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다보면, 세상에는 ‘무가치함’(무존재함)과 싸우는 방식이 두 가지 유형으로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20년째 데뷔를 못한 영화감독 황동만(구교환)의 방식과 잘 나가는 영화사 최필름 최동현 대표(최원영) 방식.
전자는 모임에서 무존재감을 막기위해 끊임없이 떠들어야 하고, 회식에서는 엄청 먹어야 하며, 새벽에 혼자 산에 올라 큰소리를 쳐 사람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한다. 40대 무직남이다.

후자는 공식과 같은 직장 생활의 코스를 잘 밟아 간부(대표)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으로, 직책을 가지고 사람을 찍어누르는 형이다. 이 스타일은 명함과 직책이 있어야 힘을 발휘하고, 명함이 없어지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어 인정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자무싸’의 박해영 작가는 전자에 연민과 애정을 듬뿍 담아 판타지적 승리를 거두게 할 것 같다. 여기서 변은아(고윤정)의 역할이 크다.
황동만은 “나는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라고 말하지만, 5편의 영화를 개봉하고도 여전히 불안한 박경세 감독(오정세)은 “무대에 올라와 얻어터진 놈과, 올라와 보지도 못한 차이. 너(동만)는 아무 것도 아냐 낫띵”이라며 대놓고 동만을 씹는다. 은아는 “그들의 나약함을 목도한 느낌. 그래서 싸울만하다. 황동만 감독님이 훨씬 동물적이고 멋져요. 따뜻하고”라고 말한다.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구교환, 고윤정, 강말금, 오정세 등 캐스팅이 좋았지만, 황동만과 변은아를 자극하는 ‘최대표(최동현)’를 연기하는 최원영의 캐스팅도 매우 절묘하다고 본다.
최 대표는 우리 사회가 싫어하는 ‘직장 상사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간부가 현실 직장에는 생각보다 많다.
이걸 최원영이 연기하니 겉만 밉상이나 얄밉고 짜증나는 캐릭터가 아니라, 뿌리 깊게 박힌 ‘확신 밉상’이 된다. 게다가 발성이 중저음으로 무게감을 준다.
최원영이 연기하는 최 대표처럼 살아가면 사회생활 하기는 정말 편하다. 우리 사회에는 직장에서 잘 적응하면서 최 대표처럼 되어있는 회사 간부들이 많다. 전형적인 ‘강약양강’ 캐릭터다.
그럼에도 최동현을 무조건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직장생활에서 나름 생존방법을 터득한 사회생활 스킬이라는 내공에 부러워하는 사람마저 있다. 모두가 대하기 힘들어하는 황동만을 어렵지 않게 처리해 주는 사람도 최 대표다.
최 대표는 항상 못마땅한 직원 ‘도끼’ 변은아(고윤정)를 향한 자격지심을 순간의 화와 비꼬는 말투로 풀어낸다.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여기는 내 회사, 너는 나보다 아래인 사람’이라는 확인 사실을 끊임없이 날리며 죄책감 없이 상대의 기를 팍팍 죽인다. 최 대표는 자신의 감정 배출구로 상대를 이용하는 속물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황동만은 2회에서 최동현에게 “너는 싸가지 없음을 권력이라고 생각하지”라면서 “니 무가치함의 끝에서 나는 진실을 건져올릴 거야. 나의 빛나는 스토리를 기대해”라고 말한다.
최 대표 같은 안타고니스트가 있어야 프로타고니스트의 캐릭터성이 제대로 빛을 발한다. 최원영은 이런 안타고니스트를 포장 없이 연기한다.
최원영은 선역과 악역이 다 잘 어울린다. ‘조립식 가족’에서 맡은 윤정재 역은 그저 따뜻하고 좋은 칼국수 가게 주인이다. 딸 주원(정채연)뿐만 아니라 해준(배현성)을 10년간 제 아들처럼 키운 사람이다. 또 함께 사는 산하(황인엽)의 아버지 김대욱(최무성)까지도 돌보는 마음 착한 아저씨다. ‘탁류’에서는 대의를 품고 나아가는 대호군을 통해 정의로운 인물을 완벽하게 그려낸 바 있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에서는 정의로운 검사였지만 비리 검사로 몰려 죽은 귀신으로 등장해 억울함이 풀려진다.
하지만 때로는 서늘한 빌런 캐릭터도 잘 소화해낸다. 전작인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는 야망과 권력에 눈이 먼 임사형 역을 맡아 악랄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최원영이 다양한 결의 캐릭터를 두루 소화할 수 있다는 증거다.
최원영은 부자이건 가난하건 열심히 살아온 캐릭을 주로 연기했다. 성실한 FM 아버지상이다. 하지만 최원영이 ‘모자무싸’의 최대표 같은 얄미운 역할도 사실적 의미를 부여하며 극을 매우 잘 살리고 있다. 끝까지 선전(?)을 기대한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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