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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일상]③ "현금이 안 보인다"…삶 속에 파고든 비대면 거래


기기조작 어려운 노인, '디지털 난민' 전락…MZ세대, 현금 결제 '눈치'

[아이뉴스24 박예진 수습 기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대면 결제 기피로 현금 소지가 줄어든 한편, QR코드 인증 활성화, 각종 페이 산업 등으로 모바일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또 접촉 후 손소독제 사용 부담, 모바일 지역화폐 이용에서 오는 편리함과 관리 비용 절감 경험이 모바일 결제 문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25일 금남시장 입구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25일 금남시장 입구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전통시장서 자취 감춘 현금…2030 대부분 '모바일 결제'

특히 현금 결제가 비교적 많던 전통시장에서도 모바일 페이가 활성화되면서 현금이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모바일 페이는 제로페이와 온누리 상품권과 같은 모바일 지역화폐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실제로 한국간편결제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판매된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금액은 약 2천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3.8배 이상 상승했다.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은 제로페이 연계 상품권으로, 상시 10% 구매 할인율을 제공한다.

게다가 모바일결제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플랫폼들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카드사용도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7개 전업 카드사의 체크카드 발급수는 6천403만2천 매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보다 255만1천 매(3.8%) 줄어든 수치다. 반면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간편결제 이용액은 하루 평균 4천492억원으로 전년 대비 41.6% 늘어났다. 특히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등 전자금융사업자들의 이용액 비중은 45.7%로 가장 높았다.

실제로 지난 25일 오전 서울 금호동 금남시장 곳곳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이 상품권이나 모바일페이로 거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금남시장의 많은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 모바일 결제를 선호하는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남시장에서 손칼국수집을 25년째 운영하는 김경자 씨는 "코로나19 이후에는 모바일 결제 자체가 40% 정도 늘었다"며 "젊은 층이 특히 제로페이를 많이 쓴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현금도 다 정확히 세무사에게 넘겨 계산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현금이 더 편한 건 없다"며 "손님 입장에서도 현금이 아닌 모바일로 결제하면 더 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국수가게 문에 붙어 있는 지역화폐 스티커 (좌), 금남시장 '네이버 장보기' 배송함 (우)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칼국수가게 문에 붙어 있는 지역화폐 스티커 (좌), 금남시장 '네이버 장보기' 배송함 (우)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젊은 사업자의 경우 비대면 소비가 늘어나는 환경을 이용해 온라인 플랫폼으로 판로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년 전보다 25% 넘게 늘어 11년여 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음·식료품과 농축수산물, 배달음식 등 음식서비스(58.7%)가 많이 늘어났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금남시장에서 정육점을 6년째 운영하는 김정재(27) 씨는 최근 '네이버 장보기'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김 씨는 "네이버 장보기의 경우 하루 4~5건 정도긴 해도, 배송함에 물건을 넣기만 하면 돼서 편하다"며 "지난 겨울 금남시장에서 연예인을 섭외해 진행했던 라이브 커머스 행사에서도 꽤 성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9월에 열릴 고기 배달 플랫폼에도 입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부 상인들까지 온라인 판로 확장에 나서면서 현금 결제 문화는 시장 내에서도 더 축소되는 분위기다.

김 씨는 "현금 비중은 전체 결제에서 20%밖에 안 된다"며 "아직은 신용카드가 70% 정도고 나머지에서 온누리상품권과 제로페이는 반반"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 모바일페이가 확대되면 편할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 노인층에게 모바일페이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판매자에게도 구매자에게도 아직 고령자에게 어렵고 익숙지 않은 모바일 거래는 넘어야 할 산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교통과 같은 공적 영역으로도 현금 없는 거래가 확대됐다. 서울시가 10월부터 일부 시내버스를 대상으로 현금승차 폐지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혔기 때문이다. 노인들에게도 QR코드 등 모바일 결제는 목전에 다가온 과제다.

금남시장 골목 빌라에서 60년 넘게 살며 시장에서 주로 소비하는 강재순(85) 씨는 "아예 신용카드가 없다"며 "현금만 가지고 다닌다"라고 밝혔다. 강재순 씨 옆에 앉아 있던 친구 역시 "나도 카드 없다, 현금으로 주로 결제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서울 시내버스에서 현금승차가 금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냐고 묻자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떡하냐"고 우려했다.

고령인 판매자에게도 모바일 거래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제일기름집을 20년째 운영하는 황숙자(77)씨는 젊은 손님들이 요청하는 모바일페이를 다룰 줄 모른다.

황 씨는 "(내가 계산할 줄 모르니) 젊은 손님들이 단말기에 알아서 휴대폰을 갖다 댄다"며 "요새 현금은 거의 안 들어오고, 온누리 상품권과 제로페이를 많이 쓴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바일 제로페이를 이용할 때도 어려움은 있었다. 실시간으로 입금을 확인할 수 있는 계좌이체와 달리, QR코드로 결제하는 제로페이의 경우 2~3일 뒤 입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으로 꼽히고 있다.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방법을 몰랐던 황 씨는 "제로페이는 돈이 들어온지 안 들어온지 제때 알 수가 없다"며 "이 때문에 매번 다 장부를 만들어놔야 해서 불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양대 앞 카페. 코로나19 전에는 자리가 꽉 차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한양대 앞 카페. 코로나19 전에는 자리가 꽉 차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전통시장과 달리 주 고객 대상이 2030세대인 대학가 카페에선 오히려 손님들이 현금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하거나, 때로는 결제 전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현금을 받지 않으려는 매장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선 2018년부터 선보인 '현금 없는 매장'의 수를 현재 국내 매장의 60%까지 늘려 운영하고 있다.

이날 방문했던 한양대 근처 '카페루보브'에서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모바일이나 카드로 메뉴를 주문했다. 젊은 층이 많아선지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손님들도 많았다. 실제로 이곳에선 하루 30팀 중 최대 1팀 정도로 현금 결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 손님들은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에 익숙한 데다가 현금 거래 이후 손소독을 해야 하는 등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은진 카페루보브 대표는 "현금을 거슬러주는 게 상대적으로 번거롭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선호하는 것 같다"며 "최근에도 한 손님이 '죄송하지만 혹시 만원권을 드려도 되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앞으로 모바일 거래를 선호하는 고객을 위해 QR코드로 결제하는 네이버페이 서비스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가속화된 '현금 없는 사회'…곳곳서 부작용 속출

이처럼 현금 거래를 기피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판매자들도 현금 소지가 줄면서 거스름돈을 바꿔주는 과정에서 다툼이 발생하는 등 손님과 종업원 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현금이 모바일 페이에 비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에서 갈취나 분실 등 안전 우려가 작용하기도 한다.

이 대표 역시 3달 전 새벽 가게에 도둑이 들면서 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이 대표는 "당시 시재에 있던 현금 15만원을 몽땅 도둑 맞았다"며 "앞 파전집 아주머니는 이런 도난 우려 때문에 아예 현금을 가게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왕십리역 로봇 카페. 키오스크로 모든 결제가 이뤄진다.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왕십리역 로봇 카페. 키오스크로 모든 결제가 이뤄진다.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택시 기사들도 최근 카드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현금을 거의 가지고 다니는 일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가끔 손님들과 잔돈으로 마찰을 빚을 때가 많다는 이들도 많았다.

택시 기사를 5년 이상 했다는 이인재(77) 씨는 "하루 평균 25명의 승객 중 현금 결제하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라며 "가끔 기본요금을 결제하는데도 5만원 권을 내는 분들이 있는데 잔돈이 없어 바꿔와야 해 기다려달라고 말하면 불만을 표하거나 다투게 되는 손님들이 꼭 있다"고 하소연했다.

모바일 결제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고령자 등 디지털 소외 계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모바일, 카드 결제를 기반으로 한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들의 등장으로 무인 점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많은 노인들은 기기조작에 어려움을 느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체 중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를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2018년 0.9%에서 2020년 3.1%까지 3배 늘었다.

게다가 많은 노인들은 키오스크에 오래 있으면 줄을 기다리는 뒷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 듯 했다.

지난해 9월 한국소비자원이 1년간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고령소비자 245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이용 중 불편한 점을 조사한 결과 노인들은 '복잡한 단계'(51.4%, 126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125명), '뒷사람 눈치가 보임'(49.0%, 120명), '그림·글씨가 잘 안 보임'(44.1%, 108명)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성동구는 이달부터 왕십리 이마트, CGV, 왕십리역 롯데리아, 메가박스 성수 총 4개 장소에 설치된 키오스크 중 1대를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느려도 괜찮아' 코너로 지정했다.

왕십리역 CGV 느린 키오스크(맨 오른쪽)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왕십리역 CGV 느린 키오스크(맨 오른쪽) [사진=박예진 수습기자]

같은 날 방문한 왕십리 CGV의 경우 '기다림선 표시'와 '큰 안내판'을 사용한 '느린 키오스크'가 눈에 띄었다. 간혹 '느린 키오스크'에 관심을 보이는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왕십리역 롯데리아에 있던 3대의 키오스크 중 맨 앞에 위치한 '느린 키오스크'는 따로 찾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았다.

점원은 "원래 큰 안내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배너 정도로 축소했다"며 "특별히 어르신들이 '느린 키오스크'를 더 이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지자체에서 '키오스크 체험존'을 중심으로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노인들이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거래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노인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거래 교육이 더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는 노인의 경제적 빈곤만이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빈곤'도 심각한 문제로 봐야 한다"며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만 몰입될 것이 아니라 소외 계층들이 잘 소화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예진 수습 기자(true.ar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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