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2000년 3월 26일 안철수 안연구소 사장을 필두로 시작된 릴레이인터뷰가 50회를 맞았습니다.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코너는 인터뷰를 한 사람이 다음 인터뷰대상자를 선정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1년6개월동안 연재돼왔습니다.이 때문에 릴레이인터뷰에는 늘 예측할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했습니다.
릴레이인터뷰코너는 눈물겨운 고난기와 각양각색의 창업스토리를 통해 벤처기업을 창업,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또 벤처산업계의 인맥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지를 살펴볼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닷컴열풍 등 외부의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정도를 걸으며 성공신화를 일궈가는 스타급 무명선수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쏠리테크 정준 사장이 추천한 50번째 주인공은 아이월드네트워킹의 허진호 사장입니다.허 사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유명한 CEO죠.정 사장은 허 사장에 대해 “인터넷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명쾌하게 읽어내는 CEO”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월드네트워킹 허진호 사장의 창업과 사업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아이월드네트워킹 허진호(41) 사장.늘 인터넷 전도사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인터넷등장이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을 가장 먼저 창업한 인터넷벤처 1세대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그동안 언론매체를 통해 누구보다도 인터넷의 도래를 예언하고,그 중요성을 강조해왔다.KAIST재학시절 국내 최초의 인터넷망인 ‘SDN’을 미국 하와이대학과 연결,구축한 기록을 갖고있다.
벤처창업 8년차인 허 사장은 그만의 독특한 사업사이클을 갖고있다.하는 사업마다 늘 국내 최초였고,늘 가장먼저 신천지를 개척했다.두번째는 100억원대가 넘는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냈고,먼저 시장을 개척한 후에는 늘 후불주자들이 대거 뛰어들었다는 점이다.시장도 예외없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는 시장을 내다보는 허진호의 사업적 감각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 지를 짐작케하고,CEO로서의 그의 브랜드인지도가 얼마나 높은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수 있다.
강남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약간 마른 체격에 덥수룩한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허 사장은 최근 결심을 하나 했단다.그동안 한두달씩 기르고 짜르던 수염을 최근엔 아예 계속 기르기로 마음먹었단다.
그동안 공무원이나 나이든 고객사 임원이라도 만날라치면 괜스레 수염 때문에 버릇없는 친구라 생각할 까 조바심도 냈지만 이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단다.
제멋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이젠 주위 눈치를 보기보다 스스로 중심을 갖고 자신만의 컬러를 분명하게 드러내며 살겠다는 뜻이다.허 사장은 매우 자유분방한 CEO다.생각도,행동도 늘 자유롭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그는 늘 케주얼한 복장이다.허 사장은 매우 달변이면서도 논리정연한 사고를 갖고있는 CEO다.특히 인터넷의 흐름과 대세에 대한 감은 타의추종을 불허할만큼 탁월하다.
그는 요즘 조용하다.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활동을 거의 끊었단다.그래서일까? 그에겐 고수의 풍모가 조금씩 묻어났다.2000년 2월 설립된 아이월드네트워킹은 MSP(Management Service Provider)전문업체.기업 네트워크,서버등 정보인프라를 관리해주는 사업을 한다.
◆ 혜성처럼 나타난 인터넷스타
94년 10월,조선호텔 2층 회의실. 가느다란 몸매에 유독 반짝이는 눈을 가진 허진호는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하얀 와이셔츠는 커서 목둘레가 헐거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월드와이드웹이 곧 상용화될 것입니다.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쉽게 월드와이드웹에 접속할수 있어야 합니다.아이네트는 인터넷접속서비스를 할 것입니다”
동그란 금테안경을 한 허진호는 연신 눈을 반짝거렸다.달변에 빠른 그의 말솜씨는 온통 ‘인터넷’뿐이었다. 무명이던 허진호는 난생 처음 기자회견을 하며 그렇게 벤처산업계에 데뷔했다.
허진호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KIAST 전산학과 박사출신이다.그 유명한 KAIST 전길남 교수의 수제자다.전교수가 지도교수였던 시스템아케텍처(SA)랩의 멤버였다.정철(현 삼보컴퓨터고문),박현제(주인네트 사장),김유진(인프론테크놀로지 사장) 등이 랩동기들이다.
허진호의 인생은 국내 인터넷의 대부로 불리는 전길남교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그가 박사학위를 받고도 학계가 아닌 산업계에 진출한 것은 지도교수였던 전 교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허진호가 20대에 암벽등반에 심취했던 것도 3대 알프스봉을 정복한 바있는 암벽등반전문가인 전교수때문.SA랩 멤버중 가장 사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정철박사의 제안으로 그들은 90년 휴먼컴퓨터를 창업한다.
허 사장이 삼보컴퓨터의 핵우산으로 들어간 것은 휴먼컴의 대주주가 삼보였기 때문.2년후인 92년 삼보경영진의 요청으로 허진호는 삼보컴퓨터로 자리를 옮긴다.PC사업부에서 기획,마케팅 등의 일을 했다.
이미 박사과정을 마치고 창업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터라,그의 직장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94년 6월,삼보를 그만두고 벤처창업에 나섰다.그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누구보다도 인터넷에 일찍 눈을 떴기 때문.
90년,91년 설립된 미국유유넷과 PSI넷이 성공을 거두며 인터넷서비스 제공업(ISP)의 가능성이 증명됐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했다.
94년 5월,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인터넷관련 국제행사인 아이네트컨퍼런스에 참석한후 그의 결심은 행동으로 옮겨졌다.허진호는 이곳에서 유유넷 창업자를 만나 구두로 사업협력약속까지 받아낸 상태였다.
94년 6월,삼보컴퓨터를 퇴사했다.8월에 아이네트를 설립했다.그리고 11월 1일 서비스를 개시했다.당시만해도 한국통신,데이콤이 ISP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다.미국까지 전용선을 깔고,전용선으로 접속하는 방식과 일반 전화를 통한 다이얼업 서비스를 제공했다.
인터넷붐이 일 것이란 그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95년 들면서 인터넷붐이 일었다.두산 현대 삼성 LG 한솔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ISP시장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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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것 없는 세월,잇따른 1호 기록
아이네트는 인터넷벤처 1호기업.당시에는 전자상거래도 없었고,인터넷하면 오로지 ISP밖에 없었다.아이네트등장이후 10여개 대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할 정도로 ISP 시장은 분명 뜨는 신개척지였다.
허 사장의 사업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 지는 아이네트의 서비스시점을 살펴보면 금새 알수 있다.ISP사업은 한통이 94년 8월 1일 시작했고,데이콤은 10월 1일,아이네트가 11월 1일 개시했다.즉 초대형 전화회사인 한통이나 데이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한 것.
또다른 기록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기힘든 120억원규모의 투자유치.허 사장은 ISP사업의 경우 회선임대비용이 워낙 크고,국제전용선을 확보하는 문제 때문에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95년 5월 대규모 증자를 단행했다.
120억원의 투자자금을 끌여들었다.100억원대가 넘는 투자자금을 끌어들인 최초의 벤처기업이었다.허진호는 이를 계기로 벤처업계에 확고한 CEO로서의 브랜드인지도를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통과 데이콤을 빼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이 한군데도 없다는 점은 아이네트(현 PSI넷)의 사업모델이 어느정도 파워풀했는 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주위에서는 다들 자금력도 없고,그룹사 수요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확장은 무모하다고 지적했다.하지만 그는 더욱 규모를 키우며 도전했다.“대기업들이 자금력측면에서 유리하겠지만 기술력과 시장흐름을 파악,사업화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랬다.그는 96년,10여개 대기업을 제치고 한국통신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물론 이 때도 삼보가 46%로 1대주주였다.여기서 잠깐 삼보 이용태회장의 핵우산밑에서 컸다는 세간의 입방아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사실 박사과정후 그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창업하기는 힘들었다고 봅니다.핵우산은 분명 장단점이 있지요.하지만 삼보를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후일 창업에 필요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95년 2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매년 100%이상 늘어 96년 80억원,97년 120억원,98년 180억원을 기록했다.99년에는 무려 330억원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2000년에는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50억원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 묻혀진 이야기,온라인게임 리니지의 운명

아이네트를 설립한 후 허진호 사장이 펼친 사업들은 결과론적인 추론이지만 대단한 것들 일색이었다.물론 ISP란 비즈니스모델을 기획해낸 것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추진한 것중 묻혀진 스토리가 몇 개있다.대표적인 게 바로 온라인게임 ‘리니지’.리니지는 코스닥등록으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사장을 국내 8위 재산가로 올려놓은 대박작품.
그렇고 그런 SI업체였던 엔씨소프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리니지가 실은 아이네트에서 인큐베이팅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많지 않다.인연은 리니지 개발주역인 현 엔씨소프트 송재경이사로부터 시작된다.
KAIST후배인 송재경씨는 당시 넥슨의 김정주 사장과 함께 머드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96년초 허 사장을 찾아온 송재경씨는 2차원의 그래픽머드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고,허 사장은 KAIST후배인 송재경씨를 받아줬다.4명의 전담팀을 꾸려 지원했다.
허 사장은 물론 리니지원작자인 만화가 신이숙씨와 리니지 캐릭터와 서비스시 매출액의 얼마를 준다는 내용을 계약서를 체결했다.그리고 1년 6개월간 송재경씨는 개발에 매달렸고 그게 바로 리니지였다.리니지의 엔진과 기본골격을 거의 다 개발한 상태였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 가? 리니지의 장래는 IMF가 불어닥치면서 순식간에 바뀌었다.97년말,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은 허 사장을 찾아와 부탁을 하고 있었다.
“송재경 팀장을 주세요.게임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IMF로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허 사장입장에서는 어차피 ISP 사업이 주력인 아이네트입장에서 게임사업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다.
98년초 투입한 개발비를 감안,2년간 매출액의 10%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사람과 개발제품 모두를 엔씨소프트에 넘겼다.그리고 서너달후인 98년 6월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에서 서비스를 개시,소설처럼 대박의 꿈을 건져올렸다.
물론 이 계약으로 아이네트는 2000년 7월까지 리니지매출의 10%를 꼬박꼬박 받아 개발비의 몇 십배에 달하는 몇십억원을 챙기는 행운을 안았다.하지만 그 것은 코스닥황제주로 군림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두번째 스토리는 아이월드닷넷.95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 사이트는 지금의 포털개념.모든 컨텐츠를 한곳에서 볼수 있도록 한 사이트였다.경제,문화,사회,연예 등의 메뉴를 구성,야후의 디렉토리서비스와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97년초까지 서비스를 했다.이 사이트는 당시에 벌써 지금의 동호회아이템인 카페라는 코너는 물론 개인홈페이지,가요톱10 등 인기코너를 수개 가지고 있었고,조선일보 사이트 다음으로 히트수가 많았다.
하지만 수익모델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닷컴비즈니스에 집중할 사업적 여력이 없어 97년 중반쯤 포기했다.94년에는 ‘인터넷고서비스(IGS)’란 바둑서비스도 시작했다.
윈도기반으로 시작한 이 서비스는 95년도에 이미 유료화를 시도했다.그는 그만큼 인터넷비즈니스의 수익모델에 대해 일찍 눈을 뜨고 있었다.결국 97년 일본 NKB란 회사에 매각,현재 ‘팬다넷’이란 브랜드명으로 서비스중이다.
이렇듯 그는 온라인게임,포털,닷컴사업을 누구보다도 일찍 시작했던 선구자였다.하지만 97년말 불어닥친 IMF는 모든 것을 ISP에만 집중시킬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고,결국 그의 이러한 시도는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고 말았다.
◆ 대결단,홀로서기의 계절
96년 가을,허진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며칠밤을 고민하고 있었다. 2,3년간 ISP사업을 해오며 내린 결론때문.사업의 성공열쇠는 자금력이었다.그는 돈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고민끝에 사업제휴를 맺고있던 미국 유유넷에 투자유치를 타진했다.96년 11월 유유넷에서 응답이 왔다. “아이네트를 사고싶다.지분 51%를 넘기면 2000만달러(당시 환율로 200억원규모)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대주주가 반대했다.여전히 내 회사 개념이 강한 주주를 설득하기 힘들었다.결국 포기했다.97년,2차 증자도 주주들의 반대로 실패했다.97년 IMF가 불어닥치면서 경기가 급속도로 침체,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증자도 반대하고,매각도 반대하니 방법이 없었습니다.결국 외부투자를 받거나,매각하는 것외엔 해법이 없었죠” 허진호는 결론을 내리고 주주들에게 강한 톤으로 주문했다.
결국 98년 9월 미 PSI넷과 지분 100%를 넘기는 딜을 성사시켰다.CEO로서 2년간의 고용계약서도 썼다.물론 주주들은 큰 돈을 벌었고,허 사장 자신도 사업밑천 정도는 손에 쥐었다.
99년에 드디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지분하나 없는 전문경영인.흑자달성.그리고 안정된 매출구조.허진호는 어느덧 아이네트에 대한 사업적 흥미를 점점더 잃어가고 있었다.
◆ 돌아온 장고
“이제 더 이상 아이네트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추신 : 이 글을 읽고 더 이상 나를 설득해도 소용없습니다.전 이미 작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허진호는 PSI넷 회장과 총괄 COO,아시아퍼시픽담당 사장 등 3명에게 e메일을 보냈다.조금씩 소문이 퍼지자 99년 12월초 사직을 결심하고 이를 대내외에 공표했다.
그의 결심은 99년 11월 문상을 마치고 서울행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친구와 우연히 나눈 얘기가 결정적이었다.또한번의 도전을 결심했다.허 사장은 사업아이템을 정하는 것은 순전히 ‘느낌’이라고 했다.
“전 ‘느낌’이라 생각해요.될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아이네트때도 그랬고,아이월드네트워킹 창업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는 ‘네트워크관리’란 말에 순간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그는 네트워크관리가 ISP와 인접한 분야이고(나중에 사업을 해봤더니,전혀 다른 분야였다고 부연설명),본인이 잘아는 분야라고 생각했다.2000년 1월말 사직했다.
“그만둘 무렵엔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0년 2월,그는 회사를 설립,또한번 벤처창업대열에 합류했다.돌아온 장고는 숨가쁘게 움직였다.초기 자본금 23억원,직원은 7명으로 시작했다.
(돌아온 장고는 아이네트를 그만둔 그가 한두달 쉬다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다시 창업,컴백하자,기자들이 붙여준 닉네임이다)
그것도 국내만 하는 게 아니고,일본,싱가포르에서 거의 동시에 법인을 출범시켰다.“MSP분야의 경우 지역의존도가 높은 기술기반의 서비스입니다.즉 코어기술은 국가별로 공통적으로 적용가능하고,24시간 모니터링도 가능해 시너지효과가 있다고 판단했지요”
허진호의 브랜드는 또한번 큰 일을 해냈다.창업한 지 5개월여만인 2000년 7월,월드뷰테크파트너스,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뉴튼테크파트너스등 세계적 투자기관들로부터 1500만달러(한화로 200억원규모)규모의 외자를 유치한 것.
자본금을 75억원규모로 늘리며 대규모 실탄을 확보했다.’허진호’라는 개인브랜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외자유치였다.MSP란 말은 이 때 처음 등장했다.허 사장이 아이월드네트워킹을 창업하자,후발주자들이 너도나도 MSP 시장에 뛰어들며 총력전을 펴기 시작했다.
MSP는 아이월드네트워킹이란 회사의 등장으로 새로 생겨진 신조어였고,허진호에 의해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뉴마켓이었던 셈이다.
SI업체는 물론 서버호텔을 운영하는 IDC업체들도 앞다퉈 진출,30 여개 업체가 북적대기 시작했다.대형 SI업체마저 앞다퉈 MSP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직 시장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매출은 지금부터 시작이란다.지난해 매출은 6억5000만원수준.현재 국내 10개사,해외 10여개사를 고객으로 유치,올해는 해외포함 25억~30억원쯤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 4/4분기에는 흑자를 낼수 있을 거란다. “ISP처럼 고정비가 크게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내년말쯤 흑자를 달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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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호의 침잠
“사이버닷컴은 가라” 지난해 허 사장은 C신문 컬럼을 통해 수익모델없는 벤처기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퍼부었다. “전 당시 수익모델없이 미래가치만 보고 투자한다는 것을 진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허진호는 94년 창업후 1년간 매주 강연과 교육,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다.인터넷이 무엇인 지를 강연하고,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인터넷 확산을 위해 어쩔수 없었다.
기고등을 통해 인터넷 대세론을 끝없이 펼쳤다.그리고 지난해까지는 닷컴열풍에 대한 지적과 거품론으로 인한 닷컴열기가 급격히 사그라드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의 지적 역시 꾸준히 제기해왔다.
하지만 허진호는 최근 들어 조용하기 그지없다.그 이유를 들어봤다.아이월드네트워킹을 창업하면서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란다. “사업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코멘테이터(commentator.해설자)역할은 안하기로 작심했어요”
해설자로서의 역할이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판단때문이다.물론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훈수는 쉽습니다.하지만 자기반성없이 남얘기를 너무 쉽게 한 것같아요.닷컴CEO 역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습니까? 너무 쉽게 얘기한 것아니냐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가능하면 컬럼이나 코멘트를 가급적 안할 생각이란다. “최근에 내년 IT시장 전망을 해달라는 기자들 질문을 받고 정말 황당했습니다.어떻게 급변하는 IT산업의 내년 경기를 전망할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질문에는 절대 답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이리 몸을 사리는지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절감합니다.점점 조심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전 30대에 코멘테이터 역할을 참 많이 했습니다.고민을 많이 하지않은 상태에서 많이 한 것같아요.이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대한 그의 확신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인터넷은 대세입니다.인터넷비즈니스라고 하는 말은 없습니다.다만 인터넷은 모든 비즈니스의 토대입니다.기존의 모든 비즈니스는 모두 인터넷에 녹아 들어가고 있는 셈이죠”
닷컴열풍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닷컴열풍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고 봅니다.하지만 일방적인 매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는 벤처캐피탈들이 시류에 편승,냉온탕을 왔다갔다한 것도 판단기준이 없어 생긴 일이라고 지적한다.
허진호.이 땅에 인터넷을 널리 보급시킨 인터넷전도사. 허진호 사장은 여전히 앞선 사업감각으로 오늘도 신천지개척에 온 몸을 던지고 있는 진정한 모험기업가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수염을 기르게 된 동기는 99년 여름 가족과 처음 떠난 미국여행때문이라고 합니다.수염을 길렀더니 가족들이 보기좋다고 해 기르게 됐다는 군요.허 사장은 꼭 하고싶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스쿠버다이빙과 요트,비행기조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초경량 경비행기조정은 꼭하고 싶다고 하네요.역시 그는 모험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김광일기자 goldpa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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