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바이오 '유니콘' 기업 에이프로젠의 그룹사 합병이 끝내 무산됐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가 결국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합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던 에이프로젠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9일 에이프로젠KIC는 오후 1시50분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전날보다 17.50% 급락한 2천75원에 거래되고 있다. 에이프로젠제약도 5.08% 내렸고,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에이프로젠H&G도 17.25% 하락하며 동반약세를 보이고 있다.
에이프로젠KIC는 전날 장 마감 후 공시를 통해 그동안 추진해왔던 에이프로젠과 에이프로젠H&G의 흡수합병 계약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에이프로젠KIC는 "합병 진행과정에서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이 이뤄지지 않아 계획된 일정과 방식으로 합병 추진이 불가능해졌다"며 "경영활동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 이사회 결의로 합병 결정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에이프로젠은 ▲그룹사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사업 경쟁력 강화 ▲경영 효율성 제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극대화 등을 목표로 지난 4월 에이프로젠KIC가 에이프로젠H&G(코스닥)와 에이프로젠(비상장)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하고 추진해 왔다.
합병 후엔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에이프로젠, 판매를 담당하는 에이프로젠제약, 생산을 담당하는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로 사업부문을 재정비하고, 김재섭 대표→지베이스→에이프로젠→제약·바이오로직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확립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흡수합병 신고서 6차례 정정…기업가치 평가 등 이견
그러나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가 번번이 퇴짜를 맞으며 합병일정이 계속 미뤄졌다. 에이프로젠은 그동안 6차례의 정정신고서를 제출했고, 외부평가법인의 평가의견서도 4차례나 수정했다.
특히 합병하는 에이프로젠KIC와 피합병 법인 에이프로젠의 합병비율과 가치 산정에서 회사와 금감원의 입장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처음 합병 계획을 발표했을 때 에이프로젠의 기업가치는 총 1조6천888억원(1주당 3만2천603원)으로 책정됐다. 에이프로젠KIC와 에이프로젠의 합병 비율은 1대 16.37이었다. 에이프로젠 주식 1주당 에이프로젠KIC 주식 16.37주가 배정되는 것으로, 두 회사의 주식 가치가 16배 이상 차이나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후 에이프로젠은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며 합병비율은 1대 16.37→1대 16.19→1대 14.94로 점점 낮아졌다. 에이프로젠이 신약 파이프라인 가치를 모두 제거하는 등 수익가치 평가 절하를 감내하며 몸값을 점점 낮췄지만, 결국 금감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에이프로젠의 평가를 진행한 삼덕회계법인은 "해당 신약 과제는 임상시험에서 실패할 확률이 무작위적인 항체를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경우보다 낮으며 성공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신약 가치산정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합병 당사 회사들간 합의된 내용을 고려해 합병가액 산정을 위한 수익가치에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통 비상장사와 상장사간 합병은 규모가 큰 상장사가 비상장사를 흡수합병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에이프로젠의 경우 그 반대였다. 형식상 코스피 상장사인 에이프로젠KIC가 비상장사 에이프로젠을 흡수하는 형태지만, 합병 이후엔 법인명을 ‘에이프로젠’으로 변경하는 등 실제론 에이프로젠으로 에이프로젠KIC가 통합되는 구조였다. 장외기업인 에이프로젠이 에이프로젠KIC를 통해 코스피에 상장하는 사실상 우회상장이었다.
바이오 기업에 대한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심사가 한층 엄격해진 것이 합병 철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신라젠, 한미약품 등의 사태 이후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 등 규제를 강화해 왔다. 과거 일부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신약 개발이나 기술수출 등의 성과를 부풀려 공시해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늑장공시가 도마에 올랐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시 누락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신라젠, 차바이오텍, 셀트리온 등도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문제 등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금감원이 기업합병 등에 있어서 합병비율에 따라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객관적 근거 요청 등 증권신고서 심사를 강화하는 추세다.
◆김재섭 대표 "준비되면 재추진…직접 상장도 고려"
바이오시밀러 기반의 신약개발업체인 에이프로젠은 지난해 말 국내에선 11번째로 미국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트가 선정하는 유니콘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설립한 지 10년 이하의 스타트업 기업을 뜻한다.
에이프로젠은 2009년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에 이어 국내 세번째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임상3상을 마치며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당시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를 대상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며 에이프로젠은 2년 내(2021년5월31일) 국내 증시에 상장할 것을 약속했고, 상장에 실패할 경우 원금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김재섭 에이프로젠 대표는 "회계법인의 평가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며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금융감독원의 염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다"며 "이번 합병계획을 신속하게 철회한 것은 되도록 빨리 현 상황을 수습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감독 기관의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판단이 서면 합병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며 "직상장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에이프로젠KIC, 에이프로젠H&G,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 등과의 관계를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성 기자 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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