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나더 컨트리’ 지호림 “데뷔 실감 안나…성장하는 배우 될 것”

“장면 차곡차곡 잘 쌓아 설득력 주고파…무대서 최대한 집중하고자 노력”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안녕하세요.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데뷔하게 된 신인배우 지호림입니다. ‘가이 베넷’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연극 ‘어나더 컨트리’의 주연을 꿰찬 지호림의 자기소개는 아주 간결했다.

지호림은 전주예고를 졸업하고 현재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가수가 되고 싶어 예고에 진학한 그는 다양한 수업을 접하며 연기에 큰 매력을 느꼈다. 발레와 현대무용까지 배워 무대에서 보여줄 끼가 다분한 배우다.

[사진=조성우 기자]

지난 10일 ‘어나더 컨트리’ 재연 개막과 함께 첫 무대에 오른 지호림은 데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얼떨떨하고 아직까지 실감도 안 난다”고 답했다. “데뷔를 한 건가?(웃음) 무엇보다 무대에서의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게 공연을 봐주시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에 올라갈 때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영국의 극작가 줄리안 미첼 원작으로 1981년 런던 그리니치 극장에서 초연돼 이듬해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랐다. 1984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파시즘과 대공황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대의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계급과 권위적인 공간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단아 토미 저드, 이 두 청년의 이상과 꿈, 좌절을 그린다.

국내 초연 후 1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 재연에는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예들과 실력파 배우들이 고루 참여한다. 지호림이 연기하는 가이 베넷은 권위주의에 물든 제도와 인간의 존엄을 상실한 학교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하는 진보적 청년이자 사랑 앞에서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사진=조성우 기자]

첫 공연 후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 카페에서 지호림을 만났다. 학교 공연 외의 무대에서 관객과 마주하는 요즘 그에겐 행복과 긴장감이 공존한다.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 관객을 향한 고마움도 큰 지호림의 무대 도전기를 하나하나 들어봤다.

다음은 배우 지호림과의 일문일답.

- 배우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리스’란 작품을 했는데 뮤지컬이 되게 재밌더라. 그래서 뮤지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연습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좋았다. 나중엔 연기가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연기를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70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가이 베넷 역을 따냈다. 스스로 생각하는 합격 비결은 무엇인가.

“입시 때부터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순간에 얼마나 집중하느냐다. 오디션도 ‘집중해서 내가 연습한 만큼만 보여주고 나오자’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잘하려고 하거나 욕심 부리면 못하게 되더라. 이번에 연습을 많이 했다.”

- 오디션을 가이 베넷 역으로 봤나.

“그렇다. 토미 저드도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랑 접점이 많지 않은 가이 베넷에 도전하면 한 단계 더 성장해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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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성격은 어떤가.

“가이 베넷이 되게 예민하기도 하고 방방 뛰고 사랑스럽지 않나. 반면 나는 차분하다고 묵묵하다. 친해지면 정이 많다. 말이 별로 없고 주로 듣는 편이다.”

- 가이 베넷과 굳이 닮은 점 찾는다면.

“가이 베넷이 인사이더지 않나. 나는 인사이더까진 아닌데 어쩌다가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장을 했다. 지금 중앙대에서도 친한 사람들이 많고 두루두루 다 잘 지낸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처음엔 낯을 가리지만 자주 만나고 서로 털어놓고 얘기하다보면 친한 사람이 많아진다.”

- 밝은 성격도 비슷하지 않나.

“같이 작품 하는 형들이랑 있을 때 애교를 부리진 않지만 친하니까 스킨십을 많이 한다. 밝은 면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낯을 엄청 많이 가린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게 제일 힘들다. 셀카도 안 찍는다. 처음에 콘셉트 사진 찍을 때 너무 어색해서 죽을 뻔했다.(웃음)”

[사진=조성우 기자]

- 작년에 초연을 봤나.

“군대 휴가 나와서 형들(연준석·문유강) 하는 걸 봤다. 나랑 같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기했던 형들이 무대에서 많은 관객들 앞에서 멋지게 하고 있으니까 되게 부러웠다.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군대 안에 들어가서도 형들이 하는 걸 찾아봤다.”

-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해나갔나.

“나는 대본 숙지가 느려서 많이 봐야 된다. 처음엔 대본에 손을 안 대고 보기만 하다가 나중엔 나랑 가이 베넷의 교집합이 될 만한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하나하나 찾아서 체크했다. 공감되는 부분을 형성해서 계속 키워나갔다. 사실 아직도 찾는 부분들이 많다. 공연 중 순간적으로 뭔가가 나올 때가 있는데 공연 끝나고 적어놓는다. 연출님도 얘기해주시고 모니터하면서 계속 찾아나가고 있다. 작년에 같은 역할을 한 형들 영상도 봤다. 하지만 노선을 따라가려고 하진 않았다. 분명히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내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 가장 힘든 장면을 꼽자면.

“모든 장면이 다 어려운데 1장에서 어느 정도 템포를 빨리빨리 끌고 가줘야 나중에 쌓이고 쌓여서 마지막 12장에서 터지기 때문에 1장이랑 12장, 그리고 허리춤에 있는 5장 이렇게 3개 장이 좀 힘든 것 같다. 내가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면 되게 애써 보이니까 처음에 잘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5장은 하코트를 만나고 와서 토미한테 사랑에 빠졌다고 얘기하는 장면이다. 가이 베넷의 통통 튀는 연기가 나한텐 쉽지 않다. 밝은 에너지를 계속 쌓고 쌓다가 마지막에 대비되는 모습을 딱 보여줬을 때 그 자체가 가이 베넷이라고 생각하는데 쌓는 과정이 어벌쩡하면 관객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렵다.”

- 캐릭터를 분석하고 내 것으로 만들면서 이 인물의 어떤 점에 끌렸나.

“가이 베넷에게 되게 연민이 느껴진다. 어찌됐든 가면을 쓰고 있지 않나. 마지막에 무너지기 전까지 좌절한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끝까지 말하지 않고 자기 혼자 감당하고 견뎌내고 그것조차도 가면을 쓰고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토미한테 ‘네가 내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똑같다’는 말을 했을 때 더 많이 무너졌을 것 같다.”

[사진=조성우 기자]

- 연습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유강이 형이랑 런 스루를 할 때 마지막 장면에서 그날따라 형 눈을 보고 연기하니까 더 무너지더라. 그 감정이 좋아서 내가 느끼는 대로 연기를 했다. 평소엔 약간의 계산들이 있는데 그날 처음으로 느낌대로 했더니 형도 오는 게 좋았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좋았던 부분들을 무대에서 극대화시키려고 한다.”

-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나.

“김찬호 형과 손유동 형이 되게 착하고 재밌고 웃기다. 두 형 다 장난기가 많고 되게 소년 같다는 게 비슷하다. 유강이 형도 개그감이 장난 아니다. 개그욕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코믹연기를 해도 잘할 것 같다.”

-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배우가 다른 만큼 세 배우 모두 다른 분위기의 가이 베넷을 만들어낸다. 서로의 매력을 얘기해 달라.

“영석이 형은 탱탱볼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형의 매력이다. 통통 튀고 장난기도 많고 되게 재밌다. 해준이 형은 모니터할 때 보니까 침착하면서 안정적이더라. 섹시하기도 하고 키가 큰 형이 치대니까 귀엽기도 하다.”

- 지호림의 가이 베넷은 어떤 특징이 있나.

“1장에서는 토미의 얘기를 최대한 들어주면서 여유로움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다가 토미랑 둘이 있을 땐 더 친하게 행동한다. 다른 형들과 제일 다른 게 12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지막에 댐처럼 막아놨다가 확 쏟아지는 느낌으로 하려고 애쓴다.”

[사진=조성우 기자]

- 토미 저드 역의 세 배우(김찬호·손유동·문유강)와의 호흡은 어떤가.

“찬호 형은 되게 따뜻하고 유동이 형은 잔망스럽고 유강이 형은 새침·도도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토미들이 주는 게 다 다르다. 찬호 형은 내 눈을 바라보면서 하는데 눈시울이 되게 붉어지더라. 유강이 형도 친하니까 거기서 오는 시너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유동이 형이랑은 오늘 처음 같이 한다. 형들 모두 내가 하는 대로 다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형들이 워낙 베테랑이니까 내가 부족하거나 과하면 조절을 해준다. 공연 때 형들 하는 거 보면서 배우고 있다.”

- 학교 선배인 문유강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형에게 고마운 게 많다. 첫 공연 하고 나서 소대에 들어왔을 때 살짝 흔들렸다. 너무 긴장을 하다보니까 표정이 굳어있었던 거다. 형이 얼굴만 봐도 아니까 와서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다음 장면에서 또 쌓으면 돼’ 이렇게 얘기를 해줬다. 연습할 때도 내가 안 풀리고 있으면 형이 보고 있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런 말을 해줄 때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니까 정말 고맙다.”

[사진=조성우 기자]

- 첫 공연 전후 기분이 궁금하다.

“들어가기 전까진 안 떨렸는데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음악이 나오니까 소대에서 나가기 직전에 갑자기 심장이 엄청 뛰더라. 공연은 생각할 틈도 없이 끝났다. 뭘 했나 싶을 정도로 되게 정신이 없었다. 끝나고 나선 너무 아쉬웠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데 그에 전혀 못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했다. 나 자신한테 화가 났던 것 같다.”

- 자신에게 엄격한 편인가.

“개인적인 생각인데, 연기를 할 때 배우는 결핍이 있어야 성장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부족한 걸 계속 채찍질하면서 생각을 하면 다음번에 실수가 조금 줄어들고 더 좋아지더라. 그래서 끝나고 나서 계속 부족한 부분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형들 공연을 모니터하러 갔을 때 무대에서 형들의 다른 좋은 부분들이 보였다. 그래서 ‘이 부분은 이렇게 바뀌어서 이렇게 좋구나’ ‘이 부분을 내 걸로 만들어서 내 방식대로 표현을 해봐야겠다’ 그런 것도 있었다.”

- 예를 들자면.

“영석이 형은 무대에 올라가니까 더 활동적이어지고 동선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해준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동선을 작게 썼던 부분이나 제스처가 형들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객석에 있으니까 관객 입장이 돼서 그런 게 흐뭇하게 보이더라.”

- 공연을 본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

“어머니·아버지가 재밌게 잘 보셨다고 했는데 내가 좀 부끄러워서 그냥 빨리 보냈다.(웃음) 부모님께서 ‘끊임없이 공부해라’ ‘부족한 건 너 자신이 더 알거야’라고 하시곤 가셨다.”

- 마지막까지 해결하고 싶은 숙제는 무엇인가.

“에너지를 더 밝게 만들고 싶다. 합도 중요하지만 관객들한테 되게 밝고 천진난만한 아이였다가 극명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야 관객들이 느끼시는 게 더 많지 않을까. 그 갭을 크게 하고 싶다.”

- 이번 작품이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나.

“가이 베넷이라는 인물 자체가 나한텐 도전이고 너무 좋은 형들이랑 같이 하고 있어서 의미가 크다.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 10대 때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이런 건 약간 가이 베넷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가이 베넷이 프랑스 대사가 될 거라고 미래를 의심 안 하다가 마지막에 무너지지 않나. 나도 무조건 멋진 배우가 될 거라고 하다가 대입에 실패해 재수를 하면서 한번 무너졌다. 재수할 때 진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온통 머릿속이 ‘연기를 잘하고 싶다’ 이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자고 딱 일어나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욕심이 되게 많았다. 이젠 내가 조금씩 성장하다보면 잘 하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 25세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인간관계에서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있나’ 이런 생각을 했을 때 그렇지 못하더라. 뭔가 ‘껍데기만 보고 이 사람들을 사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요즘 내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더 많은 걸 공유해야 되겠단 생각이 든다. 연기적으론 지금 당장 무대에서 보이는 게 관객들한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조성우 기자]

- 좌우명이 있나.

“좌우명이라고 할 건 딱히 없는데 좋아했던 한자성어가 있다. ‘백절불굴’이라고 중학교 때 되게 좋아했던 표현이다. 당시 어린 마음에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이 크게 와 닿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실패를 하든 다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깡다구가 지금도 있다.”

- 뮤지컬에도 도전할 계획인가.

“뮤지컬에 관심은 있지만 노래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김태오 형이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와, 진짜 어떻게 저렇게 잘하나’ 싶을 정도로 엄청 잘 해서 감탄했다. 나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학교에서도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난 연기를 열심히 해야 되겠단 생각을 했다.(웃음) 뮤지컬도 영화도 다 관심은 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 ‘어나더 컨트리’를 잘 마무리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이게 잘 끝났을 때 다른 걸 잘 할 수 있도록 계속 자기관리를 할 계획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언제든지 나가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놓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또 노래랑 무용을 다시 배워보려고 한다.”

박은희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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