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 신화의 어두운 이면을 바라보며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주변 사람들에게 '유통 대표 기업'이 어디인지 물어보면 제법 많은 이들이 '쿠팡'이라고 답한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롯데, 신세계' 등 대기업의 이름이 먼저 나왔겠지만, 쿠팡은 짧은 시간 동안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는 쿠팡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거둔 성과다. 2014년 시작한 당일배송 서비스 '로켓배송'은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됐고, 기존 시장 강자들을 졸지에 '팔로워'의 위치로 추락시켰다. 또 배송을 타 업체에 위탁하는 다른 이커머스 업체와 달리 배송원을 직고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착한 기업'의 면모를 보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같은 내·외적 혁신 속 쿠팡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유통 공룡으로 자리잡았다. 2015년 1조1천억 원 대였던 매출은 지난 2018년 4조4천억 원대로 성장했고, 거래액은 9조 원에 달했다. 또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평일 주문량 300만 건을 돌파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단기간에 이룬 고속 성장 탓일까, 눈부신 성공 뒤의 그림자도 점점 짙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쿠팡의 이미지 구축에 일조한 쿠팡맨 조직이 쿠팡 신화의 어두운 이면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12일 40대 남성 신입 쿠팡맨 A 씨가 숨을 거뒀다. 그는 입사 4주차로 정규직이 되기 위한 '트레이닝' 과정중이었으며, 사인은 관상동맥의 4분의 3이 막혀 있는 데에 기인한 허혈성 심장질환이었다.

A씨의 죽음에 대해 쿠팡은 신입 쿠팡맨에게는 물량 50%만을 배정한다며 해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즉각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쿠팡맨은 "신입 쿠팡맨이 50%의 물량을 배정받는다 해도, 기준 물량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단순히 노동강도가 낮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실제 쿠팡 노조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1인당 일일배송 물량은 56.6개에서 210.4개로 3.7배 늘었다. A 씨가 숨을 거두기 직전인 지난 11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배송 물량이 296개에 달했다. 쿠팡의 말과 같이 절반만 배송한다 하더라도 하루 150개에 달하는 수치다.

노조는 이 같은 과한 배송량이 전제돼 있던 만큼, A 씨가 트레이닝 과정을 마치고 '개인의 역량'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당연히' 과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쿠팡은 2년이 지나면 94%의 쿠팡맨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강조하지만, 노조는 75%에 달하는 쿠팡맨이 늘어만 가는 격무를 이기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또 1년차 미만 퇴사율은 96%에 달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쿠팡이 강조한 '2년'이라는 기간을 무색하게 만드는 외침이다.

A 씨의 죽음, 이어진 노조의 기자회견은 쿠팡을 지금 이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인 쿠팡맨 조직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유지될 수 없을 만큼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지금까지와 같은 '최저인력·최대효율' 식의 인력 운영으로는 쿠팡 신화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경고등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쿠팡이 뒤늦게나마 모든 쿠팡맨을 대상으로 원격 건강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문 의료인력을 배치함과 함께 단체상해보험을 가입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만 이 조치가 쿠팡맨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아쉬운 마음도 든다.

쿠팡은 이번 조치에 이어 쿠팡맨의 노동 환경을 비롯한 인력 구조 전반에 대한 분석 및 개선을 이어가야 한다. A 씨 사건을 그 동안 앞만 보며 달려오느라 미처 살피지 못한 것들을 둘러보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홀로 올라선 왕좌보다 그들의 손에 의해 옹립된 왕좌, 그렇게 세워진 왕조가 더욱 가치 있고 오랜 시간 이어지기 마련일테니 말이다.

이현석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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