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항아리 깨뜨리기’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서울역을 조금 지나 숙대입구역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이색적인 빌딩이 하나 있다. 주위의 건물이 모두 반듯한 사각형인데, 이 건물은 외벽을 살짝 둥글게 처리해 눈길을 끈다. 지하 9층·지상 30층의 KDB생명타워로 여기에 KDB생명 본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빌딩 주인은 KB자산운용이다. KDB생명은 1층부터 14층까지를 임대해 쓰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루라도 빨리 ‘굿바이’하고 싶은데 이게 참 어렵다. “KDB생명 팔아요”하고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고, 그나마 들어온 몇몇 입질도 턱없이 낮은 가격을 부른다.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앉아있다. 이 회장은 KDB생명 매각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3월까지 매각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 [조성우 기자]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아시아나항공을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에 넘기며 굵직한 인수합병(M&A)를 잇따라 성사시킨 커리어에 흠집이 났다.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동부제철 등의 난제도 척척 해결하면서 ‘이동걸 매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체면을 구겼다. 세 번 실패 뒤 다시 네 번째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무게 중심이 매각불발로 기울어지고 있다. 속이 새까맣게 탄다.

산업은행은 2010년 칸서스자산운용과 함께 사모펀드(PEF)를 설립한 뒤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KDB생명(옛 금호생명)을 6500억원에 인수했다. 경영난에 빠진 금호그룹을 지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리고 유상증자(6000억원) 등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추가 투입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산은이 투입한 공적자금은 두 차례 유상증자를 포함해 8000억원이다”고 밝혔다.

매각이 지지부진한 것은 가격 때문이다. 산은은 6000억~8000억원 수준을 기대하고 있지만 최근 예비입찰에 참여한 PEF는 2000억원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갭차이가 엄청나다. 그렇다고 산은이 매각가를 더 낮추기는 쉽지 않다. 파트너인 칸서스에 펀드 투자금과 수익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가격이 투자 원금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시장가격의 두배 이상을 주겠다는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매각이 성사되기 어려운 구조다. 냉혹한 현실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KDB생명을 매각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국감에서 “애초에 인수하지 말았어야 할 회사다”라고 여과 없이 속내를 드러내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 회사가 많이 좋아졌다. 좋은 상품이 많다. 나도 암보험을 포함해 2개나 가입했다”고 공개석상에서 홍보하는 등 몸값 높이기에 앞장섰다.

구원투수도 영입했다. 지난해 초 보험 전문가인 정재욱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현장 감각이 떨어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 사장의 ‘혹독한 노력’ 덕에 뚜렷한 성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비율이 215.03%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108.48%보다 106.55%p나 상승했다. 구조조정에 더해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발행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한 자본확충의 결과였다. 또 지난해 64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깜짝 흑자 시현에 성공했다. 전년동기 761억원의 순손실을 봤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개선이다.

지난해 11월엔 백인균 부행장을 수석 부사장으로 보냈다. 백 부사장은 그동안 산은에서 기업 M&A, 투자금융, 사모펀드 등의 업무를 거친 금융 전문가로 사실상 매각 특명을 받은 것이다. 정재욱·백인균 콤비가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단장처럼 기막힌 승부사 기질로 미션을 수행하면 좋으련만 녹록지 않다.

급기야 인센티브 카드까지 꺼냈다. 매각에 성공하면 사장에게 최대 30억원, 수석부사장에게 최대 15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기업에서 이처럼 파격 금액을 내건 사례는 처음이다. 국책은행이 골칫거리 자회사를 팔기 위해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잇따를 것을 알면서도, 번번이 실패한 매각을 이번엔 기필코 성공시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 것이다.

지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산은이다. 가뜩이나 보험업황이 악화된 가운데 알짜매물인 푸르덴셜생명까지 새 주인을 찾고 있어 KDB생명은 완전히 뒤로 밀렸다. 이밖에 동양생명과 ABL 등도 잠재적 매물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KDB생명 매력도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설상가상 법률적 리스크까지 발생했다. 3월까지 매각을 완료하지 못하면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지주사가 아닌 PEF는 금융사를 최대 10년까지만 지배할 수 있고, 이를 어길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시한이 3월로 끝난다. 과징금을 정하는 금융 당국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PEF가 금융사를 10년 이상 지배한 전례가 없어서 과징금을 얼마나 부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파옹구우(破甕救友)’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옹기를 깨뜨려 친구를 구한다는 뜻으로, ‘자치통감’을 편찬한 송나라 정치가 겸 유학자 사마광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예전 중국에서는 가뭄에 대비해 마을마다 큰 항아리에 빗물을 받아 놓았다. 어느날 한 아이가 그 항아리에 빠져 목숨을 잃을 상황이 됐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당황해 허둥대고 있었다. 와장창! 이 때 어린 사마광이 큰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뜨렸다. 만약 깨뜨리지 않았다면 아이는 익사했을 것이다. 마을사람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을 과감히 깨뜨린 용기가 놀랍다.

이 회장은 지난달 시무식에서 “과거의 틀을 깨는 ‘파옹구우’의 지혜로 변화와 혁신을 완성하자”고 강조했다. 변화와 혁신에는 언제나 항아리를 깨뜨리는 희생이 따르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지혜를 발휘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KDB생명의 몸값을 시장가격에 맞출 수도 있다며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드러냈다. 유연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적혀있다고 하는데, 머뭇대다가 항아리를 깨뜨리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3월, 이 회장에겐 코로나19 뺨치는 고민이 시작된다.

/민병무 금융증권부 부국장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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