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관리법 과징금 규모 현실화해야"


(하)산업계 "과징금 5% 과도, 문 닫으란 소리"

산업계에서 쓰는 유해화학물질은 누출 사고 발생시 인체 등에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만약 사고가 발생했다면 신속히 대처하는 게 차선이다. 문제는 예방의 방법론이다. 한 쪽에서는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산업계가 자발적으로 안전한 사업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아이뉴스24는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이 무엇인지를 두 차례에 걸쳐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산업팀]산업계 "과징금 5% 과도, 문 닫으란 소리"…과잉입법으로 기업활동 위축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유해물법)'에 대해 산업계 전반에서 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 입법이라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새 개정안은 유해화학물질 사고를 일으킨 기업의 경우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단일 사업장의 경우 2.5%를 초과하지 못하지만 사업규모, 위반행위에 따라 50% 범위내에서 가중 또는 감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으며 시행령 마련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는 201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당초 개정안보다 과징금은 크게 낮아졌지만 과징금 규모가 다른 법률의 과징금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아, 자칫 기업의 생존 여부가 좌우될 수 있을 정도로 과중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특히, 유해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전자업계와 화학업계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1년여를 앞둔 시행까지 과징금 부과 기준 등 세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업계간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평상시에는 관심도 없다가 막상 사고가 터지자 업계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체계적인 대책 없이 처벌만 강화했다"며 "이번 개정안은 정부와 국회가 합작한 졸속 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초 분석한 '100대 상장기업과 20대 화학기업의 매출액 및 과징금 부과액 산출액'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대 3억원이던 기존 과징금이 매출액 대비 최대 5% 산식을 적용할 경우 수천억원이나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10조원 이상의 상장기업 중 삼성전자·한국전력공사·현대자동차·포스코·에쓰오일·한국가스공사·LG디스플레이·기아자동차·SK네트웍스·LG전자·현대중공업 등 12개 업체들의 과징금은 조 단위로 과징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안대로라면 최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누출 사고의 경우 올해 200조원대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연간 매출액의 5%인 10조원을 부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유해물질 누출사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화학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연간 매출액 20조의 업계 1위 기업인 LG화학은 1조가량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매출액 1조 이상 규모의 롯데케미칼, 제일모직, 금호석유, 코오롱인더, 한화케미칼, 태광산업, OCI, 이수화학, SKC, SK케미칼, 남해화학, 삼성정밀화학, 휴비스 등 화학기업 14곳은 1천억원대 이상의 과징금이 매겨질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의 매출액은 10조∼73조원, 영업이익은 2천억∼2조원 수준으로 평균 영업이익률이 3.3%인 점을 감안할 때 매출액 대비 5% 과징금은 영업이익의 2~10배에 달한다"며 "이는 우발적 사고 한 번에 기업 존폐가 갈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역시 유해법의 보완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의 법 통과 과정에서 업계 의견 수렴이 부족했고, 최고 5%의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기업이 버틸 수 없다는 공통된 지적이다.

박태진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화학사고 발생 사업장에 대해 매출액 대비 5%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기업은 예상치 못한 한 번의 사고로 영업이익 이상의 금액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며 "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화학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사후 처벌만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노후설비 교체와 작업장 안전관리에 대한 자금지원 등 사고 발생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7년간 발생한 화학사고 118건 가운데 노후 시설 때문에 발생한 사고는 36건에 이를 정도로 노후 시설 정비는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화학사고의 주요 원인이 화학물질 관련 시설의 노후화나 안전 고려가 미흡한 시설의 설계, 현장에서 안전수칙 경시에 있다"며 "우발적 성격이 강한 화학사고에 부당 이익 환수가 주된 목적인 과징금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아무리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한다고 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직원 한 명의 실수로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며 "기업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고 해외로 내쫓는 악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업계 일각에서는 공장 해외이전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국내에는 화학물질을 만들거나 수입, 활용하는 사업장이 약 2만6천개, 관련 종사인력은 82만명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A화학업체 관계자는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추징할 경우 생존할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과연 얼마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사업 여건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국내에 있는 공장만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지나친 과징금 규모에 대한 대안으로 강경 일변도의 밀어붙이기식 정책보다는 '유연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안전관련 법령처럼 과징금 상한선을 금액으로 정해 놓거나 사고 시 피해 정도에 따라 과징금 범위를 10~20단계로 구분해 부과해야 한다"며 "특히 가벼운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과징금도 그만큼 가벼워지도록 하는 등의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애매한 신고조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도 업계는 요구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화학사고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즉시 필요한 응급조치를 하고 중대성, 시급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시설 가동을 중단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에 신고 의무를 규정하고 이에 대해 명문화했던 것과 달리 신고 상황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어진 것이다. 이는 너무 포괄적이고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각 기업들의 시각과 입장에 따라 해석의 격차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고 의무가 있는 사고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기업에 혼란만 더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팀 ind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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