 상해죄'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다.

아이뉴스24 기자수첩
아이뉴스24 기자수첩

교권 침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원 폭행·상해는 1천249건에 달한다. 특히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참상은 2018년 165건에서 지난해 347건으로 4년 새 2.1배로 늘어났다. 각 학교에 설치한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심의한 안건으로만 집계한 수치다. 이는 실제 발생한 교권 침해 사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게 교육계의 설명이다.

학생 인권 향상을 위한 조례나 아동학대처벌법 등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보완·발전돼 교육 현장에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 하지만 좋은 취지로 마련된 제도를 기계적으로 해석해 일선 교사들의 손발을 묶는 사례가 허다하다. 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는 사실상 없다. 교육 당국과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인 교권 침해를 인지하면서도 못 본 채 넘어간 것도 한몫 했다.

교육 당국 등은 교단 정상화를 위해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이어 관련 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번 사태를 면피하기 위해 눈가리개로 넘어가선 안 될 것이다. 법률 개정·제정은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사항이다. 조속히 진행하는 만큼 그 내용이 학생 인권과 교사의 교권이 상충하지 않는 선에서 신중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어떤 부분이 바뀔 건지 명확히 짚어주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배움의 의식은 희미해지고 어쩌다 최소한의 예우는커녕 선생을 함부로 대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일까. 굳이 옛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기성세대 모두가 교권을 무조건 추락시킨 공범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듯 하다. 내 자식이 금쪽이듯 교사 역시 누군가의 금쪽이라는 생각으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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