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 따뜻한 디지털세상] "아이들 위해 불법 유해정보 잡으러 다닙니다" ... 사이버패트롤 자원봉사자 이재화·이정수씨 부부

 


아이가 밖에서 놀다 다쳤다면 병원에 가면 된다. 친구들과 싸웠을 때는 '미안해'라는 말을 가르쳐 주면 된다. 부모역할의 '표준 메뉴얼'이다.

그러나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인터넷을 하다 포르노에 노출됐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엄마에게 장면을 묘사하기 시작한다면?

'에이, 설마...'라는 상황 자체에 대한 부정 외에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불법 유해정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피해가 속출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이재화(39) 이정수(41)씨 부부는 다르다. '내 아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현실을 인정하니 할 일이 명확해졌다. 인터넷 불법 유해정보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사이버 순찰관'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가 5년째 운영하고 있는 불법 유해정보 감시 자원활동에 3년째 참여하고 있는 것.

지난 8일 오전, 전날 밤에도 열심히 불법 유해정보를 잡으러 인터넷을 '순찰'한 이들 부부를 만나러 인천 효성동을 찾았다.

◆ 아이들 재우고 나면 '순찰관'으로 변신

"주로 스팸메일 위주로 감시를 합니다. 아이들이 광고인지 모르고 무심코 눌렀다가 음란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 씨 부부는 아예 메일 계정 하나를 '스팸메일용'으로 열어뒀다. 차단 설정을 하지 않고 메일을 받다보니 두 세달에 몇 천 건씩 스팸메일이 들어온다고 했다.

"차단 설정을 안하면 하루에 들어오는 스팸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요. 3년 전에 비해 팝업창이 마구 뜨는 음란메일은 줄고 요즘은 대출메일이 많죠."

'광고' 표시 없이 들어오는 스팸메일을 열고 해당 화면을 복사해 정통윤 청소년유해정보신고센터(www.singo.or.kr) 사이트에 올린다. 정통윤은 사이버 순찰관들이 '잡은' 불법 유해정보를 심의하고 해당 사이트에 시정조치를 내린다.

일일이 불법 유해정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둔 이들 부부는 자녀들이 잠든 자정 이후에 '순찰'을 돌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 지 몰라요. 평소에도 엄마 아빠가 컴퓨터만 켜면 옆에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더라구요. 그러니 '좋은 뜻'으로 하는 활동이라도 조심스럽죠."

이들이 처음 정통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1년 겨울. 정통부가 주최한 'e-클린 코리아' 행사 중 하나인 가족캠프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가족 모두가 참여해 인터넷 윤리 교육을 받은 것이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

2003년 사이버패트롤 2기로 자원활동을 시작한 지 3년, 이들에게 불법 유해정보는 '보는 즉시 신고하는 것'으로 각인됐다.

"지속적인 교육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정통윤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넷 관련 교육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재화씨는 사이버패트롤 외에도 열 가지가 넘는 지역 사회 자원활동을 하는 '열혈주부'다. 자치단체 예산 감시, 어머니회 모니터링, YMCA 방송모니터링, 시각장애인 도우미 등 온·오프 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 달에 20건 이상 불법 유해정보를 신고하면 인터넷 사용료 명목으로 정통윤에서 주는 3만원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그는 인천 생명의 전화 상담을 통해 불법 유해정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게 됐다고 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인터넷에 접속해 있으면 음란물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 아이들은 한 번 접하면 시각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열 살 짜리 아들이 포르노를 접했다며 상담하는 부모들도 있구요."

이들 부부는 "정보화 시대에 얼마든지 인터넷을 좋게 쓸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불법 유해정보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수씨는 "정통윤의 시정조치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며 "직접 피해를 입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유해정보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통윤에 따르면 지난해 4기 사이버패트롤이 신고한 불법 유해정보는 5만 4천 903건으로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

정통윤은 올해 5기 사이버패트롤 자원봉사자를 200명에서 300명으로 늘리고, 지난 6월 불법 유해정보 신고대회를 여는 등 사이버 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자식들 먹인다고 생각하며 음식점에서 음식을 만들 듯, 인터넷 사업자들도 자식들이 본다고 생각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극히 상식적인,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이들 부부의 바람이다.

◆ "순규야 뭐하니? 엄마 아빠랑 같이 놀자∼"

이 씨 부부는 요즘 8살 아들 순규에게 부쩍 신경이 쓰인다. 딸 아이는 엄마 아빠가 하는 사이버패트롤 활동을 이해하고 스스로도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만을 얻으려 하는 데 비해 아직 어린 순규는 컴퓨터 게임에 흠뻑 빠져 있다.

"어린이 게임도 폭력적인 게 너무 많더라구요. 막대기로 아빠를 찌르는 등 순규가 게임에서 했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할 때면 마음이 철렁할 때가 많아요."

이들은 "사이버패트롤 활동을 해도 순규만큼 게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아이가 인터넷에서 뭘 하는 지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부모정보감시단에 따르면 '2006 정보통신부 인터넷 이용자 통계'를 봤을 때 만 3세에서 만 5세 미취학 아동 50.3%가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 중 76.2%가 게임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

학부모정보감시단이 제시한 '성신여대 아동학과 연구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자녀에게 잔소리로 일관하는 부모가 40%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아버지의 40%는 '그냥 내버려 둔다'고 답했다.

미취학 아동,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음란물 접촉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데 부모의 지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인 셈이다.

정수씨는 "대개의 가정에서 자녀의 인터넷 사용시간을 제한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피씨방에 가서라도 원하는 게임을 한다"며 "절대 사용량 보다는 어떤 정보를 사용해야 하는지 어릴 때부터 가르쳐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순규를 위해 이들 부부는 인터넷 문화나 게임관련 책을 틈틈히 보며 아들의 감각에 맞추려 노력한다.

"인터넷을 아예 안쓰고 살 수는 없으니 재밌고 유익하게 쓰는 법을 함께 찾아가는 게 최선이에요."

부모가 옆에서 감시하면 아이가 주눅이 들 것 같아 문을 닫아도 뭘 하는 지 알 수 있게끔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는 것도 이 씨 부부 나름의 노하우다.

"100% 완벽하진 않지만 유해정보 차단 프로그램을 집 컴퓨터에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현재 정통윤은 유해정보 차단 프로그램의 일종인 '내용선별 소프트웨어' 보급에 힘쓰고 있다. 정통윤이 유해정보를 등급별로 정리한 DB를 구축하면 민간업체들이 이를 이용해 내용선별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든다. 내용선별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노출'이란 키워드로 0등급에서 4등급까지 연령에 따라 볼 수 있는 정보를 구분할 수 있어 사이트를 단순히 차단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는 게 정통부의 설명이다.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 홈페이지(www.safenet.ne.kr)에서 제품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가격은 제품별로 다양하다.

주변 부모들이 자녀의 인터넷 사용을 걱정할 때마다 이씨 부부는 정통윤 워크숍에서 받아온 유해정보 차단 프로그램 씨디를 나눠준다. 웹클린 홈페이지(www.webclean.org)로 가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 차단 프로그램을 받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인터넷 속을 더 꼼꼼히 들여다 봐야해요. 그것이 정보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주기자 toto@inews24.com

관련기사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