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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대규의 휴맥스 혁신 이야기


벤처회사를 세우고도 4~5년 동안 사업분야를 정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세운 기준은 한국이 강한 산업분야일 것, 기술의 뿌리가 닿아 있는 분야라는 것이었다. 그게 디지털 가전이었다.

대학 내 연구소에서 출발한 벤처설립 21년. 2010년 이 회사는 매출 9천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8일 오후 서울 르네상스 호텔에서 개최된 1천억 벤처기업 시상식 기조강연에서 '휴맥스 혁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80년대 말 인켈, 롯데파이오니아, 태광에로이카, 아남전자... 쟁쟁한 아날로그 가전회사들이 있었다. 디지털 가전 산업이 새로 열린 때라 "우리 같은 신생기업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말처럼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인켈보다 큰 회사로 성장했다. 사실 휴맥스가 잘했다기 보다 산업 흐름의 변화로 아날로그 기업들이 주저 앉은 것이다.

휴맥스는 셋톱박스 분야에서 세계적인 톱 메이커로 인정받고 있다. 다시 도전장을 던진 곳은 '카인포테인먼트' 산업이다. 20년 전 디지털가전과 디지털TV의 시대가 세상을 흔들었다면, 지금 자동차가 그 변화의 가운데에 서 있다는 결론이었다.

변 사장의 성공비결에는 항상 마음 속에 되새기는 '공식 1조'가 있다. "내가 그 사업에 뛰어들면 무슨 변화가 생기나,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해 해답을 찾았고, 그 이유로 성공했다.

셋톱박스의 성공에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시장이 없었다. 95년 초 개발하기 시작해 96년 10월 드디어 첫 제품 개발이 끝났다. 출하한 지 3개월 동안 1천만 달러치를 수출했다.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해 출시했던 절반이 불량품으로 되돌아왔다. 98년 초 출시된 신제품이 아니었다면 부도를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휴맥스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벤처정신으로 똘똘 뭉친 까닭이었다. 직원들에게 휴맥스는 '내 회사'였다. 월급을 못 줘도 떠나지 않고 내 일처럼 여기는 주인의식이 넘쳐났다.

"기술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막상 나가보니까 기술경쟁력도 없고, 돈도 없고, 생산경험도 없고... 망하는 게 당연했다"고 변 사장은 말하지만, 벤처정신이면 못할 게 없었다. 90년 대 말 500억 매출을 달성했고 2001년 1천억 규모로 커갔다.

변 사장은 그때가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였던 것이다. 그는 "아마추어 기업이 전문벤처 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의욕이었다"고 회상했다.

성장에 따르는 필연적인 부산물일까. 급격하게 조직이 나빠졌다.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 모두가 "네 탓"인 문화가 생겼다. 매출은 4천억, 5천억으로 늘었지만, 회사는 곪아갔다. "밖에서 저를 향해 박수를 치면, 안은 곪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 때 배웠습니다."

변 사장은 이제 전세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0여년 전 휴맥스는 새로운 기회를 잘 활용해 기존 기업들을 공격하던 회사였다. 그러나 2010년 휴맥스는 기존 기업이 됐고, 신생 기업들은 끊임 없이 휴맥스에 도전한다.

그는 회사의 'DNA'를 바꾸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수십 명 벤처기업과 700명이 넘은 중견기업의 문화가 같으면 안 된다. 더 이상 벤처정신만 가지고는 비즈니스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지난 2007년부터 4년째 혁신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전세계의 공장과 지사의 공급망관리(SCM) 사고방식을 바꾸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6개월쯤은 기본적으로 늦어지던 개발영역에도 '혁신적 관리'를 도입했다. 이제 3주 이상 늦어지는 개발프로젝트는 없어졌다.

"회사에서 엉터리 사장이라는 소리 안 듣는 사람이니, 혁신하자고 하면 따라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꼼짝도 안 하는 겁니다.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제는 인식전환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혁신할지 지식도 없었다. 혁신이 뭔지 어떻게 혁신하는 지를 배우는데 1년, 분야별로 적용하는데도 몇 년씩 필요했다.

휴맥스는 올해 800억원 가량의 순이익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혁신으로 인한 것이 200억~300억원 가량 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지금 휴맥스는 조직과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넘어 휴맥스 만의 기업문화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열심히만 일하면 되는 아마추어 기업의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인생을 걸고 함께 일할 좋은 사람을 합류시키기 위해서는 '열정와 주인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프로패셔널'하게 일도 잘하는 기업문화가 절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7천억~8천억이 넘어가면서 회사 규모보다 내부에 재능 있는 인재가 많은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이 모자라서 성장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규모가 커지니까 아무리 좋은 사업을 찾아내도 함께할 사람이 모자라면 성장을 못하겠구나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해치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고 했다. 6월에 끝나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하라고 요구할까봐 가만 있다가 막판에 얘기한다거나, 6월에 끝내도록 하기 위해 (지연될 것을 알고) 3월에 끝내라고 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의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회사, 개인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회사를 만드는 게 스스로 맡은 책임이라고 여긴다.

변 사장은 "'휴맥스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명제를 앞에 두고 앞으로의 20년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맥스의 혁신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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