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고속철도(KTX)의 노후화로 교체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신규 차량을 도입할 때 필요한 고속철도 차량 제작 검사(감독 및 감리)의 독점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속철도 차량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 국내에 달랑 2개뿐인 제작 검사 업체 간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사실상 1개 업체가 업무를 독점하며 논란으로 부각되고 있다.

고속철도 차량 검사 업체는 2곳인데 사실상 1곳이 독점
1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이후 지난달까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와 SR(SRT 고속철도 운영사)가 발주한 5건, 139억원 규모의 신규 고속철도 제작 감독 업체 입찰은 모두 로테코(사단법인 한국철도차량엔지니어링)가 수주했다. 5건 중 마지막 입찰이었던 지난 9월에는 경쟁사인 케이알이앤씨(KR E&C)가 입찰 자체를 포기하면서 수의계약으로 체결됐다.
고속철도 차량 제작 시 차량 검사 용역을 맡을 수 있는 업체는 로테코와 케이알이앤씨 2곳인데, 한 개 업체가 줄곧 업무를 도맡아 왔다는 얘기다. 업체가 2곳인 이유는 정부가 '경쟁 체제'를 갖춰야 할 필요성을 느껴 국토교통부가 조건을 충족한 케이알이앤씨를 추가로 인가해줬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차량 검사를 위해서는 업체가 △책임검사원 3명 이상 보유 △선임검사원 및 검사원 등 기술인력 30명 이상 보유 등 고속철도 차량과 일반 전동차 검사 역량을 갖춰야 한다. 업계 특성상 두 회사 모두 코레일 출신 등이 포진돼 있기 때문에 관련 업무 역량 수준도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그런데 로테코가 일감을 독차지하는 가장 큰 변별력은 업체 선정기준 상의 실적 부분이다. 로테코는 1963년 코레일 출신 기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된다. 1970년 국제검정기관으로 지명되고, 1971년 철도청 화차 등에 대한 검정 용역 수주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실적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얘기다.
이에 비해 케이알이앤씨는 전문인력 수와 직원수는 로테코보다 약간 적지만, 2010년 설립한 비교적 신생 회사여서 감리 실적을 갖고 있지 않다.
과거 고속철도 차량 제작 감독 업체 선정은 최저가 경쟁 입찰 방식이었다. 하지만 입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2023년 적격 심사 방식의 경쟁 입찰 방식이 도입됐다. 코레일이 발주하는 고속철도 차량 제작 감독 업체 입찰 기준은 사업수행능력 평가(70점)와 가격 평가(30점)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 중 사업수행능력 평가는 총 70점 만점으로 기술능력 25점, 경영상태 30점, 업무중첩도 5점, 수행실적 10점이다.
로테코와 케이알이앤씨의 회사 규모가 비슷해 나머지 항목에서는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수행실적 항목(10점)이다. 이 항목은 최근 10년 이내에 동등 및 유사용역 수행실적, 즉 '고속철도 차량 감독 경험'을 기준으로 한다. 케이알이앤씨와 같이 동력차 경험만 있으면 최소 점수인 6점만 획득한다. 회사 규모가 비슷한 상황에서 수행실적에서 발생하는 4점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케이알이앤씨 관계자는 "일반 전동 차량이나 고속철도 차량 모두 같은 구조의 똑같은 차량 구조로 차량 운행 속도만 다르다. 그런데 정작 차량 제작 감독 업체 입찰에서는 감독 경험의 배점이 워낙 커 로테코만 10점을 받는다"며 "적격 방식 입찰에서는 0.5점 이상 차이가 벌어지면 낙찰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코레일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수행질적 10점의 배점도 공정위의 권고에 따라 15점이던 것을 줄인 수준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고속철도 차량 제작 감독 용역 입찰에서 수행실적 배점이 너무 커 신규 기업 진입을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고속철도가 나이드는데…차량 완성도 높이는 검사 업체는 경쟁력은?
코레일은 KTX-1 차량 노후화로 최근 고속철도 차량 교체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기대수명이 다하는 오는 2033년을 대비하기 위해 2027년부터 교체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상사업비만 약 5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고속철도 수요가 늘어나는데 비해 고속철도의 안전에 기여하는 검사 업체는 1곳이 독식하면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입찰 시 경쟁이 벌어지지 못하면 코레일 입장에서는 입찰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차량 검사 품질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케이알이앤씨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2개 기관으로 지정해 경쟁을 유도해 양질의 제작 검사 품질을 확보하겠다는 의중이었지만, 정작 현실은 독점적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반 전동 차량 경험이 있어도 고속철도 차량 제작 감독 이력이 없어 5번의 입찰에서 번번이 들러리만 서는 꼴이 됐다"며 "앞으로는 고속철도와 같은 차량이 더 늘어나는데 비해 제작 검사업체의 입찰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입찰에 참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케이알이앤씨는 지난 8월 코레일에 '고속철도 차량 제작 감독 용역 평가기준의 진입장벽 철폐 요청' 공문을 보내 항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케이알이앤씨는 공문을 통해 "도저히 넘지 못할 진입 장벽으로 인해 코레일 예산의 과다 지출과 제작 감독 기술 용역의 품질 저하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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