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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댓글 실명제' 두고 선관위-인터넷 언론사 '정면충돌'


 

5.31 지방선거가 코 앞에 다가오면서 '인터넷 실명제' 문제가 또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오는 5월 18일부터 30일까지 모든 인터넷 언론사의 댓글과 게시판을 실명제로 운영하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방침을 둘러싸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선관위는 혼탁한 선거운동과 상호비방전, 유언비어를 퇴출시키기 위해선 이 같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인터넷기자협회(이하 인기협)를 비롯한 주요 단체들은 선관위의 이번 조치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선관위가 실명제를 고집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축소하고 자기검열을 내재화해 결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광범위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정치 댓글 달려면 무조건 실명인증"

선관위는 최근 공직선거법 제82조 규정에 따라 산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는 800여 개 인터넷 언론사에 실명인증 시스템 구축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따르면 각 인터넷 언론사는 오는 4월말까지 선거 관련 댓글 실명 인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실명제는 지방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5월 18일부터 선거 전날인 30일 자정까지 13일 동안 적용된다.

이번 실명제의 적용을 받는 댓글의 범위는 상당히 넓은 편이다. 선거운동을 위한 것뿐 아니라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단순 지지와 반대 댓글도 모두 포함된다. "난 어느 정당이 좋다"거나 "우리 동네에 출마한 홍길동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 같은 댓글들도 실명확인 대상이 된다.

인터넷 언론사의 정치·선거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토론 게시판을 이용하려는 네티즌들은 반드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입력한 네티즌들은 행정자치부 주민등록정보시스템과 본인을 대조하는 절차를 거친 후 댓글이나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다.

선관위는 이번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인터넷 언론사들에 대한 제재 수준도 함께 발표했다. 인터넷 언론사가 실명 확인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요구 받고도 불응할 경우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사흘 간의 이행기간이 초과될 경우 매 하루마다 50만 원의 가산액을 내야 한다.

또 실명이 확인되지 않은 글을 삭제하라는 요청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과태료 100만 원을 부여받게 된다. 또 1일 간의 이행기간이 초과된 만큼 매일 20만 원의 가산액을 추가로 물어야 한다.

◆ "유권자 입 막겠다는 발상"

선관위가 예시한 실명인증 대상 댓글

- OO 정당이 좋다- 어느 후보자가 당선되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OO 정책을 OO 후보자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특정 정당․후보자에 대한 욕설 등※ 정당ㆍ후보자에 대한 지지ㆍ반대 글 사례는 수시로 인터넷 언론사에 통지될 예정

이 같은 선관위 정책에 대해 인기협과 각종 정보인권단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정책인데다 시행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허점이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우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통신정책 활동가는 "실명인증은 댓글을 다는 사람이 '이런 내용의 글을 써도 될까'라는 이른바 자기검열을 하도록 한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 활발한 정치 토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고 말했다.

댓글을 올리기 전에 '이름표'를 달게 하는 것은 네티즌들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민경배 경희 사이버대학 교수(NGO 학과)는 "실명제는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선거 때 유권자들이 자신의 지지와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하용되지 않느냐"라면서 "온라인에서만 이를 일종의 언론 행위로 간주해서 규제하려는 시도는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준희 인기협 사무처장도 "네티즌들의 활발한 정치 토론 문화는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쌓아온 성과들과 IT인프라의 급속한 발달이라는 환경이 만든 합작품"이라며 "인터넷을 혼탁 선거의 온상으로 몰아가는 이번 실명제 논의는 상당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문제 있는 댓글은 지금도 수사기관 등을 통해 법적 처벌을 하고 있는 데 굳이 실명 인증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조치는 네티즌들의 활발한 정치 토론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선관위 측 관계자는 "법에서는 모든 게시판과 댓글에 실명제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해서 완화한 게 정치 댓들로 축소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실명인증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때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법률에 정해진 것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운영과정에서 조금 여유를 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행자부 전산망 뿐 아니라 신용정보업체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이렇게 될 경우 회원인증 시스템을 이미 구축해 놓고 있는 언론사들은 기존 시스템을 그냥 이용할 수 있다.

◆ 정치 댓글 여부 판단 누가 하나

이번 정책의 직접 대상자인 인터넷 언론사들이 정치 댓글 여부 판단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실명제 위반 댓글이라는 지적을 받을 경우엔 삭제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정책의 근거법인 공직선거법 제82조는 "인터넷 언론사는 실명인증 표시가 없는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이 게시됐을 때에는 이를 지체없이 삭제해야 하며 정당과 후보자 및 각급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 요구를 했을 때에는 즉시 이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관계자들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댓글의 경우 삭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위원회 등을 구성해 정말 문제가 있는지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며 "현 법적 장치로는 인터넷 언론사는 삭제 통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 댓글 여부 판단을 위한 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좋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합리적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앞으로 인터넷 언론사 관계자들과 다양한 협의를 거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면서 "선거 후에 다양한 의견들을 취합하겠다"고 밝혔다.

◆ 인터넷 실명제 확산 계기되나

한 때 '댓글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탄생시키면서 인터넷 언론의 또 다른 무기로 각광을 받았던 댓글. 하지만 욕설이나 무차별 비방 등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실명제 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네이버는 댓글 공간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댓글 총량제'를 도입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몇 년째 실명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 역시 비슷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게시판 및 댓글 실명제가 5.31 지방 선거를 계기로 수면 위에 모습을 내밀었다. 정치권이 지방 선거 전략 수립에 몰두하고 있는 틈을 타 사실상 정책화 단계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 없다.

일부에서는 바로 이 같은 점을 들어 5.31 지방 선거를 계기로 인터넷 실명제가 전면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관측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계각층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던 인터넷 실명제가 이미 실행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

인터넷 언론사들과 각종 정보 인권단체들이 선관위의 이번 조치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측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5.31 이후'를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와 '무차별 비방, 욕설 금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는 댓글, 게시판 정책. 그래서 더욱더 '운영의 지혜'가 요구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호기자 sunris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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