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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등본 보고 '화들짝'…"1억 깎아줘도 계약 안해요"


등기부등본 '말소사항'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보증금 수억 할인, 추가 인상하지 않겠다는 조건 달아도 잇단 '고사'
일선 중개업소 "임차권 등기는 물론 융자 없고, 깨끗한 우량 매물 선호"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출퇴근 환경과 학군 따라 이사를 결정했는데, 당장 임대차 계약을 앞둔 매물에 임차권 등기가 걸려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상하게 시세보다 저렴했고 중개사는 공동중개 매물이라 빨리 확인을 못 했다고 합니다. 임차권 등기가 설정된 만큼 집주인은 기존 보증금에서 1억원을 더 깎아주겠다고 하는데 계약하고 싶은 생각은 이미 사라졌네요."

새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집주인이 지난해부터 큰 폭으로 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장치로 임차권 등기를 설정하는 전세 세입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를 마치면 대항력과 우선 변제권을 유지, 당장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을 순 없지만 안전하게 새집으로 이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임대차 시장에선 전세보증금 반환 관련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기준 서울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약 3천700여 건으로 역대 최다였던 지난 2012년 3천592건의 기록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일원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서온 기자]
서울 강남구 도곡동 일원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서온 기자]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늘어나면서 봄 이사철을 맞이해 전세 매물을 찾아 나선 예비 전세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확인한 후, 계약을 고사하는 사례 역시 동반상승하고 있다.

30대 A씨 부부는 회사 출퇴근 버스를 도보 5분 내외로 탈 수 있고, 생활 인프라와 교육환경이 잘 갖춰진 강남구 도곡동 일대 한 아파트 전세 매물을 찾고 있었다. 이미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우고, 집주인이 도배와 수리, 에어컨 설치까지 마쳤다. 시세보다 저렴하고 집 상태도 좋아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는데, 계약금 300만원을 보내기 전 해당 전셋집에 '임차권 등기'가 설정된 것을 확인했다.

A씨는 "기존에 거주하던 세입자가 집을 비워 내부를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새롭게 도배와 수리를 끝낸 집이라 흠잡을 곳이 없었다"며 "집주인에게 계약 의사를 전하고 실계약 전 300만원을 송금하려던 찰나, 중개인 B씨로부터 '임차권 등기'가 설정돼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고 말했다.

공동중개를 맡은 B씨는 해당 매물을 보유하고 있던 또 다른 중개인으로부터 임차권 등기에 대해 이야길 듣지 못했고, 계약금 일부를 보내기 전 확인한 등기부등본에 이전 임차인이 설정한 '임차권 등기'를 확인한 것이다.

A씨는 "아무리 집 상태가 좋아도 임차권 등기가 걸린 전셋집은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동일면적대 전세 시세가 11억원이었는데, 6억에 나온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다"며 "집주인이 추가로 보증금 1억원을 더 내려주겠다고 했지만, 중개인 B씨에게 계약 의사가 없음을 알리고, 다른 집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50대 C씨 역시 이전에 거주하던 전셋집 임대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하고 서초동 일원 새 전셋집을 알아보던 중 소개받은 매물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C씨는 "이미 한번 크게 덴 적이 있는데, 중개인 D씨가 애당초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임차권 등기에 걸린 매물을 보여줬다"며 "D씨에게 크게 화를 내고, 다른 부동산에 매물을 의뢰해 놓았다"고 했다.

이후 중개인 D씨가 연락이 와 "집주인이 보증금 2억원을 더 깎아주겠다고 했다"며 "2년 더 거주할 의사가 있으면 보증금 일절 인상 없이 추가 2년 계약 기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으나 C씨는 단칼에 거절했다고 전했다.

30대 A씨와 50대 D씨의 사례와 같이 최근 임차권 등기가 설정된 매물이 계약 거절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일선 중개업소들은 '임차권 등기' 설정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기에 새 임차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사실 우리도 임차권 등기에 걸린 매물을 중개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렵다"며 "집주인이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했고, 결국 세입자가 임차권 등기를 설정했다는 것은 원만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즉, 세입자가 집주인의 보증금 미반환으로 골치 아팠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고,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줄 수 없을 만큼 힘든 자금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며 "당연히 새로 들어올 임차인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꺼릴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엔 임차권 등기는 물론 융자 없이 깨끗하고 좋은 우량 매물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임차권 등기가 등본에 표시돼 있지 않더라도, 예비 세입자는 말소된 등기는 등본에 표기되지 않을 수 있음을 고려해 이를 꼼꼼하게 살필 필요도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임차권 등기는 주홍글씨와도 같다"며 "예비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을 열람 시 '말소사항포함'을 꼭 체크해야 한다. 소유권과 저당권, 임차권 등 변동 여부와 함께 이미 말소된 사항까지 취소선이 그어진 상태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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