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영웅 기자] 지자체가 공공택지 '벌떼입찰'을 근절하려는 움직임에 나서면서 국내 중견건설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벌떼입찰이란 택지개발사업이 추첨제로 결정되는 점을 노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입찰에 동원해 당첨확률을 높이는 행태를 뜻한다.
특히 대방·반도·중흥·호반·우미·제일건설 등이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10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택지 전체 용지의 30%를 독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뒤늦게 규제 강화에 나서면서 중견건설사들은 입찰에 동원된 계열사 통폐합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벌떼입찰 본보기 된 대방건설…경기도, 지금까지 193개 건설사 적발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경기도가 공공택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짜 회사인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하는 이른바 벌떼입찰 단속에 나섰다. 공공택지 사업에 한 회사당 하나의 입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중견 건설사들은 시공능력이 부족한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낙찰을 받아왔다.
경기도는 최근 파주 운정, 화성 동탄2, 이천 중리 등 3개 사업지구에서 아파트 용지를 낙찰 받은 3개 업체를 대상으로 시범조사를 진행했다. 국내 시공능력순위 15위로 급성장한 대방건설이 계열사 엔비건설 등 9곳을 수주전에 동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방건설 직원들이 해당 계열사 소속으로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이들 계열사의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는 점을 통해 벌떼입찰을 했다고 경기도는 판단했다. 경기도는 지난 6월까지 193개 건설사를 적발, 161개사를 행정처분했다. 서울시 역시 지난달 건설업지도팀(TF)을 신설, 단속 강화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경기도는 벌떼 입찰을 노리고 가짜건설사를 운영하던 시공능력순위 50위 내 중견 건설사를 적발했다"며 "용지 입찰 가능성을 높이고자 벌떼 입찰은 택지공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경쟁 기업에 피해를 주는 불공정 행위로 반드시 근절해야 할 적폐"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역시 벌떼입찰을 근절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공공택지 공급방식을 기존 추첨원칙이 아닌, 평가제로 전환하고 사회적 기여도 등을 평가하기로 했다. 토지의 용도와 공급대상자, 토지가격의 안정성 등을 고려하고 친환경·주택품질과 공적인증 등 지표를 반영하기로 했다.

◆ 신도시에 1군 건설사 찾기 어려운 이유…계열사 정리 나선 건설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2008~2018년 동안 중흥·호반·우미·반도·제일 등 5개 건설사들이 수십개의 계열사를 동원, 벌떼입찰을 통해 전체의 30%(공급가 10조5천억원 상당)를 낙찰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불공정 행위가 계속된 이유는 주택법상 자본금 3억원 이상, 건축분야 기술자 1인 이상, 사무실 면적 22㎡ 이상 요건만 갖추면 주택사업자로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LH 공공택지 사업은 최근 3년간 300세대 이상의 시공실적을 요구하는데, 사실상 규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반면, 대형 건설사들은 대기업 규제를 받다보니 계열사 설립 등이 쉽지 않으며 이같은 내용은 모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재된다. 결국 이같은 이점을 노려 비상장사의 중견건설사들이 주로 벌떼입찰에 나선 것이다. 회사 설립과 유지 경비까지 분양가에 전가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견건설사들은 이같은 방식을 통해 시공능력평가에서 대약진에 성공했다. 실제로 대방건설은 2010년 시공능력평가에서 108위에서 올해 무려 15위까지 껑충 뛰었다. 호반건설 역시 2010년 62위에서 2019년에는 10위를 기록, 10대 건설사에 진입하기도 했다. 올해는 13위다.
공공택지 입찰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강화되면서 건설업계는 자체적으로 계열사 정리에 나섰다. 대방건설은 지난달 입찰과정에 사용한 페이퍼컴퍼니 9곳을 자진 폐업했다. 호반건설 역시 벌떼입찰에 동원했던 계열사 에이치비탕정을 지난해 청산하기도 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벌떼 입찰을 통해 중견건설사들이 성장했지만, 공정한 경쟁이 아닌 데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및 운영 경비 등이 분양가로 전가되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했다"면서도 "다만, 공공택지 입찰 방식이 어떻게 변경되느냐에 따라 자칫 대형건설사들만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웅 기자(her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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