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넷플릭스 대항마는 콘텐츠


이찬구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 부센터장

한때 인적자원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강대국 속에서 생존조차 어려웠던 시절, 우리는 인적자원의 활용을 통해 경제개발을 꿈꾸며, 강대국과의 경쟁은 아니었을지언정,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위상이 올라가는 성과를 이뤄냈다.

당시의 성공요인이자 경제개발을 주도한 것은 값싼 노동력이자 물리적인 인적자원이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적자원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다양한 인력들이 다양한 상품과 기술을 쏟아내면서 차별적 기술력을 보유한 인력들이 경제발전 뿐만 아니라 산업발전의 주역으로 자리했다.

인적자원의 기술력이 중요해진 것은 인적자원의 노동력이 차별화나 성장의 주요 요인으로 더 이상 작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세계적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기술을 보유한 인적자원은 산업과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해왔다.

4차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인적자원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인적자원이 각 산업에 투입되고 있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술과 서비스는 세상을 또다시 변화시킬 것이다.

이즈음에서 새로운 세상에서는 무엇이 중요하고 산업과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향후 10년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 이후는 어디든 종속되어 끌려갈 수 밖에 없다. 과거 인적자원의 노동력이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기술력도 그러한 상황이 올 것이다. 이 때가 되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핵심 요인은 인적자원의 창의력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니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2019)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 산업의 2019년 수출액(p)은 약 103.3억달러로 전년대비 8.2% 증가했으며, 최근 5년간 연평균 16.2% 성장하는 등 타 산업 대비 높은 수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2018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 증가율 5.4%, 2014~2018년 수출 연평균 성장률 1.4%에 비하면 매우 높은 성장세다. 또한 2018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콘텐츠산업 경쟁력 강화 핵심전략에 따르면, 콘텐츠산업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781로 제조업 평균 0.483에 비해 2배 수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2018)에 따르면, 문화콘텐츠산업의 고용계수는 6.7, 고용유발계수는 11.1로 각각 제조업의 고용계수는 1.8, 고용유발계수는 5.6명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미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게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는 올해 콘텐츠 제작에 약 160억 달러(한화 약 20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타 글로벌 사업자도 다르지 않다. 아마존 프라임은 약 70억 달러, 애플TV+는 약 60억 달러, 디즈니+도 약 17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매출의 약 75%에 달하는 비용을 콘텐츠 투자에 집중하고 타 경쟁사업자도 앞다퉈 콘텐츠에 투자하는 이유는 인적자원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콘텐츠가 핵심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국내 사업자가, 아니 국내 미디어 산업조차도 투자 규모를 글로벌 사업자만큼 늘리기는 불가능하다. 한 사업자의 투자비용이 국내 전체 방송시장 규모를 넘는 상황에서 절대적인 규모, 유사한 플랫폼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과거 아무것도 없던 시절 노동력으로 기반을 다지고,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 기술력 하나로 경쟁에 뛰어들던 시절처럼, 이제는 더 심해진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우리가 보유한 인적자원의 창의력으로 승부를 거는 수밖에는 없다.

물론 이것은 산업이 해야할 일이다. 정부 할일은 사업자가 창의력을 무한히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인적자원의 노동력은 단기적으로 투입해도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기술력은 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복적인 투입으로 성과를 앞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창의력은 보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하고 기다려야 성과가 나온다. 창의력의 성과를 앞당기고 지속시키는 방법은 더 빠르고 더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 뿐이다.

이 역시 산업이 할 일이다. 정부는 사업자가 창의력 제고에 집중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는 상당히 작은 일이겠지만, 무한 창의력을 발휘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10월에 발표된 서비스 R&D 활성화 전략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인적자원의 창의성은 R&D 강화를 통해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제조업, 과학기술 중심의 R&D 정책이 서비스 분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정책방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상품 그 자체에 집중되는 R&D가 아니라 상품을 담는 박스나 포장지, 유통방식 개선 R&D에 집중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전히 인적자원의 기술력은 중요 요소다. 특히 4차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기술력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관련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 역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본질은 콘텐츠인데, 콘텐츠가 없는 기술과 서비스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정부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사실 콘텐츠 R&D 분야는 관련 규정 개선이 시급한 분야다. 수많은 R&D(기획/창작) 활동에도 콘텐츠 산업은 현행 법의 한계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의 R&D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고, 현행 법상 R&D 세제지원이 가능한 조항도 콘텐츠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나머지 실질적으로 수혜를 받는 사업자는 극히 일부인 상황이다.

특히 기업부설창작연구소와 그에 따른 인적, 물적 요건들은 콘텐츠 R&D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독소조항이다. 기술 R&D의 성과는 수많은 실험과 시험 등을 통해 발생한다.

그러나 콘텐츠 R&D는 수많은 경험과 다양한 인적자원의 창의력과 교류를 통해 발생한다. 결코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아닌 것이다. 그동안 국가적 차원에서도 R&D를 장려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R&D, 인적자원의 창의력 제고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미미하게 느껴지고 있는 이유이다.

미디어 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확보는 통합 OTT도 다양한 플랫폼도 아니다. 오직 콘텐츠만이 전체 미디어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 미디어 이용률이나 시청률이 하락하는 것은 볼만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이용자가 몰리는 것은 이용할만한 콘텐츠가 많아서다. 아주 단순한 이 시장원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방향성도 경쟁력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플랫폼 대 플랫폼으로 글로벌 OTT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글로벌 사업자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우리에게 종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글로벌 미디어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경쟁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

넷플릭스의 대항마는 결국 콘텐츠다.

/이찬구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 부센터장

이찬구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 부센터장 [미디어미래연구소]

◆ 이찬구 부센터장은 한양대하교 박사(경영학)를 취득한 방송, 콘텐츠 전문가로 현재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센터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의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 한국방송통신진흥원 사업관리심의위원회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김문기 기자 moon@inews24.com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