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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의 "유레카"…양자얽힘 엑시톤 첫 발견


서울대-연세대-서강대-고등과학원, 네이처에 새로운 양자현상 발표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하나의 전자가 여러 원자에 나뉘어 존재하는 '양자 다체 상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前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지난 2016년 2차원 자성(磁性) 물질의 빛 방출 실험을 하던 중 특정 에너지대에서 비정상적으로 강한 빛을 내는 엑시톤(exciton, 전자와 양공으로 이루어진 입자)을 발견했다.

이후 약 5년 동안 서강대 정현식 교수, 연세대 김재훈 교수, 고등과학원 손영우 교수 등이 서로 다른 방식의 실험과 계산을 통해 이 특이한 현상을 연구한 결과 '전자 한 개가 여러 원자에 나뉘어 존재하는 양자다체상태의 새로운 엑시톤(Coherent many-body exciton)'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예측된 적이 없는 새로운 양자현상이, 양자 상태에서 빛을 방출하는 엑시톤에서 발견됨에 따라 양자광원을 이용하는 양자정보통신 기술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는 21일 자정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Nature)를 통해 공개됐다.

양자 다체 자성 엑시톤 연구진 공동교신저자. (왼쪽부터) 박제근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정현식 교수(서강대 물리학과), 김재훈 교수(연세대 물리학과), 손영우 교수(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과기정통부 제공]
양자 다체 자성 엑시톤 연구진 공동교신저자. (왼쪽부터) 박제근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정현식 교수(서강대 물리학과), 김재훈 교수(연세대 물리학과), 손영우 교수(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과기정통부 제공]

◆양자얽힘 상태의 엑시톤을 처음으로 발견하다

엑시톤은 자유전자와 양공(전자가 빠져나간 빈자리)으로 이루어진 입자다. 절연체에 빛을 쪼이면 원자에 속박된 전자가 들뜬 상태가 돼 양공 주위를 돈다. 엑시톤을 이루는 전자와 양공이 다시 만나면 빛을 방출하고 바닥상태로 돌아간다. 엑시톤의 존재는 이 빛을 감지함으로써 알 수 있다.

연구진은 2차원 자성물질인 삼황화린니켈(NiPS3)을 대상으로 한 빛 방출 실험에서 1.5 eV 근처에 매우 뾰족한, 통상적인 수준보다 수백 배 좁게 분포하는 신호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1.5 eV 에너지대에서 결맞음성(coherence)이 매우 강한 엑시톤 신호를 발견한 것이다.

당시 이 결과를 본 정현식 교수(서강대)가 "내 평생 이렇게 뾰족한 피크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이상했고, 기존의 어떤 지식으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후 영국의 방사광가속기 '다이아몬드'를 통해 이 엑시톤이 갖는 운동량과 에너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데이터를 얻어내고,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고등과학원 손영우 교수팀이 150만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으로 풀어냈다. 연세대 김재훈 교수팀은 광흡수 실험으로 광방출 실험과 비교했다.

연구팀은 결국 세 가지 측정방법을 동원한 실험연구와 다체(many body) 계산을 이용한 이론 연구를 함께 수행한 끝에 세 개의 실험이 같은 결과를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 엑시톤이 결맞음성이 매우 높은 양자 자성 엑시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이론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쟝-라이스(Zhang-Rice) 양자다체상태'로 설명했다. 쟝-라이스 상태는 '전자가 존재할 확률이 산재해 있어, 여러 원자에 동시에 속박되어 있는 독특한 양자상태'를 말한다. 원래 고온 초전도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1988년 처음 등장했지만 이후 고온 초전도체 실험이 더 발전되면서 실험결과와 일치하지 않아 사장된 이론이다. 박제근 교수는 이를 "자동차용으로 개발했다가 실패해 버려진 도구가 훗날 자전거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된 것"으로 비유했다.

◆"지하철 2호선의 오디세이"…양자정보통신의 새로운 길을 열다

이번 연구는 2차원 자성 물질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양자 현상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이 엑시톤은 강한 결맞음성을 보이면서, 자성을 띠는 스핀자유도가 양자적으로 얽힌 매우 특이한 형태다. 연구진은 "2차원 자성체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이렇게 다체상태에 의해 스핀이 얽힌 엑시톤은 발견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엑시톤은 양자상태에서 광자를 방출하는 양자광원이어서 기본적으로 양자정보통신 기술의 중요한 열쇠로 거론된다. 연구진은 "자성을 갖는 엑시톤도 드문데, 결맞음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수백 배 높아 기존에 알려진 메커니즘과 전혀 다른 물리 현상임을 시사한다"면서. 이 엑시톤을 양자컴퓨팅 등에 활용할 수 있을지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차원 자성 물질 연구는 물리학 전체에서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박제근 교수가 2010년 서울대에서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분야다. 해외에서도 한국에서 개척한 중요한 연구분야로 인식되고 있는 전세계적으로 드문 예이다.

박제근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가 "서울대, 서강대, 연세대, 고등과학원의 연구자들이 어두운 방에서 벽을 더듬어 가는 것과 같은 작업을 함께 진행한 결과"라면서 "여러 실험들을 계속하면서 전혀 연결되지 않았던 실험 결과들이 서로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유레카’를 경험"한 감동을 전했다.

박 교수는 "세 실험팀과 한 이론팀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결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토론을 하면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연구진들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토론을 했기 때문에, 이 연구성과를 ‘과학의 2호선 오디세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논문명 : Coherent many-body exciton in van der Waals antiferromagnet NiPS3

◇저자 : 강순민(공동 제1저자, IBS/서울대), 김강원(공동 제1저자, 서강대), 김범현(공동 제1저자, KIAS), 김종현(공동 제1저자, 연세대), 심경익(연세대), 이재웅(아주대), 이성민(IBS/서울대), 박기수(IBS/서울대), 윤석환(IBS/서울대), 김태훈(IBS/서울대), A. Nag(Diamond Facility), A. Walters(Diamond Facility), M. Garcia-Fernandez(Diamond Facility), J. Li(Diamond Facility), L. Chapon(Diamond Facility), K. Zhou(공동교신저자, Diamond Facility), 손영우(공동교신저자, KIAS), 김재훈(공동교신저자, 연세대), 정현식(공동교신저자, 서강대), 박제근(공동교신저자, IBS/서울대)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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