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IT생태계 붕괴, 반복되는 '공멸의 법칙'


[생태계없이 IT 재도약 없다 ①무너진 생태계]

아이뉴스24는 [같이 가면 더 멀리, IT 생태계를 살리자]의 2부 <생태계없이 IT 재도약 없다>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 시리즈는 지난 90년대 말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벤처, 그리고 무선인터넷 전성시대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불과 10여년 만에 벤처는 간 데 없고 고학력 청년 3분의 1이 실업자인 세상을 맞이했다. 벤처몰락과 생태계 붕괴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아이뉴스24는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이 동반자적 상생관계 구축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 조성을 등한시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애플 아이폰 충격이 IT 업계를 강타한 지금, 과연 우리의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는지, 생태계 복원을 위해 과연 대기업들은 노력을 하고 있는 지, 한다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집중적으로 진단할 예정이다. 우선 지금의 현실과 과거의 문제점을 분석·진단하고 생태계 복원의 과제를 찾아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생태계를 잘 만들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과거의 교훈'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특별취재팀: 강호성팀장, 강은성, 김영리, 김현주, 박계현]

#벤처가 꿈틀대기 시작한 15년 전 업계에 발을 디딘 A 사장. 그는 "겉모습이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속에 바뀐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단말기를 제조하는 기업을 운영중인 A 사장은 불과 몇 개월전의 얘기를 털어 놓았다.

'일단 만들라'는 통신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몇 번을 속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이 바닥에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갖춘 단말기를 내놓으려면 8개월 가량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지금 공급하지 않으면 거래관계가 끊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구두약속'을 믿을 수 없었지만 만들 수밖에 없었던 A 사장은 지금도 창고에 가득 쌓인 재고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A 사장은 "나중에 대기업에서 통보해온 것은 경쟁제품보다 경쟁력이 없으니 공급을 중단하라는 한마디였다"며 "그러고는 아무 언급도, 보상도 없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반복되는 공멸의 법칙

불과 10여년 전. 벤처 업계를 황폐화시키고, 통신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말라 죽였던 교훈을 벌써 잊은 듯 IT 생태계 복원의 움직임은 느리기만 하다.

빙송통신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실태조사를 보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과 콘텐츠공급사(CP) 및 솔루션 협력사들의 외형적 수익 배분율은 다소 증가했지만, 벤처의 눈물과 땀을 쥐어 짜내는 불공정거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중소벤처의 기술을 빼앗아 자기 기술인양 행세하는 일도 버젓이 반복되고 있다. 통신 대기업에 제출하는 기술제안서 양식에는 벤처가 제안한 기술의 소유권이 통신사로 넘어간다는 '기술뺏기'도 존재한다. 대기업이 벤처기업들로부터 소프트웨어(SW) 기술인력을 빼내가면서 벤처기업들은 존폐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아이뉴스24가 기획 시리즈를 시작하며 인터뷰한 업계의 주요 관계자들은 애플 아이폰의 쓰나미를 겪으면서, 우리 모바일 생태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은 너도나도 중소벤처 기업들과의 상생을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중소벤처들과의 '반(反) 상생의 관계' 폐해가 반복되는 것은 인식의 전환은 이뤄지고 있지만 실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아이뉴스24가 연재한 연중기획 시리즈 '중기벤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에서 안철수 교수는 "대기업 회장님이 상생의 철학만 말 할 게 아니라, 당장 실적이 나지 않더라도 중기벤처와 협력에 노력한 실무자의 인사고과만 높게 주도록 바꾸어보라.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 것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석채 KT 회장이나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최고위 임원들이 상생의 길을 주문하더라도, 실무자에 대한 평가가 중소벤처를 얼마나 쥐어짜냈는지에 대한 '실적'이라면 상생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과거 대기업과 중기벤처의 '反 상생 관계'의 현장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선인터넷 솔루션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B 사장이 들려준 얘기 역시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B 사장은 국내 최고 반열의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학전공이었지만 회장실에서 근무하던 그는 결국 그룹의 시스템통합(SI) 전문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B 사장은 90년대 중반 벤처의 꿈을 안고 창업을 택했다. "IT의 가능성에 무궁무진한 희망을 찾았고 열심히 하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기술과 열정으로 무장한 김 사장은 그러나 '안되는 게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기술보다 통신사 입맛에 맞는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 참 뒤였다. B 사장은 '분명히 기술은 앞서는데, 통신사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굽신대는 성격도 못되는 그는 결국 회사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문제제기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요즘말로 바로 제명입니다. 재기가 불가능하니까요." 김 사장은 지금 아내가 운영하는 식품점을 도우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B 사장처럼 업계를 떠나거나 떠나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생태계붕괴, 벤처-대기업-캐피탈 복합 작용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벤처사업가의 인기는 대단했다. 99년 결혼정보회사 에코러스가 만 24세 이상 33세 미만의 미혼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으로 벤처 사업가(32.8%)가 뽑히기도 했다. 판사나 검사, 의사 등 그때까지 1등 신랑감 자리를 내주지 않던 직종을 뛰어넘은 결과였다.

벤처기업들 가운데는 환경변화에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고 기술력만 믿거나 한탕주의로 벤처 열풍에 끼어들었다가 시장을 망치며 무너진 곳도 존재했다. 이들은 곧 퇴출됐지만 벤처시장에 남긴 악영향이 적지 않았다.

'묻지마 투자'를 받은 20대 게임사 사장이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던 모습이나 한탕주의에 눈멀어 투자금을 횡령하다 CEO가 구속되는 사건도 심심찮게 터졌다. 수십 만원짜리 최고급 위스키로 만든 흥청망청 폭탄주도 오가고, 테헤란밸리 룸싸롱에는 벤처 사업가들로 가득찼다.

인터넷 업계의 한 CEO는 "벤처부정과 함께 투자라기보다 보증에 매달리며 사채놀이나 다름없었던 벤처캐피탈, 인수합병(M&A)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출구시스템 부재, 실패한 벤처가 재기할 수 없는 제도적 장벽 등 생태계 붕괴를 가져온 복합적인 요인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경 없는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플랫폼(통신사)과 콘텐츠, 소비자로 이어지는 튼튼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대기업이 먼저 불신의 고리를 끊어내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생태계 붕괴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겠지만, 대중소 벤처기업의 협력관계를 본다면 대기업의 반성과 쇄신, 실질적인 동반자로서의 인식이 필요하다"며 "생태계 붕괴의 출발점을 여기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it@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IT생태계 붕괴, 반복되는 '공멸의 법칙'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