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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코리아의 부활, '환상'부터 버려야


정부 주도 방식, 깊은 논의 필요…새 부처 '할일' 밑그림이 중요

[강은성기자] 새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이 강조한 '창조경제'의 추진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정부 조직 개편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장 관심이 높은 곳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다. MB정부에서 해체한 정보통신부 부재의 부작용을 연신 지적하면서 새 정부에서 다시금 ICT 전담부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IT는 '암흑기'를 맞았으며 이로 인해 새 정부에서 ICT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IT 코리아'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드높다.

'ICT의 부활, IT 강국 코리아의 재현'이 이뤄지려면 어떤 과제가 선행돼야 할까.

◆정부 주도 산업정책, 이젠 '옛 이야기'

전문가들은 일단 괜한 '향수'부터 지워야 한다고 말한다.

"정통부 시절 '벤처' 명함만 내밀면 '묻지마 투자'가 몰려들고, 정부 예산지원이 턱턱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때를 잊지 못한 기업들이 지금도 정통부 부활을 강조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정책 전문가는 이같은 '불편한 진실'을 얘기한다.

물론 세계 각국에 유례가 없던 정보통신부라는 ICT 전담부처가 설치됨으로써 'IT 강국'을 이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맞다. 각종 국제 IT 지표에서 1위를 도맡아 차지한 것도 정통부라는 전담부처를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이뤄지고 정부 예산이 집중적으로 투입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통화성공률이 98%에 달하는 이동통신 강국이며 100Mbps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전국 95%를 넘는 인터넷 강국이 됐다.

전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 최고전략책임자(CSO) 양현미 박사는 "국제 기구에 가보니 우리나라의 통신환경이나 IT 인프라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새삼 알게 됐다. 단지 체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치적으로도 우리나라의 IT 인프라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통부 해체 이후 5년간 우리나라의 인프라는 퇴보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통신3사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전세계 유례없는 '최단기간 LTE 전국망 구축', '세계 최초 VoLTE 상용화', '최단 기간 LTE 1천만 가입자 돌파' 등 각종 기록을 여전히 경신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의 와이파이망이 완성됐다. 고속도로와 기차, 지하철, 버스 등에는 '이동초고속인터넷'인 와이브로가 설치돼 무선인터넷 세상을 도맡아 열어가고 있다.

정부가 주도해 나가던 때보다 생존을 건 기업간 경쟁이 인프라 고도화를 더욱 급속도로 전개시켜 나간 것이다.

정통부 해체 시절 직접 정통부에 근무하면서 정부조직개편에도 참여했던 한 고위 공무원은 "사실 정통부 해체 논의는 MB 정부 들어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참여정부 시절부터 '정통부의 소임은 끝났다'는 대 명제가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나온 얘기"라고 설명한다.

이 고위공무원은 "이미 정통부 해체 수년전부터 이 부처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 아젠다'가 실종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정통부가 무리하게 이런 저런 일들을 추진하다가 오히려 타 부처와 충돌을 빚게 되고 이에 따라 '각 부처에서 ICT와 산업에 대한 '융합'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는게 맞겠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회고했다.

◆실패한 MB정부 ICT 분산책, 그렇다고 회귀?

또 다른 정부 고위 공무원은 "새 정부에서 ICT 전담부처를 설립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익을 좌지우지할만한 임팩트 있는 내용은 아니다"면서 "다만 전담부처 설립 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을 분명히 그려야만 부처 설립을 통한 진정한 '창조경제' 동력을 발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과거 정통부가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정보 고속도로'를 깔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택지개발 해 잘 정돈된 'IT 인프라 택지'로 만들어 놨다"면서 "이제 이 인프라 위에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인테리어로 건물을 세우고 그 건물안에서 어떤 콘텐츠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제는 MB정부 출범 때도 나왔던 얘기다.

이같은 흐름을 나름대로 파악했던 MB정부는 정통부의 해체와 함께 ICT 정책 기능을 지식경제부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및 방송통신위원회로 분산시키고, 그밖의 다른 부처에서도 ICT 정책을 독립적으로 세워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코자 했다.

하지만 MB정부에서의 정책 분산 결과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분산된 정책 기능은 산업인들에게 혼선만 초래했고 각 부처에서의 ICT 융합은 해당 부처가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주무정책에 밀려 지지부진한 결과만 낳았다.

정책 전문가는 "정통부라는 전담부처에서 정책 아젠다가 실종됐고 산업 융합이 더욱 강조되는 시기가 왔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 없이 정통부를 해체하다 보니 업계엔 불만만 쌓이고 분산에 따른 효과는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는 "분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단순한 논리로 ICT 전담부처 설립을 요구한다면 이 역시 5년후 '해체'의 칼날을 또 다시 맞게 될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이 전문가는 "ICT 전담부처 설립을 논한다면, 전담부처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 먼저"라면서 "이미 확보한 우리의 강력한 ICT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새로운 부가가치와 먹거리는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기획력을 갖추고 권한과 책임을 가진 부처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비틀기'식 규제보다 '진흥'해줄 부처 필요

그렇다면 새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ICT전담부처를 설치할 경우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

무엇보다 기업에 대한 강압적인 규제로 투자를 유인하는 과거 방법은 버려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CDMA나 와이브로, 초고속인터넷 등 IT코리아의 오늘이 있게 한 인프라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 사업의 결과다. 기업이 '이익'만 가지고 판단했다면 그같은 단기간의 인프라 투자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LTE 경쟁도 이같은 통신망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시대가 변해 경쟁이 규제를 앞지르고, 기술이 법과 제도를 앞지르는 시대가 왔다. 오히려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 아래서 기술과 경쟁이 발목을 잡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규제를 통한 인프라 정책이 아닌, 진흥을 통한 소프트웨어 정책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현재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같은 거대한 기술 흐름이 있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부가가치' 수준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 인명 구조와 사회 안전망 구축, 탄소 저감 및 환경 보존 등 국가적, 전세계적 이슈와도 맞닿아 있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기술개발, 표준 확립, 인력 육성, 정책적 안배를 통한 전문기업의 탄생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새 정부, 새 부처가 생겨나면 당장 눈앞에 결과를 내기 위해 '성과' 중심으로 하드웨어 투자만 종용할까 두렵다"면서 "새 정부가 설립된다면 단순히 '전담부처 설립'이라는 일각의 목소리만 들을 것이 아니라 기업이 하지 못하는 인력 육성과 생태계 조성 등 정책 수요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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