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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웅 칼럼] 물은 땅이 패인 모양을 따라 흐른다


한국사회의 고장난 인센티브 시스템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한 사회의 골격은 그 사회의 인센티브 시스템, 즉 상벌체계에 따라 결정된다. 역사책은 아부하는 간신배를 가까이 하다 망해버린 나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정치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왕에게 아부를 잘 하는가에 달려 있으면 재능있는 자들, 충직한 자들이 떠나거나 죽임을 당한다. 남는 것은 무능하고 제 이익을 지독히 챙기며, 그만큼이나 처신에 능하고 권모술수에 밝은 자들이다. 이들이 왕의 눈과 귀를 가린 다음 행한 악행들이 사서의 장마다 흘러 넘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사장이 회식자리에서 “자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봐, 그동안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만들 있으면 내가 다 들어줄게”라고 한들, 직원들이 바른 말을 할 리 만무다. 그가 평소에 아부에 상을 내린다면 아부하는 자가 남고, 큰 성과를 낸 직원을 제대로 보상한다면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남을 것이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죽인 전두환이 만든 당의 이름이 ‘민주정의’당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언제나 행동쪽이 진실을 가리킨다. 물은 땅이 패인 모양대로 흐른다.

대한민국의 인센티브 시스템은 이 사회의 골격을 어떻게 짜맞추고 있을까?

많이 떼먹을수록 상을 준다 - 화이트칼라 범죄

지난번 글에도 얘기를 한 바 있듯이 한국사회는 돈을 많이 떼어먹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상을 내린다. 예를 들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사범 재판 통계를 보자. 1천 3백여 건의 재판에서 범행 액수가 3백억 원이 넘었던 11명 전원 집행유예, 모두 풀려났다. 직위에 따라서 따져보면, 총수나 경영자, 최고위층은 70% 넘게 집행유예. 직위가 낮을수록 이 비율도 낮아졌다. 그러니까 직위가 낮을수록 더 많이 실형을 살았다는 얘기다.

이런 인센티브 시스템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떼어먹으려면 최소한 3백억 원 이상은 해야 한다, 직위도 높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 250억쯤을 떼어먹었다 걸린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50억만 더 챙기지, 미련하게시리.

사람을 죽이는 편이 싸다 – 산업안전법

이선호 씨가 300kg 철판에 깔려 죽었다. 원청과 하청간에 책임소재를 미루고 있다. 119 신고도 깔린지 10분이 지나서야 했다. 안전관리자도, 신호수도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이야기를 거듭 거듭 듣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사회의 산재사망률은 OECD 최상위권이다 1위도 여러 차례 했고, 5위권밖으론 밀려난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많이 죽을까?

고용노동부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산재 상해·사망사건의 형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연인 피고인 2,932명 중 징역 및 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86명(2.93%), 전체의 3%가 안된다. 절대다수가 집행유예(981명, 33.46%)가 아니면 벌금형(1,679명, 57.26%)이었다. 벌금형의 경우에도 평균액은 자연인 420만원, 법인 448만원에 그쳤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노동자 사망 시 고용주에게 최대 징역 25 년형, 법인에는 최대 60 억원의 벌금을 물린다. 영국의 경우 원·하청 구분 없이 안전조치 미흡 등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의 범죄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을 갖고 있다. 전체 매출액의 2.5~10%가 기본벌금이고, 위반정도가 심하면 아예 ‘상한 없는 징벌적 벌금’을 물린다. 국적과 무관하게 영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법인과 기업에게 적용한다.

안전장치를 갖추는 것, 신호수를 두는 것, 하청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것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한국사회는 그렇게 투자를 하게 하는 대신, 사고가 났을 때 448 만원으로 때울 수 있게 해준다.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려고 하겠는가. 이 시스템은 명백히, 그냥 싸게 사람을 죽이라는 지령을 내린다.

강남 땅값은 왜 오르기만 할까 – 온 동네가 역세권

일산과 분당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신도시다. 하지만 지금은 땅값이 3 배나 차이가 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역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5~10 분 이내 거리에 있는 곳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남은 온 동네가 역세권이다. ‘도시철도역이 3 개 이상 있는 동 목록’을 보면, 서울 424 개 동 중 전철역이 3 개 이상 있는 동은 103 개로 전체의 24%다. 그런데 서초구는 전체 18 개 가운데 12 개 동(67%)에, 강남구는 전체 22 개 가운데 14 개 동(64%)에 역이 3 개 이상 있다. 반면 양천구에는 역이 3 개 이상인 동이 단 한 곳도 없었고, 관악구는 21 개 중 1 개 동만 그렇다.

전철역 보유 현황으로 자치구 순위를 매겨도 마찬가지다. 송파구 20 개, 서초구 18 개 등 강남 3 구가 모두 상위 5 위 안에 든다. 노선 개수로 봐도 서울 전체 전철노선 16 개 중 강남구와 서초구, 종로구, 중구에 6 개씩 지나는 반면, 강북구, 은평구, 관악구, 금천구, 강동구는 2 개씩만 지난다.

어느 정권이든 강남 땅값을 잡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이런 식이다.

“강남 땅값이 계속 오릅니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합니다.”

“아, 그래 어떤게 가능한가?”,

“신분당선을 깔아보면 어떨까요?”

“오, 좋은 아이디어야, 그렇게 하게.”

“그래도 땅값이 오르는데요, 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서울역에서 KTX 를 떼다가 수서에 SRT 를 만들어주면 땅값이 잡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게.”

“그래도 땅값이 잡히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을 지하화해보겠습니다.”…

KTX 에서 무단히 SRT 를 떼내서 강남에 가져다 놓는데 3 조가 넘는 돈이 들었다. 지하철을 까는 데도 그만한 돈이 든다.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면 또 조단위 돈이 들어갈 것이다. 이런 구조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강남불패’

지난해 MBC 보도에 따르면 재산공개 범위에 드는 고위공직자의 40%가 강남의 노른자 땅에 집을 갖고 있다. 서초구와 강남구가 가장 많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언제나 행동이 진실을 가리키는 법이다.

노력하면 벌을 내린다 – 임대차보호법

지난번 글에서 얘기한 경리단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입자가 정말 열심히 잘해서 고객을 끌면 건물주가 월세를 3배 올려 그간 고생한 댓가를, 혹은 그 이상을 한순간에 가져가 버린다. 함부로 옮기기도 어렵다. 그간 투자한 인테리어비가 있고, 애써 모은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열심히 일을 할수록 벌을 주는 구조다. 젊은 청년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코인의 불바다로 뛰어드는건 이런 구조의 결과다. 이 상벌구조는 노력을 할수록 벌을 주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 성형수술을 하라니까

산부인과는 대표적인 기피과 중 하나다. 최근 4 년 연속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전공의 모집에서도 144 명 정원에 110 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은 76% 수준이다. 많은 병원들이 적자를 면하기 위해 산부인과 분만실 운영을 포기하고 있다. 수가도 낮고 사고가 나면 책임을 지기도 싫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재들은 줄줄이 성형외과, 피부과가 아니면 공무원으로 투입된다. 심지어 의사중에서도 산부인과, 흉부외과 의사가 되려 하기만 해도 보상은 싸늘하게 줄어든다.

외과는 몇 년째 꾸준히 전공의 모집에서 미달사태를 면치 못한다. 특히 2020 년엔 176 명 정원에 128 명만이 지원해 경쟁률이 73%에 그쳤다. 2021 년도 다르지 않았다. 178 명 정원에 141 명만이 지원하면서 경쟁률은 79%를 기록했다. 외과 계열 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번 밤샘 당직 등 응급환자들을 돌봐야 하다 보니 특별히 사명감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외과를 지원하지 않는다. 한때 의사의 꽃이라고 했던 외과는 이제 젊은 의사들이 적어 환갑을 넘긴 노 교수도 매일 당직을 서는 곳이 됐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한국은 애를 낳으려도 받아줄 곳이 없는 불임의 사회가 된다. 이런 제도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애받지 말고, 응급환자도 고치지 말고, 코와 가슴에 실리콘을 넣으란 말이야!

공시족들은 왜 이렇게 많은가 – 부실한 사회 안전판

지난해 10 월 2020 년도 지방공무원 7 급 공개경쟁 임용시험에 565 명을 뽑는데, 3 만 9397 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69.73 대 1 을 기록했다. 공무원 시험에 1 만 명대 지원은 흔하다. 한 취업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취준생) 37.4%가 현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절반에 가까운 수준인 48.4%가 '앞으로 준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2019년 하루 평균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자살 사망자를 계산하는 자살률은 26.9명, OECD 국가 중 1위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노인 자살률이다. 전체 평균은 26.9명이지만 70대가 되면 이게 46.2명으로 늘고, 80세 이상이 되면 67.4명으로 무려 평균의 2배가 넘는다. 한국은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 ‘노인 자살률’이 높은 나라다.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2.2%로 OECD 평균 20.0%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 (2019년 기준)로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터키, 칠레, 멕시코 세 나라 뿐이다.

이런 구조가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 각자도생해라, 늙어서 일을 못하게 되면 스스로 죽을 일밖에 없다. 너의 적성이 무엇이든, 꿈과 희망이 무엇이든간에 어떻게든 노후를 보장해주는 공무원 시험을 쳐라. 도전을 하다 실패하면 비참한 노후밖에 남지 않는다.

한국의 대기업노조들이 강성이고 이기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미생의 명대사는 그 이유를 알려준다.

선정적인 기사를 내놓아야 한다 – 포털의 보상, 클릭 수에 따라 돈을 매긴다

국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들은 말이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점심을 먹고 나면 의례 의원회관을 한 바퀴 돌았다. 안면이 있는 보좌관들이나 국회의원을 상대로 취재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을 보기가 아주 어려워졌다고 한다. 점심 식사시간도 예전에 비해 훨씬 짧아졌다.

“기자들 보면 불쌍할 때가 있다. 기사를 만드느라 점심도 제대로 못 먹는다. 그러니 기자실 건너편에 있는 의원회관에 올 틈이 있나.” 말하자면 기사를 만드느라 취재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취재를 안하고 기사를 써? 인터넷용 기사를 시간마다 내보내야 한다. 그러니 오래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쓰는건 엄두를 내기도 어렵다.

이렇게 된 것은 네이버가 클릭 수에 따라 댓가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여섯가지 지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순방문자수, 조회수가 각 20%, 소비기사수가 15%로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나머지 지표도 구독자수다. 이런 알고리듬이 전제하는 것은 ‘많이 본 기사가 좋은 기사다’와, ‘많은 기사를 생산하는 곳이 좋은 언론사다’이다.

그 결과? 무슨 수를 쓰든 많은 기사를, 어떻게든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내보내는 무한경쟁의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경악’이니 ‘충격’, ‘헉’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단독’이라는 문패를 달고 밑도 끝도 없이 쏟아지며 전 사회에 악취를 퍼트린다. 팩트가 맞지 않는 기사를 써든, 남의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든, 이치에 닿지 않는 기사를 쓰든,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든 무관하다. 클릭 한번에 돈 한 푼이다.

네이버가 뉴스를 인공지능을 써서 편집을 하든, 편집자가 개입을 하든 사실은 그것은 부차적이다. 실제 포털의 뉴스를 지배하는 것은 ‘클릭을 받은 만큼 돈을 준다’는 악마의 알고리듬이다. 거기에는 진리도, 정의도, 정론도 설 자리가 없다.

포털이 뉴스를 공급하는 이유는 하나다. 뉴스라는 ‘미끼 상품’으로 트래픽을 올려 쇼핑 등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많은 클릭이 포털의 제1가치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뉴스의 가치는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극소수인 CP제휴사들만 자격을 얻는다. 다양성과 공공성을 처음부터 제약하는 구조다. 생태계를 척박하게 하는 요소를 여럿 갖추고 있는 셈이다.

네이버가 언론사에 주는 돈은 1년에 3천억쯤이라고 한다. 한국 정부가 한해 쓰는 예산이 본예산만 530조가 넘는다. 1년 예산의 0.05%으로 이런 악마의 시스템을 고칠 수 있다면, 해볼만한 시도가 아닐까. 기사를 작성하느라 취재를 할 시간이 없는 언론은 말이 안된다. 이런 악마의 인센티브를 언제까지 두고볼 순 없다.

물은 땅이 생긴 모양을 따라 흐른다. 물을 붙잡고 설득을 하고, 교화를 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술을 사준들 물이 계곡을 벗어나 산꼭대기로 흐를린 없다. 물이 오게 하고 싶으면 원하는 곳으로 물길을 파면 된다.

한 사회의 자원배분의 요체는 그 사회의 보상체계, 즉 인센티브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돈도, 인재도 그 사회가 파놓은 보상체계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은 사회의 영혼을 망가트린다.

/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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