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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애경 1호 百' AK플라자 구로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명품 없고 인근 경쟁사 난립 등으로 '매출 부진'…애경 유통 사업 '흔들'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서울 서남권 대표 백화점이자, 애경그룹 1호 백화점이었던 'AK플라자 구로본점'이 오는 31일을 끝으로 26년만에 문을 닫는다.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배경지로도 유명했던 이곳은 인근에 롯데, 현대, 신세계 등 경쟁 백화점이 생긴 데다 온라인으로 소비 패턴이 변화하며 고객 이탈이 심해진 탓에 매출 악화가 이어져 결국 폐점하게 됐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 백화점 사업 매출 10%를 차지한 구로점의 작년 매출은 약 1천300억 원대로 전년보다 5% 가량 줄었다. 롯데 본점과 신세계 강남점이 1조8천억 원의 매출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오는 31일 문 닫는 AK플라자 구로본점 외관 전경 [사진=장유미 기자]
오는 31일 문 닫는 AK플라자 구로본점 외관 전경 [사진=장유미 기자]

구로점을 운영하고 있는 에이케이애스앤디도 2015년부터 3년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 회사는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과 특수관계자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3년간 손실액은 193억 원이다. 2016년에는 자본잠식에 빠지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50억 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AK플라자 관계자는 "구로점의 부진을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영업환경 악화로 더 이상 점포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폐점 후 고객 불편사항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26년 서남상권 지킨 구로점, 매출 부진에 결국 '폐점'

폐점을 앞둔 지난 27일 저녁 7시에 찾은 AK플라자 구로본점은 '굿바이 세일'을 노린 쇼핑객들이 몰린 일부 매장을 제외하곤 비교적 한산했다. 이벤트 매장이 몰려 있는 1층 로비에는 할인가에 상품을 구매하려는 이들로 북적였지만, 높은 층으로 올라 갈수록 손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장유미 기자]
[사진=장유미 기자]

여성복을 판매하는 2층부터 여성정장과 스포츠 의류가 있는 3층, 한층 위 남성복 매장도 손님 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손님이 없는 탓에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폐점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논의하거나,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매장은 직원들이 남아 있는 재고를 정리하는 데 집중한 탓에 고객 응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각 매장별로는 재고 물량을 할인가로 처분한 후 상품을 입고시키지 않은 탓에 매대가 텅텅 비어 있기도 했다. 1층에 위치한 일부 잡화 매장들은 재고 물량이 어지럽게 널려 있기도 했다.

화장품 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폐점이 결정되고 난 후 이달 초부터 재고 물량을 소진시키기 위해 할인가에 제품을 판매했다"며 "지금은 대부분의 제품이 판매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장이 이제 문을 닫게 되면서 일할 기회도 사라지게 됐다"며 "폐점 후에 어떻게 할 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매장 직원은 "이곳에서 10년 정도 근무를 했는데 폐점을 하게 돼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던 곳이어서 단골 손님들도 꽤 있었지만 이젠 다른 매장으로 옮겨가게 돼 아쉽다"고 밝혔다.

AK플라자 구로본점 내부에는 매대에 상품이 진열되지 않은 일부 매장들도 있었다.  [사진=장유미 기자]
AK플라자 구로본점 내부에는 매대에 상품이 진열되지 않은 일부 매장들도 있었다. [사진=장유미 기자]

이날 일부 쇼핑객들은 폐업을 앞두고 각 입점 브랜드들이 재고 처분을 위해 제품을 할인가에 판매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할인 폭이 크지 않아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인근 주민인 양 모씨(40세)는 "폐점 한다고 해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려고 왔지만 일부 매장을 빼고 할인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며 "'최대 50%'라고 쓰여 있었지만 재고 상품 할인율도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가을 신상품이 없는 곳도 많아 쇼핑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 입점된 브랜드 상품들이 대부분 다른 점포나 물류센터로 옮겨지기 때문에 굳이 할인해 판매할 이유가 없다"며 "매장 매니저들도 인근 지점으로 재배치되는 경우가 많아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고 밝혔다.

AK플라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폐점을 알린 후 본사 직원은 다른 점포로 재배치하기로 했고, 입점한 383개 브랜드에 소속된 직원들은 고용 상황이 제각각 달라 우리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며 "각 브랜드에서 순환 근무를 하고 있고, 사원들과 협의를 통해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니클로 AK플라자 구로점 안에는 폐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놓여져 있었다. [사진=장유미 기자]
유니클로 AK플라자 구로점 안에는 폐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놓여져 있었다. [사진=장유미 기자]

AK플라자 구로점은 부동산 투자회사인 유엠씨펨코리테일이 소유하고 있는 곳으로, 애경그룹은 지난 2009년 CR 리츠 '유엠씨펨코리테일 기업구조조정 부동산 투자회사'에 1천520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이후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유엠씨펨코리테일은 구로점 폐점 후 한 달 가량 이곳에서 패션업체 150곳의 할인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현재 이랜드리테일과 임대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 외에 패션쇼핑몰 운영사인 엔터식스도 임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랜드 관계자는 "건물 임대 방안을 두고 검토하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철회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아직까진 검토 중인 게 맞다"며 "논의 중인 단계인 만큼 명확하게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경쟁력 잃은 AK플라자…애경 유통 사업 '흔들'

애경그룹이 AK플라자 구로본점 운영을 포기하게 된 것은 전반적인 내수 침체와 유통업계 부진 영향이 컸다. 또 백화점들이 명품을 중심으로 고급화에 치중했던 반면, AK플라자는 명품 유치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실제로 AK플라자 전국 5개 백화점 중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등 명품이 입점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으며, 구로본점과 평택점은 명품 편집샵인 비아델루쏘만 있다. 수원점은 버버리·에트로·코치·마크제이콥스, 분당점에는 버버리·페라가모·에트로·코치가 입점해 있다. 원주점에는 명품이 없다.

AK플라자 구로본점 내부 전경 [사진=장유미 기자]
AK플라자 구로본점 내부 전경 [사진=장유미 기자]

이 탓에 AK플라자는 백화점 매출을 이끌고 있는 명품족 유치에 실패하며 실적 부진으로 이어져 업계 내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빅3'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전년 대비 0.6%p 늘어난 95.1%로 확대됐으나, AK플라자는 이번 구로본점 폐점으로 올해 2%대 후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업계선 전망했다.

이에 AK플라자는 구로본점 폐점을 통해 전체 손익구조와 효율을 개선하고, 나머지 점포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NSC형(지역친화형쇼핑센터) 쇼핑몰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지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AK플라자는 현재 AK& 홍대를 비롯해 AK& 기흥, AK& 세종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남권 상권 재공략을 위해 내년께 광명에도 쇼핑몰을 오픈할 예정이다. 2022년에는 안산점 개점도 계획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AK플라자가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서 대부분의 점포가 예전 만큼 매출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며 "AK평택점, AK원주점 매출은 전국 백화점 매장 중 꼴찌 수준이고, 대표 점포였던 AK분당점 역시 인근에 현대·롯데 등 경쟁업체가 신규 점포를 오픈하면서 올해 연매출 5천억 원 달성도 힘들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오픈한 지 1년이 된 AK& 홍대도 예상보다 매출이 저조해 입점 상인들과 마찰이 생긴 상태"라며 "그 동안 별다른 점포 환경 개선이나 혁신없이 구시대적인 경영을 지속한 것이 사업 확장에 발목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AK플라자 관계자는 "경기권을 중심으로 매장 확장을 계획하고 있고, 앞으로 점포 수를 늘려나가려고 한다"며 "2022년까지 8개 정도 NSC형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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