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재계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과거는 묻어두고 한국 '대표 기업'끼리 뭉쳐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려는 행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달 이례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재계 1, 2위 그룹 간 미래차 합종연횡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기업 간 합종연횡이 두드러지는 점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두 살 터울의 두 사람은 평소에도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정 수석부회장이 삼성 사업장을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다. 일각에선 이른바 '전기차 배터리 회동'은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비즈니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양사는 모두 "당장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신규 전기차모델 배터리 공급, 합작사 설립 등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달 13일 충남 천안에서 만났다. 정 수석부회장은 향후 현대·기아차가 생산할 전기자동차(EV)에 삼성SDI 배터리를 쓸 수 있을지 등을 이 부회장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황성우 삼성 종기원장으로부터 1회 충전에 약 800㎞를 주행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브리핑받았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삼성과 현대차가 미래 자동차 분야인 전기차 배터리에서 협력 방안을 찾을지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HEV) 용도로 삼성SDI 배터리를 납품받지 않았다. 여기에는 삼성과 현대차가 국내 재계에서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라는 점도 있지만, 현대차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하고 삼성SDI는 주로 캔형(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술적인 이유도 있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국내에서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이 만든다.
삼성으로서는 배터리 외에도 하만의 전장사업이나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현대차와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다. 현대차 역시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삼성의 반도체나 5G네트워크 기술과 협력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아울러 두 부회장의 만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 정책으로 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3대 신성장 산업을 더 강력히 육성하겠다고 밝힌 지 사흘 만에 이뤄져 더 주목을 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사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국내 간판 기업이 전략적 동반자가 되는 첫걸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2025년까지 23종의 순수전기차와 21종의 하이브리드 전기차·수소차 등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모델에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가 계속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로 인해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기업간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의 정상회동은 업계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LG화학' 전통동맹 대신 '현대차-삼성SDI' 신(新)동맹이 떠오르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와 현대차의 협력관계가 가시화될 경우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시장점유율 판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올 1분기 기준 국내 3사인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탑재량의 37.5%를 차지한다. LG화학이 점유율 27.1%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삼성SDI(6.0%)는 4위, SK이노베이션(4.5%)은 7위다.
그간 국내 3사의 점유율 확대 경쟁은 주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이끌어왔다. 두 회사가 폭스바겐 북미 물량 수주전에서 경합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배터리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다만 이번 회동을 계기로 삼성SDI가 현대차를 새 고객으로 확보한다면 업계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SDI가 현대기아차 배터리 중 일부를 수주하게 된다면 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2025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목표치를 56만대로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기업 간 합종연횡이 두드러지는 점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한국 대기업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과거는 묻어두고 한국 ‘대표 기업’끼리 뭉쳐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확산되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와 지역 블록화 등의 영향으로 한국 기업 간 협업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삼성은 국내 기업을 대표할뿐더러 각각 완성차와 부품이 주력인 만큼 협력이 필요하다"며 "두 부회장이 만난 것도 과거보다는 향후 발전적인 관계로 거듭나기 위해 힘을 써보자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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