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인 이명준은 '풍문'을 따라서 북한으로 넘어간다. 내면의 밀실 세계에 빠져 살던 그는 북한에서 진정한 광장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찾아간 북한은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이래 민주적인 여론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광장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명준이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개인의 삶이 말살된 광장이었다.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곳이 바로 북한이었던 것이다.
남·북한 어디에서도 자신의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 이명준은 결국 중립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소설에선 이명준이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광장 속의 밀실인 중립국을 찾아 떠났던 이명준은 결국 사랑이란 또 다른 밀실을 찾아 바다로 뛰어들고 만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4.19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작품으로 꼽히는 최인훈의 '광장'은 이명준이란 한 철학도의 삶을 통해 남과 북의 극단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최인훈은 이 소설에서 '광장'과 '밀실'이란 대비되는 가치를 내세워 많은 공감을 얻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리해보자. 광장이 사회적 삶의 공간이라면, 밀실은 내면적 삶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에겐 광장과 밀실이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만 내 몰려서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 최인훈의 주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이후 광장이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광장을 막으려는 측과, 열어 달라는 측이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잠시 지난 며칠 간을 되짚어보자. 노 전 대통령 비보가 전해지던 날 국민들은 덕수궁 앞에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렸다. 그러자 역시 자발적으로 삶을 마무리해버린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이 곧바로 서울 시청 앞 광장을 폐쇄해 버렸다. 경찰은 또 분향소의 천막도 강제 철거했다. 아마도 지난 해 여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뒤 '닫힌 광장'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을 개방하라는 측과 그렇게 못하겠다는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울 시청 앞은 민의를 다지는 광장 역할을 했다. 1987년 6.10 항쟁 때 그랬으며, 가깝게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감동을 집결시킨 곳도 바로 시청 앞 광장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역시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타올랐다.
하지만 지금 시청 앞 광장은 밀폐된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전경차로 둘러싸이면서 자유가 사라져 버렸다. 어느 틈엔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밀실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경찰이나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군중= 폭력시위'란 등식을 적용해 광장 자체를 아예 막아버리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는 처사는 아니다.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사회가 불건전한 만큼이나, 광장을 막으려는 사회 역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청 앞 광장을 열어주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 시장이 "비폭력, 비정치적인 성격의 시민행사라면 시청광장 사용에 충분히 공감한다. 국민장례의원회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디 '광장'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문제가 잘 풀리길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인위적으로 광장을 가로막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광장과 밀실이란 대립되는 화두로 남북을 재단했던 최인훈의 50년 전 생각이 2009년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갖는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겠는가?
(덧글) 이 칼럼을 내보내고 잠시 한 숨 돌리는 사이에 '시만광장 추모제'를 불허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시청 앞은 '텅빈 광장'이 될 모양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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