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 정부, 불화수소 수출조건 내세워 삼성전자 첨단공정 자료요구

제조 공정도·배치도 등 기밀자료 언급…전문가·업계 "받아들일 수 없어"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수출 조건을 내세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반도체 생산 공정상 민감한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 반도체 소재 등 3종(EUV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개시한 바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3종 중 유독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해서는 수출 규제를 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첨단공정 자료를 요구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26일 반도체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일본 불화수소업체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순도 99.999% 이상 불화수소를 사용하는 반도체 공정의 상세기술 도표는 물론 배관, 설비 배치도 등 첨단 공정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 핵심적인 보안사항인데 이것을 자국 불화수소 생산업체들에게 요구한 것이어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日 "불화수소 허가 삼성·하이닉스 공정도·배치도 있어야"

실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의 일본 정부 수출규제 안내문 번역본을 살펴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고순도 불화수소 관련 개별허가 신청 업체들에게 화물 수요자의 당해 화물 조달실적 및 최종 제품의 생산상황에 관한 자료를 워드나 PDF 파일 등의 형태로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화물을 사용하는 공장의 최종 제품 제조공정에 관한 자료도 요구했다. 이같은 제출 서류들은 수출규제 소재 3종 중 EUV 포토레지스트와 불화 폴리이미드에는 없는 제출자료 목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부터 한국에 수출되는 이들 품목에 대해 종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체제로 전환했다. 독특한 점은 이 개별허가를 얻기 위한 조건이 전략물자 수출우대국(백색국가)가 아닌 제3국에 대한 기존 개별허가들과도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 전략물자 수출규제 관리체계 [자료=전략물자관리원]

기존 개별허가를 얻기 위해선 신청서, 사유서, 계약서 등 3종의 서류가 요구되지만 현재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소재 3종에 대해선 제품의 구체적 사양과 카탈로그를 포함, 최소 7종 이상의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이 국내 반도체 및 소재 업체들을 지칭하는 '수요자'에 대한 사항이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에칭(식각)가스'라는 별칭답게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식각' 공정에 사용된다. 불화수소 자체는 반도체 제조공정 특히 불순물 제거를 위한 세정 작업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그 중에서도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일부 공정에서만 활용된다. 반도체 완성품의 품질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소재 3종에 대해 일본 정부가 수요자와 관련해 요구하는 자료 내용은 공통적으로 수요자의 사업내용과 확인서류, 전략물자 수출과 관련된 서약서 등이다. 구체적 서류제출 목록은 등기부, 회사안내 공표자료, 조달실적, 과거 3년간 최종제품 생산현황 등 당장 기업 입장에선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유독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제조공정에 관한 자료들을 요구하고 있다. 전략물자관리원이 번역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안내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업체들에게 "플랜트의 최종제품 제조 플로우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제조공정을 나타낸 블록 다이어그램(도표), 제조공정도 설명서 등이다.

여기에 덧붙여 "블록 다이어그램 등 그림으로 나타내는 경우 해당 화물을 사용하는 곳 및 해당 화물의 수량을 알 수 있도록 주석을 붙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해당 화물의 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자료"를 제출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세부적인 예로 배관 계통도, 배치도 등을 들고 있는데 고순도 불화수소 사용 공정의 상세정보를 넘겨달라는 것과 다름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장석인 선임연구원은 "고순도 불화수소는 EUV포토레지스트보다 전공정(반도체 회로제작 공정) 여러 분야에 사용된다"며 "삼성의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등 핵심 공정의 모든 기술내용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수출허가는 물론 거래계약에서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수출규제 버튼은 일본 정부가 누르는 상황인 만큼 실제로 요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일본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실제 공정 또는 설비상의 자료를 요구받은 바는 없다"고 부인했다.

일본 전략물자 수출규제 관리체계 [자료=전략물자관리원]

◆"日 기업들이 우회수출로 더 열심"

이번 수출규제 대상 중 불화 폴리이미드의 경우 디스플레이에서도 폴더블폰용으로 사용된다. 올해 연말까지 국내 업체들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느끼는 타격이 크지 않다 보니 EUV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2종이 이번 수출규제의 핵심 대상이다.

일본 정부는 이달 들어 EUV 포토레지스트에 관한 수출허가를 2건 내줬다.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해선 아직까지 수출허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고순도 불화수소 업체들에 대한 수요자 자료요구 내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수출규제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은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이다. 모리타화학, 스텔라케미파, 쇼화덴코 등 일본 정밀화학 업체들이다. 이들이 수출허가를 얻기 위해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고객사의 민감한 자료들을 일본 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자료를 넘겨주기도 어려운 데다 일본 기업들 입장에선 고객사와의 신뢰 훼손 문제도 발생한다.

일본 수출규제 관련 업체들 가운데 고순도 불화수소 업체들이 일본 정부의 수출심사를 피하는 우회수출로 확보에 적극적인 점도 이 때문일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모리타화학의 경우 중국 상하이 현지 시설을 통한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텔라케미파도 중국, 싱가포르 등 생산시설을 활용해 한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쇼와덴코의 경우 삼성전자 중국법인에 대한 수출허가를 이달 초 얻은 바 있다. 이번 한국에 대한 개별허가 심사는 최종 기착지가 기준이다. 최종 사용처가 한국 소재 생산공장인 경우다. 일본 정부가 일본 외 지역에서 생산하거나 한국계 기업의 중국 등 해외공장에 수출하는 우회수출 문제에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고순도 불화수소는 보관기간이 4개월 정도로 수출규제 이후 이미 2개월가량이 지났다"며 "기한 내 팔지 못하면 손실이 커지다 보니 일본 기업들이 우회 수출로를 찾는 데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선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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