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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선] 이인제 후보는 어떤 사람?


자전거와 바둑 즐기지만 술은 거의 못해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1948년 생으로 올해 60세이다. 이 후보는 평소에 자전거와 바둑을 즐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선거운동 때문에 못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강남구 자곡동 자택에서 여의도까지 약 25km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7시 10분 경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면 1시간 10분쯤 후에 국회에 도착한다. 한강 둔치를 따라오기 때문에 차 안에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낫다고 이 후보는 강조했다.

물론 자전거를 탈 때는 보좌관도 없이 혼자서 다닌다. 이런 이 후보의 모습이 화제가 돼 한 자전거 전문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한 후 샤워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온 후에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 주요 뉴스를 검색하고, 홈페이지 관리도 한다.

이 후보의 또 다른 취미는 바둑.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불복하고 탈당한 이후 본인 표현으로는 '얼음 속에 갇혀 지낸 세월' 동안 바둑은 그의 벗이 됐다.

지인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아마 7단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보통 친한 친구나 지인과 바둑을 두며, 여가 시간이 있을 때는 '타이젬'이라는 바둑전문 게임사이트에서 즐기기도 했다.

술은 잘 못한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이라 스스로 자제하는 편이다. 주량으로 치면 소주 반병 미만으로 식사하면서 반주로 조금씩 즐기는 수준이다.

◆장학금 받아 논산중 수석 입학

이인제 후보는 1948년 12월 11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송산리에서 아버지 이윤식 씨(1986년 작고)와 어머니 김화영 씨(2000년 작고) 슬하의 4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소농으로 이 후보는 월사금이 없어 한 해 늦은 9살에 초등학교(논산백석초)에 입학했다.

어려운 형편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도 나아지지 않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께 "시험을 잘 봐서 5등 안에 들면 돈 없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설득, 논산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중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문학전집을 즐겨 읽었다는 이 후보는 당시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줬다고 말한다.

저서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 중에는 "목숨을 바쳐 역사를 열어가는 영웅들의 삶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이순신, 나폴레옹, 징기스칸이 내 마음의 영웅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군인이 돼 분단된 나라를 통일시키고 우리 민족이 대륙을 호령하는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꿈이 교육자가 되겠다는 꿈을 어느 사이 밀어내 버린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인제의 꿈 : 이순신, 나폴레옹→링컨

이순신, 나폴레옹 같은 영웅을 꿈꿨던 소년 이인제는 이후 '아브라함 링컨 전기'를 읽고 장군보다는 변호사가 되어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일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법관의 길을 권유한 당시 연인 김은숙 여사의 조언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렇게 1968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사회법학회'에 들어가 민주화운동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

이인제 후보는 당시를 회고하며 "우리가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저서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에 적었다.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나 여의치 않아 군에 입대했다. 1976년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고 1978년 병장으로 제대한 이후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에 돌입해 사시 21회에 합격했지만 동기생들보다 5~6년이 늦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그는 1981년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직으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87년 6월 항쟁 계기로 정치입문 결심

저서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에서는 당시에 대해서 "1987년 6월 항쟁은 전두환의 신군부독재체제를 무너뜨렸다. 민주주의의 지평을 열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오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미답(未踏)의 세계인 정계를 향했다"고 돼 있다.

정계입문은 1987년 9월 통일민주당의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취임을 통해서였다. 민주세력의 양대산맥이었던 동교동과 상도동 중 상도동 진영에 합류한 이인제는 88년 총선에 나섰다.

39세의 젊은 나이였던 이인제는 당시 4.26 총선에 경기도 안양갑구(현 안양만안)에 출마, 대승을 거두면서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1983년 문민정부 출범 때에는 최연소 노동부장관이 돼 '고용보험제도'를 만들었다.

1995년에는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에 뽑혔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경기도 일자리 증가 비율은 26%로 임창렬 지사 17%, 손학규 지사 16% 보다 높다.

◆두차례의 경선불복…이인제의 짐

1997년 3월, 이인제는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나 낙마한 후 이에 불복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제15대 대통령후보에 출마했다. 대선에 낙마한 이인제 후보는 이듬해인 1998년 9월 국민신당을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당했다.

5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이인제 후보는 또다시 경선에 불복하며 탈당을 결행했다.

2차례의 '경선불복' 이력은 늘 그의 꼬리표에 붙어다니는 짐이 됐다.

민주당을 나온지 4년 6개월 만인 지난 5월 민주당으로 복당한 이인제 후보는 10월 민주당의 제17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면서 대선 3수를 하게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소녀와 결혼까지

당시에는 각종 대회 참가도 많았는데, 중3 때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논산시내 중학생 연합시화전에 참가하게 됐는데 당시 얼굴이 하얗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논산여중 학생회장에 한눈에 반한 것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진학으로 각각 서울과 대전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편지로 변치않는 우정을 이어갔다.

그 학생회장이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된 김은숙 여사다. 10년 이상을 연애한 셈이다.

혜화동 이화예식장에서 결혼한 두 사람은 워커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대전으로 와 함께 이 후보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기 전까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공주교육대학을 나온 김은숙 여사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잠깐 하다가 이인제 후보가 군대를 제대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내조를 하고 있다.

지인들에 따르면 김은숙 여사는 마음이 너그럽고 포용력이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설영기자 ron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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