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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우리, 고양이와 함께 산다' 길고양이 공존 마을에 가보니


'함께 산다'는 것은 동거 개념 아닌 '공존'

[아이뉴스24 이숙종 기자]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규칙을 지켜가는 사회, 동물과 인간이 한 마을에서 이웃처럼 살아가는 사회.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그렇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충남 천안시 수신면 속창1리. 마을 어귀 수신면사무소 건물 옆에 살이 오른 고양이 두 마리가 겨울볕에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에도 잠시 눈을 떳다 감을 뿐 사람을 경계하거나 도망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볕을 쬐던 고양이 뒤로 고양이집과 사료가 눈에 띄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고양이집은 며칠새 찾아 온 한파에도 거뜬할 만큼 튼튼하고 아늑해 보였다.

길고양이가 쉴 수 있도록 장제성씨가 직접 집 마당에 만들어 놓은 쉼터. 온열시스템도 작동해 겨울에도 고양이가 편히 쉴수 있다.[사진=이숙종 기자]

면사무소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일반 주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집 한채가 눈에 들어왔다. 수 마리의 고양이가 마당 캣타워를 오르내리며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모습은 마을 어귀에서 만난 고양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집주인은 '고양이의 삶도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며 길고양이와 공존 마을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장제성(51)씨.

장씨는 "함께 살고 있는 길고양이는 모두 13마리"라고 했다. 집안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아닌 길고양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는 설명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마당과 옥상에 고양이가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줄 뿐"이라며 "이곳에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마당에 만들어 둔 캣타워와 옥상 위 고양이 평상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고 말했다.

'함께 산다'는 의미는 동거의 의미가 아닌 '공존'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장제성씨의 아내 장연희씨가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마을 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사진=이숙종 기자]

경남 통영에 살던 장씨가 천안으로 이사를 온 것은 지난해 5월. 통영에 살 당시 아내 장연희(55)씨와 산책을 종종 하곤 했는데 산책길에서 아프고 굶주린 길고양이를 만나게 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심이라고 해도 산과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밥을 챙겨주던 어미 길고양이가 병에 걸려 죽자 남겨진 새끼고양이를 데리고 왔고 그때부터 길고양이들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장씨는 "통영에서 고양이 4마리를 데리고 천안으로 이사를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예전처럼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길고양이들을 보며 아내가 '길고양이들에게 집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말을 자주했다. 당시에는 엄두가 나질 않아 시도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 온 해 여름, 밥을 주던 길고양이 가족 9마리가 전염병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며 "고양이들이 죽고 나니 아내가 했던 말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고양이집을 만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면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길고양이들을 마을이 품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장제성씨가 만들고 있는 고양이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씨가 제작한 고양이집은 자동 온열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평소 목공일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그에게 고양이 집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인터넷과 관련도서 등을 찾아가며 제작에 들어갔다. 든든한 후원자는 아내 장연희씨였다. 목공을 할 수 있는 장소와 목자재 구입도 아내가 힘을 보탰다. 단순한 집이 아닌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바닥에 전기패널 보온시설까지 구축한 집을 만들었다.

◆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이던 마을주민들...'괜찮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장씨 집에 고양이집과 시설이 하나 둘 늘어가자 고양이들도 자연스럽게 장씨 집으로 모여들었다. 고양이가 늘어나는 만큼 주민들의 불만은 늘어가기 시작했다.

"시골마을이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고양이가 다 모여들게 왜 고양이밥을 주느냐', '아무 곳이나 배변을 하고 우는소리때문에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분들이 많았다"며 "그런 분들을 일일이 설득하다가 주민들의 불편해 하는 부분을 해소하고자 아예 우리집 마당 전부를 고양이들에게 내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자신 집 마당 텃밭 전체에 모래를 깔았다. 고양이들의 배변을 위한 조치였다. 고양이가 쉴 수 있는 캣타워와 평상, 집 등을 집안 곳곳에 설치했다.

또 마을 고양이 27마리를 데려다 중성화수술도 했다. 살만한 환경을 조성해 주자 고양이들은 더 이상 마을의 쓰레기봉지를 뜯는일도, 배변을 아무 곳에나 배설하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오히려 고양이들이 마을 배수로 등에서 출몰하던 쥐와 벌레들을 잡아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을 했다. 장씨가 고양이와의 공존을 시도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생긴 일이다.

그때부터 마을 주민들도 고양이에게 보내던 싸늘한 시선을 슬슬 거두기 시작했다. 마을 어르신들도 더 이상 길고양이를 내몰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자체도 길고양이 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입장장으로 바뀌어 면사무소는 고양이를 위해 건물 한 켠을 내어줬고, 보건소와 마을회관 입구에도 고양이 집과 급식소가 들어서게 됐다.

◆ 목표는 사람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는 마을 1호

속창1리 마을에는 어느곳을 다녀도 고양이들을 위협하는 사람이 없다. 고양이 역시 사람을 피해 도망가거나 울지 않는다. 공존하는 삶의 가능성을 본 장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고양이들의 도시 '캣시티'를 조성해 도심에서도 고양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

장씨의 도전에 천안시가 화답했다.

장제성씨가 제작해 천안시청에 기증한 캣시티 [사진=천안시]

장씨가 사비를 들여 만든 캣시티가 지난 10월 천안시청 내에 조성됐다. 운영주체는 천안시가, 관리는 자원봉사자가 하고 있다. 현재 5마리 이상의 고양이가 이곳을 찾는다. 도심 속에서도 인간과 동물의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는 평가도 얻었다. 타 지자체도 이 같은 환경에 관심을 보이며 문의가 오기도 한다.

"아파트가 밀집한 도심은 캣시티를 통해 함께 사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도심 외곽 마을은 공존 마을로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속창1리가 첫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마을 이장님과 시 관계자, 시의원 등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다.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정서적 합의는 모두 된 상태"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어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는 마을의 선례가 되고 싶다. 첫 걸음이 성공한다면 공존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많은 마을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마을과 사회가 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을은 고양이를 보살피는 일을 하면 되고, 사회인 지자체는 그런 마을을 지원하는 지원 정책들을 제시해 마련하면 된다. 사람과 동물이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환경을 만든다면, 서로 공존하는 삶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제성씨 집 옥상에 설치된 고양이 쉽터. 마을 길고양이들은 이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휴식을 취한다. [사진=이숙종 기자]
/천안=이숙종기자 dltnrwh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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