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배정화 기자] 오영훈 도지사가 쏘아 올린 행정체제 개편안이 당내 분열과 도민 혼란으로 확산하고 있다.

민선 8기 오영훈 도지사는 임기초 제주도정이 이끌어 갈 핵심 정책으로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약속했다.
제주도는 지난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4개 기초자치단체(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를 폐지했다. 행정 효율성과 광역 대응력 강화 등을 목적으로, 기초자치단체 없이 단층제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후 현재까지 광역 자치단체인 제주특별자치도와 2개 행정시(제주시, 서귀포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제주에서 기초자치단체가 시행된 건 1946년 제주도와 제주시, 서귀포읍, 북제주군, 남제주군 등 4개 체제가 그 시발점이다. 1981년 7월 1일 서귀포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의 기초자치단체가 완성됐다.
이후 1995년 1월 1일 전면적인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기초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은 시장과 군수가 선출되며 '주민 직선' 체제가 확립됐다.
2022년 제39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 공식 취임한 오영훈 도지사는 2006년 폐지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자신의 최대 공약으로 내걸었다. 행정시의 자치권 및 법인격 부재 문제 해소를 중점 과제로 삼았다. 2025년 내 주민투표 실시, 2026년 7월 민선 9기 시작과 동시에 기초자치단체 출범을 목표로 광역과 기초의 사무 배분, 재정조정, 조직·청사 배치, 정보 시스템 구축, 공유재산 배분 등을 포함했다.
오영훈 도지사는 임기 초기부터 도민과 약속한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자신하며, 자신의 최대 치적이 될 것임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행정체제개편은 공론화 방식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과 찬반 갈등, 선거구 획정, 법 개정, 사무 및 재정 배분 등 번번이 오 지사의 발목을 잡았다.
'주민투표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의 요구 없이는 주민투표를 추진할 수 없게 되자, 오 지사는 윤석열 정부가 기세를 부리던 지난해 7월 30일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과 함께 정부서울청사 행안부 장관 집무실을 찾아 당시 이상민 장관에게 명예도민증서와 명예도민증을 전달하며 자신의 공약 이행을 읍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 설치는 김한규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을)이 2024년 9월 2일 국회 행안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서귀포시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 일명 쪼개기 방지법을 상정해 오영훈 도지사의 3 개시 행정체제 개편에 경고 신호를 보내면서 힘겨루기 국면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양측의 신경전에 뛰어든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서귀포시)은 일주일여 만인 같은 해 9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동제주시·서제주시 및 서귀포시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그러자 김한규 의원은 2024년 11월 1일 행안위에 상정했던 법안을 정식 대표 발의하며 극한 대치에 들어갔다. 결국 오영훈 도지사의 도민과의 약속인 행정체제 개편은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공방전에 민의 실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행정부와 정치권의 공방은 여론조사 결과로 이어지며 더욱 악화됐다.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은 지난 8월 5일 열린 제441회 임시회 개회사에서 기초자치단체 설치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의장은 공식 입장을 통해 "도민의 뜻과 타당성을 직접 묻는 절차를 의회가 주체가 되어 이행하겠다"며 김한규 의원의 2 개시 안과 위성곤 의원의 3 개시 안에 대한 도민 의견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한규 제주도당 위원장은 자체 실시한 '여론 조사결과' 공개를 지시하며 강력 대응 의지를 표출했다.
조사 결과 ‘3개 기초단체 설치'에 대한 반대 의견은 43.1%, 찬성 의견은 35.9%로 반대 의견이 7.2%p 높게 나타났다. 지난 5월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정체제 개편 관련 여론 조사 결과를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행정체제개편에 대한 주민투표가 부결될 경우를 우려해 도당 차원에서 출구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대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주연구원이 가세하며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제주연구원은 제주도가 정책 연구와 도정 자문을 위해 재정을 출연해 설립한 기관 역할을 다하려는 듯 오 지사의 의지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놨다.
지난 7월 7일부터 15일까지 제주도 내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도민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행정체제개편에 찬성하는 응답은 46.3%, 반대는 34.9%로 '찬성'이 '반대'보다 11.4%p 높았다.
민주당이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게다가 여론조사 설문지가 편향성 논란까지 더해지며 악화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설문에서 “제주도는 행정의 민주성과 주민 참여를 강화하고,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동제주시·서제주시·서귀포시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전제를 깔고 질문해 '찬성' 답변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주연구원이 그동안 도정자문 역할을 어떻게 해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부끄러운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결국 이들의 아귀다툼에 도민은 없었다. 행정체제개편이 가져올 편의로운 삶과 주민 주권 회복이라는 명제는 또다시 제왕적 제주도지사의 치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략할 위기에 처했다.
제주도의회는 오는 21일부터 8월 26일까지 6일간 2 개시 안과 3 개시 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여론조사는 제주연구원의 편향성 논란을 일으켰던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맡는다.
제주도 내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도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여론 조사는 벌써부터 '편향성'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주도의회의 여론조사 또한 무(無) 의미한 조사 결과로 도민 갈등만 키울게 뻔하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제주=배정화 기자(bjh988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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