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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보톡스- 독에 의한 아름다움


독으로 화장을 하다

나의 몸에는 해롭더라도 아름다워지고 싶은가? 이 원초적인 질문은 비단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인류 ‘화장’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풀지 못한 딜레마 중의 하나였다.

화장이란 억누를 수 없는 인간 본능 중의 하나이며 그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화장의 기원을 인류 문명의 기원과 같은 시기로 추정한다. 즉 인류의 시작과 함께 화장은 시작되었고 화장이 시작되면서 여자들은 화장품으로 사용한 물질들이 가진 독과 아름다움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험한 줄타기를 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일이기도 하였다.

기원전 4세기경 고대 아테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얼굴이 하얗게 보일수록 아름다움의 극치라는 풍조 때문에 당시 여인들은 흰색 가루로 화장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얼굴을 하얗게 보이도록 발랐던 이 가루의 주성분은 납이었다. 파우더의 효시라고 할 수도 있는 이 납 가루는 이로부터 무려 2천 년 이상이나 피부를 창백하리만큼 하얗게 보이고 싶어하는 여인들에게 애용되어 왔고 이로 인해 수많은 여인들이 납 중독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백연, 석고, 백묵 등으로 진하게 화장하는 이른바 ‘백연 편집증’이라고 하는 유행은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를 중심으로 지중해 일대에 널리 유행하며 퍼졌는데 백연의 지나친 남용으로 얼굴에는 반점이 생기고 치아가 검어지고 심하면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는 증상에 시달리곤 하였다.

이렇듯 얼굴을 티없이 밝고 창백하게 보이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는 15세기를 정점으로 그 극에 달하게 되는데 머리카락만 남기고 눈썹을 포함한 모든 털을 제거하고 온몸에 흰 납 가루를 바르는 전신 화장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어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장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관심으로 현대식 화장의 발판을 마련한 여인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다. 재위 기간 중 발명된 유리 거울에 흠뻑 매료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거울 속에 선명하게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마련한 몇백 개의 가발을 쓰고 끊임없이 하얀 분을 바르며 화장에 도취하곤 하였다. 하지만 말년에는 늙어버린 자신의 추한 모습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영국 전역에서 대유행을 하던 유리 거울의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는 기록도 남아있는데 여왕은 결국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자 죽는 그 날까지 얼굴 뿐만 아니라 온 몸에 백연 가루를 두텁게 바르고 궁 밖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화장은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수많은 여성들에게 순간의 기쁨을 주었고 화장품 소재로 사용한 물질의 독성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동시에 얻기도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화학과 생물학의 발달로 그간 사용돼온 납에 의한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규명되었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화장품의 소재들이 속속 개발돼 본격적인 화장의 토대가 비로소 마련되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화장품의 부작용은 끊임없이 야기되곤 하였다.

현대사회에 접어 들면서 피부 노화에 따른 얼굴의 주름은 유사 이래 여성들이 고민하였던 피부 미백 과는 또 다른 고민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1950년대 이후 피부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얼굴 주름을 제거하는 수술 등이 도입되어 일부 여성들에게 시술되었지만 얼굴 표정을 만드는 근육의 재구성 없이 주름제거에는 한계가 있어 완전한 효과는 거두지 못하여 나이는 속일 수 없다며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생명공학의 발달로 보톡스 (Botox)라는 의약품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의 영원한 고민거리인 얼굴 주름을 해결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소시지나 통조림을 먹게 되면 온 몸의 근육이 마비되어 죽는 치명적인 식중독을 일으키게 되는데 1895년에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혐기성 병원균에 의하여 식중독이 일어난다고 밝혀졌고 보툴리눔균이 분비하는 독소인 보툴리누스 (Botulinus)에 의하여 일어나는 질병을 일반 식중독과는 달리 보툴리누스 중독증 (Botulism)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보툴리눔균은 7가지 (A~G)의 보툴리누스라는 신경독을 분비하는데 운동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곳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방해, 근육의 수축을 억제하여 근마비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툴리누스는 1천 만분의 1그램의 초극미량으로도 한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수저 1숟갈 분이면 지구에 살고 있는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독성을 가지는 신경독이지만 미국의 바이오 벤처기업인 앨러간 (Allergan)이라는 회사는 이러한 사실에 착안, 근육을 마비시키는 신경독을 초극미량만 사용하면 나이가 들어 눈꺼풀 주위가 떨리는 안검경련을 겪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약으로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1990년대 중반에 개발에 착수하였다.

앨러간사는 7가지 신경독 중 실제 정제가 쉽고 비교적 독성이 안정적인 보툴리누스 A형 독소를 가지고 1987년부터 임상시험을 시작, 1989년에 미국식품의약국 (FDA)로부터 ‘보톡스’라는 상품명으로 안검경련 완화용으로 신약 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노인인 안검경련 환자들이 앨러간사의 보톡스 주사를 맞고 나면 미간 사이의 주름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양쪽 눈가의 주름도 없어졌다는 보고가 미국 전역에서 이어지자 앨러간사는 그리 시장성이 없던 안검경련 적응증과는 별도로 아예 주름을 제거하는 효능을 1991년에 추가로 인정받아 세계적인 주름 제거용 신약으로 시장을 석권하여 버렸고 앨러간사는 초대박을 맞게 되었다.

주름을 제거하는 보툴리눔 시장의 80% 이상이 앨러간사의 상품인 ‘보톡스’가 차지하다 보니 일반명사화가 되어 버렸고 앨러간사는 자사 제품의 마케팅 비용까지도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발기부전치료제의 대명사 ‘비아그라’ 이래 최대의 돈 되는 신약 (?)으로 꼽히는 보톡스는 그 효능과 간단한 시술법만으로도 성형과 미용의 역사를 다시 쓸 정도의 혁명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현재 미국에서는 해마다 약 500만 명 정도가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열기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피부가 곪고 병들어 가는 것을 알면서도 백납 분을 발랐던 것이나 보톡스라는 신경독으로 얼굴 근육을 마비시켜 피부를 팽팽하게 하는 것도 모두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에 기인하리라 여겨진다. 애초에는 섬기는 신에게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하여 시작된 화장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성에게 아름답게 보여지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여성 자신의 자기만족을 충족하기 위하여 행하여져 왔는데 화장은 앞으로도 여인을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시간이 흘러 먼 훗날에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은 과거 역사 속의 그녀들이 범하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는 기록과 함께 보톡스 또한 또 하나의 화장의 역사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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