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CP가 넘고, 돈은 통신사가 챙겨


[생태계 없이 IT 재도약 없다 ②무너진 생태계]

[특별취재팀: 강호성팀장, 강은성, 김영리, 김현주, 박계현]

SK텔레콤 가입자 A씨는 3년전 요금을 내지 못했다. 당시 A씨는 요금을 내지 않았지만 통화 뿐만 아니라 벨소리, 통화연결음 등 몇가지 서비스는 함께 이용했다. SK텔레콤은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A 가입자에게 추심을 진행, 요금을 받아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SK텔레콤이 A씨로부터 요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을 제작해 공급한 B 업체에 요금연체 금액을 나눠 줄 수 없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받아낸 요금은 그대로 SK텔레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린다. 콘텐츠 업체에 나눠주는 요금 수익은 최장 1년분만 지급한다는, SK텔레콤의 불공정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수금'한 돈은 일단 통신사 먼저

지난 5월3일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사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의 계약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과 무선인터넷 사업자(CP)를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드러난 이런 현실은 10여년 전 게임의 법칙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통위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앞서 언급된 SK텔레콤 뿐만 아니라 KT와 LG유플러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 잘 드러난다. KT는 모바일게임과 영화, 드라마 등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익을 미리 콘텐츠 제공업체에 정산해주는 '청구형 정산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재정이 열악한 콘텐츠 업체에 이 같은 방식은 가뭄의 단비 같은 수익배분 형태다.

그런데 KT는 이용자가 요금을 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5%를 '미납예상액'으로 미리 떼고 콘텐츠 업체에 지급했다. 문제는 평균적으로 미납률이 5%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KT의 정보이용료 평균 미수납률은 4.8%였다.

KT가 미리 떼어 놓았던 5%보다 0.2%가 적은 수치. 금액으로는 약 35억원의 돈이 KT 손에 남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이는 KT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콘텐츠 업체에 되돌아가야 할 몫이다.

LG유플러스는 계약 종료 다음달까지만 콘텐츠 수익을 나눠주고 이후에 가입자로부터 받는 돈은 자사의 몫으로 했다. 이 회사는 또 가입자로부터 받은 돈에서 기본료와 통화료를 우선순위로 챙기고 정보이용료는 이보다 후순위로 미뤘다. 다시 말해 가입자가 이용료를 지불하지 못하면 자사가 먼저 챙긴 뒤 나머지를 콘텐츠 업체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금 지급 순위를 미뤘다.

이번 조사가 '일반폰' 무선인터넷 수익률 배분에 한정한 것이라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한 통신사들의 현주소가 이중적인 태도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콘텐츠 업체에 대한 수익 배분비율이 지난 2008년 72.6%에서 2009년 82%, 2010년 83.6%로, 다소 개선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그 물밑에서는 여전히 불공정 거래와 관행이 판을 친 셈이다. 방통위는 각 통신사에 이처럼 불공정한 규정을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동시에 수시로 점검할 계획이다.

◆마케팅은 2주, 수수료 추가 10% '지속'

가입자들이 휴대폰으로 모바일인터넷에 접속해 보면, 첫 화면에 각종 '추천 콘텐츠'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현재 통신사가 제공하고 있는 T스토어, 올레마켓, 오즈스토어 등 '독자 오픈마켓'이라는 곳에서도 흔한 배치다.

통신사들은 추천 콘텐츠를 선정해 상위메뉴로 노출시켜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콘텐츠가 양질이거나 추천할 만한 것에 대해 순수하게 구매를 유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위에 노출시켜준 콘텐츠 업체로부터 더 많은 수수료를 떼고 있다.

한 마디로 장사가 잘 되는 '목 좋은' 자리를 분양했으니 임대료를 더 내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업계에서조차 이에 대해 한정된 초기화면의 황금구역을 내줬으니 당연한 조치라며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초기화면에서 이미 떠나고 난 콘텐츠 업체에도 그대로 비싼 수수료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높은 수수료를 부과했다.

방통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의 경우 약 2주에 불과한 추천 기간이 끝나고 난 후에도 10% 이상 높게 책정한 정산율을 계속 적용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은 이같은 제도를 개선해 올 1월에서야 추천기간 종료시 조정전 정산율로 환원했다.

또한 이통사들은 콘텐츠 매출액 증가를 위해 문자메시지(SMS) 발송, 이벤트 실시 등 마케팅을 하면서 콘텐츠 마케팅 비용에 대한 산정 기준이나 배분원칙을 제대로 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SK텔레콤은 SMS를 이용한 콘텐츠 마케팅시 정보이용료의 10%를 추가로 배분받고 있으며, 마케팅 종료 후에도 조정된 정산율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통사가 콘텐츠 업체에게 부당한 마케팅 비용을 요구할 소지가 있어 사업자별로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마케팅 비용 산정과 배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살려면 돈 더내더라도 '메인'에 떠야"

개발사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더 떼이더라도 첫 화면에 노출되길 원하기 십상이다. 모바일 게임개발사 임원은 "한두 뎁스(화면)만 뒤로 쳐지면 개발비도 뽑지 못한다"며 "첫화면에 나오면 대박, 그게 아니면 쪽박이라고 인식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피처폰 CP가 줄어들어 상황이 호전됐다지만, 과거에는 콘텐츠 업체들이 어떻게 해서든 첫 화면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통신사에 '줄'을 서기도 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통신사들이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통신사들은 콘텐츠 업체를 관리하는 'CP관리 업체(MCP)'를 둬 개별 콘텐츠 업체를 관리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보통 자회사나 해당 통신사 출신 임원이 관리하는 MCP는 막강한 영향력을 거머쥐었다. 말하자면 콘텐츠 업체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셈이다.

여기에다 통신사가 무선인터넷콘텐츠 '유통비'로 챙겨먹던 것과 별개로 자회사인 MCP를 동원해 중간 유통마진도 한번 더 챙겼다. 앱 개발사의 CEO는 "지금은 오픈마켓이라 달라지고 있지만, 과거 통신사와 CP가 수익을 3대7로 나누기로 했다면 통신사들은 자회사나 관계사인 MCP를 만들어 별도로 5% 이상의 수익을 배분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 무선인터넷 업체의 현직 CEO는 "통신사들이 일단 울타리를 치고 그 울타리 안에서도 말 잘 듣는 일부 CP만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벤처들을 관리했다"면서 "중소 벤처를 상생의 동반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2세대 무선인터넷 시대를 넘어 4세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는 지금, 다시는 공멸의 법칙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와 CP가 '갑을관계'에 매달린채 생태계를 등한시하고 있을 때 고객들은 '정보이용로 폭탄'을 맞으면서 자살하는 학생들까지 나타났다"며 "결국 통신사들과 CP들은 국민들로부터 '몹쓸 무선인터넷 사기꾼'으로 인식됐다"고 지적했다.

SK텔레콤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무선인터넷 시장 황폐화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반성한다"면서 "스마트폰 시대에서는 가장 튼튼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이창희 시장조사과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일반폰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계약과 관련한 실태조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며 "수익배분 실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상생을 위한 기본적인 거래관계의 틀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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