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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인터넷언론 8년…"이젠 융합이다"


20일 9시 30분. 서울 여의도 증권업협회 8층 기자실과 홍보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몇몇 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4일 주총에서 김진호가 밀려난다며?" "그게 어디 쉽겠어." "아냐! 아무래도 이번엔 심상치가 않아!" "금고나 농구단 인수를 놓고 반대하는 세력이 많다던데?" "아무튼 오후에 이지오스 측에서 온다니까 얘기를 들어보면 알지."

‘골드뱅크 경영권다툼 기자회견 현장'

2000년 3월 20일. 아이뉴스24가 첫 발을 내딛던 이날은 마침 골드뱅크의 주총이 예정돼 있었다.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컨셉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골드뱅크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전 미디어들은 이날의 주총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아이뉴스24는 기자 두 명을 급파해 '현장중계' 형식으로 처리했다. '골드뱅크 경영권다툼 기자회견 현장'이란 제목의 그 기사는 당시로선 하나의 파격이었다. 신문 기사라고 하면 '점잖고, 딱딱하다'는 기본 통념을 여지 없이 깨버렸던 것.

문어체와 구어체를 적절하게 섞어 쓴 이 기사는 당시 '인터넷 미디어는 생동감 있는 매체'란 인식을 심어주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뉴스24와 독자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터넷 언론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인터넷언론 현장을 지킨 것은 아이뉴스24 뿐만은 아니었다. 새 천년의 시작과 함께 서비스를 시작했던 머니투데이를 비롯해 오마이뉴스, 이데일리 등 주요 인터넷 언론사들이 그 무렵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한 해 뒤 창간된 프레시안과 함께 한국 인터넷 언론 8년을 지탱해 온 산 증인들이다.

연대기적으로 2000년은 '뉴 밀레니엄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언론사적으로는 '인터넷신문의 해'로 기록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형식을 바꾸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2000년 3월 20일 아이뉴스24가 첫 선을 보일 때만 해도 '인터넷신문'이란 컨셉트는 낯설기만 했다. 오프라인 기자 출신이란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취재 환경 역시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자단은 고사하고, 변변한 기자실 출입마저 쉽지 않았다. 오프라인 매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역할 분담' 개념이 정착된 상태지만, 당시만 해도 막 출범한 인터넷 신문들에 대한 오프라인 신문의 견제는 엄청났다.

그러다 보니 시덥잖은 보도자료 하나 때문에 업체 관계자들과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별 것 아니었던 것들이 '인터넷신문'이란 명함을 앞세우는 순간, 엄청난 벽으로 다가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종이신문 중심의 폐쇄적인 언론 환경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IT 분야의 아이뉴스24를 비롯해 경제, 증권 쪽을 주로 커버하는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은 오프라인 신문 못지 않은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또 하나의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 언론 역사에서 오마이뉴스를 빼놓을 순 없다. 출범과 동시에 386 의원들의 광주 술판 사건 같은 굵직한 특종들을 쏟아냈던 오마이뉴스는 기사 혁신 측면에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오마이뉴스는 특히 2000년 10월 27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의 고려대 앞 추태'를 17시간 동안 현장중계로 처리해 성가를 드높였다. 이후 조선, 동아 등 기존 언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신문들 역시 현장 중계 방식의 기사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또 2004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에도 여론의 중심지 역할을 해냈다. 탄핵 반대 시위가 한창 진행될 무렵에는 아예 이미지를 모두 뺀 채 텍스트만으로 편집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언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호작용성'을 토대로 수 많은 독자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신문은 기사의 기본 패러다임에 쉴 새 없이 의문부호를 던졌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미디어 변형(mediamorphosis)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매체와 패러다임의 변화

새롭게 등장한 매체가 한 시대의 주류 미디어로 자리잡는 데는 그만한 계기가 있다. 라디오를 살린 게 1차 대전이라면, TV는 케네디 암살, 달 착륙 보도 등을 통해 주류 미디어로 떠올랐다.

인터넷은 1990년대 말 이후 잇단 재난 보도를 통해 그 위력을 만 천하에 알렸다. 지난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이 지역 인터넷 신문들은 AP, 로이터 등 글로벌 미디어를 앞서는 탁월한 대응력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코소보 전쟁은 인터넷 미디어의 위력을 만천하에 전한 첫 전쟁으로 통한다. 당시 인터넷 미디어들은 코소보 전쟁 당시 지역 주민들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전황을 전하는가 하면, 유즈넷 등 각종 커뮤니티들의 활약 또한 눈부셨다.

언론학계에선 베트남 전쟁을 TV로 보도된 첫 전쟁, 걸프 전쟁은 처음으로 위성보도가 동원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면 코소보 전쟁은 인터넷이 주류 미디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 전쟁이다.

그런 점에서 2002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 월드컵의 열기와 그 해 말의 16대 대통령 선거는 한국 인터넷언론에겐 커다란 축복이었다.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2002년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신문들은 거대한 현실의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정간법에 등록된 매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선 후보 인터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이 사건은 인터넷 언론들에게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반대로 인터넷신문협회란 단체가 출범하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해 10월28일 아이뉴스24를 비롯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 9개사가 주축이 된 인터넷신문협회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신문협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그동안 이룩해 온 성과를 더욱 발전시키고 다가오고 있는 시련과 도전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신문협회를 창립한다'고 선언했다. 인터넷신문협회는 출범 첫 행사로 대선후보 합동 토론회를 개최, 텍스트와 동영상을 곁들인 차별화된 보도로 많은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터넷신문협회는 그 뒤 구시대적인 언론 규정을 바꾸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이같은 노력은 결실을 맺으면서 2005년 개정 신문법에서 언론사로서 법적인 지위를 보장받기에 이르렀다.

◆포털의 득세, 그리고 인터넷 언론의 시련

외형적인 면에서 인터넷 언론이 가장 활기를 띤 시기는 참여 정부 출범을 전후한 2, 3년 간이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언론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인터넷 언론들이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들의 영광의 시기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2003년 무렵부터 뉴스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포털들이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던 것이다. 엄청난 사용자 층을 자랑하는 포털들은 뉴스 시장을 유통 중심 구도로 탈바꿈 시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상당수 언론학자들은 포털들을 '재매개 저널리즘'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포털 특유의 독특한 저널리즘 모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털들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2004년 무렵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불량도시락 파동과 간호 조무사들의 신생아 학대 같은 것들은 모두 포털 뉴스 공간을 통해 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특히 네이버와 다음이 뉴스 서비스를 본격화하면서 인터넷 언론사들의 포털 종속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포털에 떠 있지 않은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인터넷신문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포털 사이트에 대한 기사 공급이 매체 접근성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50.5%의 인터넷신문사가 긍정적으로 답한 것. 인지도 제고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54.5%의 인터넷신문사가 긍정적으로 답했다(2006 한국의 인터넷신문).

이런 가운데 미디어다음은 2005년 말 블로거 뉴스를 선보이면서 기존 뉴스 시장에 또 다른 바람을 불러 왔다. 이젠 블로거들이 직접 뉴스 현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제기하면서 이용자생산 콘텐츠(UCC)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세계 기후 변화, 세계은행들의 문닫는 시간 취재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들은 블로거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포털이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낚시형 기사'가 범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선 포털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 시장이 포털 중심구도로 바뀌게 된 데는 인터넷언론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뉴미디어에 대한 고민 없이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하느라 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두고 두고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디어 융합, 새로운 도전과 기회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상황은 좀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터넷 언론 언프렌들리(unfriendly)'한 정부라는 말들도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조중동'이니 '동조문중'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외부 환경보다 더 큰 과제는 미디어 융합이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신문과 방송이 함께 가는 시대,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TV(IPTV)가 활성화되면서 미디어 융합이 본격화되고 있다. 또 모바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뉴스의 유통 경로도 좀 더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 매체들의 반격도 매섭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각종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뉴미디어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조선, 중앙 등 국내 일간지들 역시 멀티미디어 콘텐츠 강화를 외치고 있다.

'전통언론 프렌들리'한 정부의 등장과 미디어 융합 흐름의 가속화는 21세기의 뉴미디어를 자처했던 인터넷신문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매체는 항상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 왔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신문이란 올드매체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터넷신문으로선 처절한 자기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인터넷신문 특유의 차별화된 기사 형태, 보도 방식에 대한 고민 역시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나온 8년을 돌아보면서 감회보다는 자기 반성 쪽에 좀 더 무게를 싣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자기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창간 5주년을 맞던 지난 2005년 우리는 '인터넷 저널리즘 혁명은 미완'이라고 규정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미완이란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의 진단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미디어 융합시대다. 아이뉴스24 역시 미디어 융합 시대를 맞아 새롭게 변신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어쩌면 이 약속은 독자들보다는,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야 할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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