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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누군가에겐 절실한 한끼, 외면 할 수 없었죠"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해 30분 걸어 오는 사람도

[아이뉴스24 이숙종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방역수칙 때문에 생활패턴도 크게 바뀌어 예전과 다른 풍경이 일상화되고 있다. 아이뉴스24는 코로나19 등으로 모든 것이 급변하는 삶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이곳에선'코너를 신설한다. 지역의 다양한 현장을 찾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낼 계획이다. [편집자주]

코로나19 장기화로 우리 사회 곳곳의 취약계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여러곳에서 운영 해 오던 무료 급식소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다중이 모일 수 없는 방역 강화로 대부분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소외된 이웃들을 더 힘겹게 하고 있다. 삼시세끼 중 한번의 식사일 뿐이라지만 어느 누군가에가는 '절실한' 한끼다.

30일 오전 10시. 코로나19로 무료급식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소외계층의 따뜻한 밥 한끼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한 충남 천안적십자봉사관을 찾았다.

성정동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노숙자와 장애인,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70~160여명분의 식사가 매일 만들어진다. 이날도 봉사자 20여명이 주방에서는 밥과 반찬을 만들고, 급식소로 이용하던 홀에서는 도시락 포장이 한창이었다.

천안적십자봉사관 봉사자들이 160여명의 점심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사진=이숙종 기자]

코로나19가 확산세를 보이던 지난해 초. 봉사관 급식소 역시 방역 문제 때문에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급식이 중단되자 이곳을 찾던 사람들은 언제쯤 급식을 먹을 수 있을지 매일 점심식사 시간이 되면 봉사관 주변을 맴돌았다. 이를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던 봉사자들은 '누군가에겐 절실한 한끼를 중단 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3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천안적십자봉사관 박말순 실장은 "코로나19 때문에 무료급식이 중단되면서 기존 이곳을 찾던 노숙자나 취약계층 분들이 '라면이라도 줄 수 없느냐' '찬밥 한 그릇만이라도 달라'며 문을 두드렸다"며 "이곳에서 한끼를 먹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려운 형편인 분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해 4월 다시 문을 연 급식소는 급식 배식 대신 도시락으로 바꿨다. 봉사자들은 외부 출입이 쉽지 않은 독거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도시락을 집까지 배달도 해준다. 도시락 포장과 배달, 일회용 도시락통 사용으로 일손도 운영비용도 두 배 이상 들지만 봉사자들은 코로나19로 사람과 사회가 얼어붙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온기가 담긴 따뜻한 밥 한끼가 소중한 시기'라고 믿고 있다.

오전 11시 30분이 되자 봉사관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봉사관 관계자들이 도시락을 들고 나오자 대기하던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섰다. 차례로 도시락을 받아 들고 이곳을 나서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70여명 이상이다.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은 A씨는 "코로나19로 무료급식을 중단했을때 막막한 심정이었다"며 "도시락을 받기 위해 30분넘게 걸어오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라면 괜찮다"고 말했다.

밥과 반찬 미역국이 담긴 도시락은 30여분만에 모두 소진됐다. 마지막 도시락을 들고 돌아서는 한 시민은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천안적십자봉사관에 도시락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

적십자봉사관의 무료급식은 1998년 IMF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실직과 사업실패로 노숙자가 늘어나고 생활고로 인해 밥 한끼 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생겨나자 그들의 밥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민간 봉사자들의 힘으로 23년을 이끌어 온 곳이기도 하다.

적십자봉사자들의 연회비와 후원금으로 급식 봉사가 운영돼 봉사자들 간의 신뢰와 책임감도 단단하게 형성돼 있다. 지난해 3개월 간 급식이 중단됐을때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도시락이라도 준비하자'고 팔을 걷어붙였다. 후원금이 부족할때는 채소와 과일 등 직접 농사 짓고 기른 식자재를 들고 오기도 한다. 대부분 국내산 식재료로 아침 일찍부터 조리한다. 식자재 마련부터 정성이 들어가서 인지 무료로 나눠주는 음식이라고 해서 대충 만드는 법도 없다.

박 실장은 "봉사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다보니 사정이 빠듯하긴 하지만 봉사자들 모두 제 일처럼 나서주신다"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정 어려울 때는 충남적십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후원자들에게는 급식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정 후원을 부탁드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서 먹는 급식은 단순히 식사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주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나 노숙자들은 타인과의 유대관계가 거의 없는 분들로 밥 한끼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며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지만 어서 빨리 끝나 함께 식사하며 배도 마음도 든든히 채워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안=이숙종 기자(dltnrwh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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