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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망중립성 공방' 유감


[김익현기자]망중립성 공방이 뜨겁다. 미국 항소법원이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오픈인터넷규칙’ 일부를 무력화한 때문이다. 물 건너 먼 나라 판결이 느닷없이 이 땅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판결 직후엔 “망중립성 원칙이 무너졌다”는 기사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주 들어선 조금씩 논조가 바뀌고 있다. “망중립성을 부정한 판결이 아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 와중에 이해 당사자들은 저마다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 바쁘다. 그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망중립성' 자체가 애당초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이다. '원조'나 다름 없는 미국이 ‘무효 선언'을 할 경우 한국에도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망중립성 공방'을 지켜보는 심정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뭔가 핵심이 빠진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궁금했다. 그래서 항소법원 판결문을 다시 읽어봤다. 읽으면서 한 가지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추상적 원칙' 못지 않게 '구체적 현실'도 중요한 잣대

결론부터 얘기하고 시작하자. 법원은 추상적인 법 이론을 논하는 곳이 아니다. 현실 속 사람들 간의 다툼을 중재하는 곳이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판결에도 영향을 미친다. ’원론’ 못지 않게 ‘특수한 상황’도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미국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소송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FCC가 버라이즌 같은 망사업자(broadband provider)를 규제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1996년 제정된 ‘통신법 706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부분이었다. 이 조항이 FCC에 규제 권한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통신법 706조는 FCC가 지역 통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공익, 편의, 가격 규제 등의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FCC는 706조가 자신들에게 '오픈 인터넷규칙' 제정 권한까지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버라이즌은 통신법 706조는 일반적인 원칙을 서술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FCC에 특별한 권한을 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FCC의 손을 들어줬다. 통신법 706조는 FCC에겐 ‘안전규정(fail-safe)’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fail safe란 “기계가 고장나서 폭주할 우려가 있을 경우 재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기구”를 의미한다. 마땅한 다른 규정이 없을 경우 FCC가 규제 근거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항소법원이 706조 해석을 둘러싼 공방에서 사용한 중요한 잣대가 있다. 고속 인터넷 보급률 확대란 '구체적인' 정책 목표다. 잠시 그 얘기를 해보자.

◆미국 법원, '고속 인터넷 보급' 정책 목표 중요하게 간주

1996년 통신법에선 고속인터넷의 최저 기준을 200kbps 으로 잡았다. 일반 이용자들이 음성, 데이터, 그래픽 등을 큰 무리 없이 주고 받으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FCC는 2010년 “고속 인터넷 보급이 충분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 사이 고화질 동영상 등이 대중화된 때문이다. FCC는 이런 이유를 내세워 초고속 인터넷은 4mbps는 돼야 한다고 새롭게 규정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할 경우 미국인 1천400만~2천400만 가량이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속 인터넷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선 망 사업자에 대한 규제 권한이 필요하다는 게 FCC의 주장이었다. 물론 통신법 706조는 그 근거 조항이었다.

항소법원은 FCC의 이런 대의명분에 동의했다. 고속 인터넷 보급 확산을 위해선 망 사업자의 ‘독주’를 견제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추상적 원론’ 못지 않게 '구체적 정책 목표’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이 부분이다. 미국 법원 판결은 미국적 상황에 대한 고민의 결정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 그런 맥락을 무시한 채 단순히 유불리만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 덕분에 망중립성 이슈가 널리 회자된 건 다행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왕 이슈가 된 김에 단순히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다는 ‘원색적 공방’을 하는 선에 머무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글 서두에서 “망중립성 판결을 둘러싼 공방이 답답해 보인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생이란 건 말로만 외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나만의 최선을 고집하기 보다는 ‘모두를 위한 차선’에 합의할 때 진정한 상생에 이를 수 있다. 망중립성 이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정책 당국이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삼자가 잘 조화된 멋진 결론에 이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덧글)

항소법원은 FCC의 오픈 인터넷 규칙 3대원칙 중 차별금지, 차단금지는 월권이라고 판결했다. 공중통신사업자에게나 적용할 규정을 정보서비스사업자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게 판결 골자다. 이 판결은 FCC에겐 상당히 큰 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 글에선 그 부분은 논외로 했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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