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호로비츠의 ‘3’과 금융CEO의 ‘3’


최광호 사진작가가 32년 전인 1988년 뉴욕 거리에서 우연히 찍은 호로비츠의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그의 손가락이 표현하지 못할 인간의 감성은 없다.” 위대한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에게 붙는 찬사다. 1903년 현재의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태어나 1989년 뉴욕에서 숨질 때까지, 그의 이름 앞에는 ‘피아노의 신’이라는 타이틀이 항상 호(號)처럼 따라 다녔다. 최근 한국인이 우연하게 찍은 호로비츠의 일상 사진이 공개돼 눈이 번쩍 뜨였다. 그냥 동네 평범한 어르신인줄 알고 셔터를 눌렀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사람이었다.

최광호(65) 사진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32년 전인 1988년 뉴욕대(NYU) 대학원에 입학했다. 흥분과 설렘 속에 날마다 뉴욕 거리를 누비며 찰칵찰칵 렌즈에 담았다. 가장 많이 들락날락한 곳이 국제사진센터(ICP) 전시장. 오후 두세 시쯤 센터를 나오면 그 옆 업타운 거리 벤치에 앉아 행인을 지켜보는 한 노인을 자주 보게 됐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최 작가는 서툰 영어를 구사하며 얼굴을 익혔다. 몇 번 만나 대화를 이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 하세요.” “나는 피아니스트야. 당신은 뭐 해.” “사진 찍어요. 그런데 돈은 좀 있으세요.” “그걸 왜 물어.” “볼 때마다 똑같은 회색 양복만 입고 있으니까요.” “아, 내가 똑같은 옷을 세벌 가지고 있어서 그래.”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 하면 손사래를 쳤지만 웬일인지 최 작가에게는 너그러웠다. 아마 동양에서 온 낯선 유학생이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 어눌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게 싫지 않았나보다.

최광호 사진작가가 32년 전인 1988년 뉴욕 거리에서 우연히 찍은 호로비츠의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카메라에 담긴 모습은 소탈한 이웃 할아버지다. 선글라스를 낀 그는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시민과 반갑게 인사하며 한가롭게 하루를 즐기고 있다. 앵글을 응시하며 살짝 포즈를 취해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1년 뒤 호로비츠가 타계했다는 방송 뉴스를 본 뒤에야 그가 거장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최 작가는 지난 8월 열린 개인전에서 호로비츠의 사진 4점을 선보였다. 반가운 사진 효과 때문일까. 평소 자주 그의 연주를 듣지만, 이 사진 덕에 요즘은 더 많이 호로비츠를 플레이한다.

내친김에 이것저것 찾아보니 호로비츠 음악 인생에서 ‘3’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깊다.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도록 만들어준 ‘3’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3’번의 침묵이 있었다. 사람의 일생이 늘 비단길일 수는 없는 법. 호로비츠가 걸었던 울퉁불퉁 자갈길은 결국 비타민이 되고 산삼이 되고, 또 피가 되고 살이 됐다.

결정적 음악의 첫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다. 호로비츠는 1933년 당대 최고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를 만나 협연했다. 불같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해 툭하면 “노! 노!(No! No!)”라고 호통을 치기 일쑤여서 ‘토스카노노’라는 별명이 붙은 지휘자는 호로비츠의 연주에 홀딱 반했다. 요놈을 옴짝달싹 못하게 잡아둘 묘안을 짜냈다. 딸 완다를 직접 소개해줬고 이 작전은 그대로 통해 사위로 삼았다. 토스카니니라는 ‘빽’까지 얻은 셈이니 호로비츠도 남는 장사다.

이에 앞서 1928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미국 데뷔 공연은 쇼킹했다. 토머스 비첨(1879~1961)의 지휘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한참 혈기가 넘쳤던 호로비츠는 비첨이 지휘하는 곡이 너무 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1악장과 2악장은 어찌어찌 합을 맞췄는데 3악장에서 폭발했다. 느린 템포의 지휘자를 따돌리고 건반에서 연기가 풀풀 날 정도로 무섭게 질주했다. 피아노 하나가 오케스트라를 삼켜버렸다. 좋았다 싫었다의 평가를 넘어 평론가와 청중은 열광했다. 새로운 스타일의 등장에 환호했다.

1928년에 호로비츠는 또 다른 귀인을 만난다. 바로 같은 러시아 출신인 작곡가며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고 난해한 곡이지만, 서른 살이나 어린 호로비츠의 연주를 듣고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 피아노 협주곡은 바로 이렇게 연주돼야 한다고 항상 꿈꿔왔다”고 극찬했다. 자신이 작곡한 모든 작품의 편집권을 호로비츠에 아예 넘겼을 정도로 감명 받았다. 그 후 호로비츠에게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시그니처 레퍼토리였다.

3개의 콘체로토 외에도 호로비츠 인생에는 3번의 긴 침묵기가 있었다. 든든한 장인을 만나 한참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돌연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연주를 올스톱했다. 퍼펙트를 추구했던 토스카니니가 더 크게 성장하려면 더 연습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을까. 거침없는 야생마는 3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 진정한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사위와 장인은 환상케미를 이뤄 연주회와 녹음작업을 오가며 1940년대 황금기를 마음껏 누렸다. 그리고 1953년 다시 홀연히 멈추었고 1965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왔다. 무려 12년을 두문불출했다. 카네기홀에서 열린 컴백 리사이틀 티켓을 사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줄이 이어졌다. 그날 공연에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반인반신(半人半神)의 경지에 이른 호로비츠가 우뚝 서있었다.

호로비츠는 1969~1974년 세 번째 공백기를 갖는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연주 스타일이 더 공격적이고 더 과시적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내 안에 악마가 살아있다”고 토로할 정도로 아찔한 다이내믹과 예리한 터치에 몰두했다. 1979년 미국 데뷔 50주년 콘서트에서는 유진 오먼디(1899~1985)의 지휘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 녹음해 7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슈퍼 비르투오소 파워를 보여줬다.

연말을 맞아 금융권 최고 경영자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면서 몇몇 CEO의 ‘3’연임이 화제다.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허인 KB국민은행장의 ‘윤허 투톱’은 얼마전 3연임을 확정지었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도 일찌감치 3연임에 성공했다. 어닝 서프라이즈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코로나19로 대내외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점을 앞세워 지나치게 안정적인 것만 추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귀담아 들을 부분이다. 실적이 좋으면 한 번 더 해도 좋고, 또 실적만 좋으면 세 번 해도 된다는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 일단 ‘1’ ‘2’를 넘어 ‘3’까지 이르렀으니, 아름다운 ‘3’으로 끝맺음하기를 바란다. 호로비츠의 ‘3’처럼 금융CEO의 ‘3’을 응원한다. 어제(11월5일)는 호로비츠가 하늘나라로 떠난 날이다. 그의 피아노 소리는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민병무 금융부 부국장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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