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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싸움] ㊤ 美·中에 낀 넛크래커 韓…"주도권 확보에 사활"


반도체 넘어 안보 문제로 확대…아군 확보 나선 美, 中 '반도체 굴기' 노골적 방어

 [그래픽=아이뉴스24 DB]
[그래픽=아이뉴스24 DB]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기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함께 중국에 대한 견제 강화에 나서고 있는 미국에 대항해 중국은 투자 속도를 높임과 동시에 선진국 기술·인력을 빼돌리며 반도체 굴기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발생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양국의 신경전을 더 가열시키면서 '넛크래커' 신세에 몰린 한국 등에 있는 반도체 기업들은 전략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14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글로벌 반도체 칩 부족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회의에 직접 참가해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를 직접 들어 올리며 "반도체가 오늘날의 인프라"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공격적인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또 반도체 칩 부족 사태가 자동차 생산 중단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도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야 상·하원 의원 65명에게서 반도체 지원을 주문하는 서한을 받았다"며 "서한엔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 계획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반도체 투자 확대를) 기다리지 않고 있고, 미국이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며 "우리는 더 분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뉴시스]

미국 정부는 이번 회의에 미국의 안보 정책을 설계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을 참석시키며 현재의 반도체 문제를 산업적 측면이 아닌 안보 문제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달 초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도 반도체 문제를 핵심 이슈로 꺼냈다. 당시 미국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반도체 제조기술과 공급망, 반도체 기술 표준에서 한·미·일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8일 반도체 칩 설계 회사인 '톈진 파이시움 정보기술' 등 중국의 슈퍼컴퓨팅 기업 및 정부 연구소 7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앞으로 정부 허가 없이 이들과 거래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이들이 중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관여해 미국의 안보와 외교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톈진 파이시움 정보기술은 '케이던스' 등 미국 업체의 설계 소프트웨어를 쓰고 생산은 대만 업체 TSMC에 위탁하고 있는 상태로, 중국군 산하 '중국공기동력연구개발센터(CARDC)'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이용된 반도체 칩을 공급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슈퍼컴퓨팅 기업을 앞세웠지만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등 다른 산업까지 타격을 입으면서 미국이 반도체를 무기나 식량 같은 안보 자산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 [사진=인텔]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 [사진=인텔]

미국 정부는 반도체 자급화에도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조2천500억 달러(약 2천53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반도체 제조·연구 지원 예산 500억 달러(약 56조원)를 포함했다. 미국 의회는 올 초 반도체 투자액의 최대 40%를 세액공제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또 미국 정부는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도 팔을 걷어 부쳤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를 희토류, 자동차용 배터리, 의약품 등과 함께 4대 핵심 품목으로 선정해 이들의 공급망에 대한 100일간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를 통해 미국은 동아시아 중심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다시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각오다. 연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37%를 차지했던 1990년에 비해 12%로 급격히 감소한 현재의 미국 반도체 생산 능력을 자국 내 반도체 투자 활성화로 다시 시장 내 1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발맞춰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도 나섰다.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증설하는 한편,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또 연내 미국과 유럽에 신규 공장 건설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드러냈다.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일본 반도체 회사 키옥시아 인수 검토에 나서며 미국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선 강자이지만 제조 분야에선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미국 정부가 이처럼 나선 것은 중국의 적극적인 반도체 육성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데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에 대한 높은 제조 공급망 의존도가 위험하다고 인식한 영향이 큰 듯 하다"고 밝혔다.

중국 반도체 SMIC 내부 전경 [사진=SMIC]
중국 반도체 SMIC 내부 전경 [사진=SMIC]

이같은 미국의 반도체 자급화 움직임은 향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내 미국의 존재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줬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은 연평균 4.9%, 미국은 4% 증가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30년 미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12%에서 10%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중국은 15%에서 24%로 반도체 생산 최대 국가로 올라서게 된다.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일 수 있는 이유로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덕분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향상에 사활을 걸며 지난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 중이다. 또 2019년에는 '중국 반도체 산업 국산화의 원년'으로 삼고 대대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며 '기술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2025년까지 2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반도체 시장의 70%를 국내 제조 업체들이 공급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아직까지 경쟁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과 대만, 미국이 5nm, 7nm의 미세 가공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이 14nm를 상용화하는 단계인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3~4단계 뒤처져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중국의 주요 반도체 관련 업체로는 현지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 팹리스 업체 하이실리콘 정도가 꼽힌다. 업계에선 이들 업체가 만드는 제품이 선진 제품 수준과 거리가 먼 데다 생산량 역시 세계 시장 규모와 비교했을 때 아직은 미미해 큰 영향력이 없다는 평가다.

다만 최근 들어 중국 기업들이 잇따라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업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바이두(百度)가 투자한 자동차 지능기술 업체 이카엑스는 최근 7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칩을 개발, 곧 대량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TCL은 반도체 설계와 신소재 개발을 포함한 사업에 집중할 새 자회사를 설립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칩 조달을 원천 차단한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얼마나 큰 약점을 가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면서도 "중국이 정부의 강격한 지원 속에 반도체 기술을 성장시키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만큼 미국의 견제는 점차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미국이 가로막고 나서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원천기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중국의 반도체 패권 장악은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이같은 분위기 속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 기업들의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전략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편, 중국에서도 이를 정치적으로 확대해 노골적으로 압박 카드를 내세우게 되면 양국 사이에서 방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3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뒤 발표문을 통해 "한국과 반도체 분야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바란다"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동맹·우방 단속을 통해 대중 수출을 통제하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수출액 비중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국을 한국 업체들이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양국 사이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정부에서 양국의 눈치만 보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현명한 외교 활동을 통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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