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들도 "게임 질병코드 반대" 한목소리

[아이뉴스24 문영수 기자]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다. 게임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한다."

현업에 종사하는 게임 개발자들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등록을 규탄하고 국내 도입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번 질병코드 부여가 생존권을 위협하는 위기라고 본 개발자들이 몸소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협회장 정석희)·한국인디게임협회(협회장 최훈)·넥슨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지회장 배수찬)·스마일게이트노동조합 SG길드(지회장 차상준)·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회장 전명진)과 개발자 출신 유튜버 김성회씨(이하 게임 개발자)는 28일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서 WHO의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질병코드 부여 확정 및 보건복지부의 국내 도입을 반대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게임 개발자들은 성명서에서 "국내 게임산업이 태동한 후 지난 30여년간 우리 게임 제작자들은 '게임은 아이들의 놀이'라고 치부해왔던 척박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문화 산업의 신 개척자라는 사명감과 문화 콘텐츠 수출 분야에서도 1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 및 제작해왔으며,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게임 제작 기술 보유 국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몇 해 전 게임을 마약·술·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포함시키고 그 가치를 폄하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막아내며 굳건히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의 지위를 지켜왔으나 게임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치명적인 중독 물질로 치부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기에 아래와 같이 선언을 발표하여 게임의 가치를 지켜 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은 대중과 함께 숨쉬는 콘텐츠 ▲게임은 창의적인 콘텐츠 ▲게임은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콘텐츠 ▲게임은 예술적 가치를 포함하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게임은 전체 국민의 70%가 이용하고 있는 건전한 국민 대중 문화이자 국민 놀이 문화로, 국민 다수가 즐기는 게임과 게임을 행할 자유를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게임은 이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만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 과정을 통해 창의력이 배양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콘텐츠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또 플레이 중 주도적 학습의 과정을 스스로 터득하고 학습 과정을 통해 재미를 느끼게 되며, 새로운 학습 체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적극적으로 배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의 예술적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게임은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사실적, 초사실적, 은유적, 낭만적 표현의 자유가 극대화된 예술적 가치를 포함하고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기술적 기반 위해 문학, 미술, 음악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융복합 콘텐츠라는 것이다.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조차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언론 및 방송에서 게임 중독 대신 '게임 과몰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성명문은 "지금의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의 놀이터는 어른들이 뛰어 놀았던 운동장과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 만이 아니며, 무한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발전하면, 살아가는 환경과 문화,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게임에 지나치게 과몰입되어 있다면 그것은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과몰입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 그래서 사회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환경의 문제"라며 "우리는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나쁜 게임이 아닌, 있어서는 안 되는 나쁜 환경을 해결하는데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성애도 질병코드 등재됐다 삭제…"잠재적 중독 환자 치부 말아야"

게임 개발자들은 과거 WHO의 ICD-10가 동성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한 후 세계적인 사회 논란과 비판이 뒤따르자 수정판에서 삭제된 바 있는 점을 지적했다.

게임에 과몰입된 청소년 2천명을 5년간 연구 관찰한 결과 98.5%의 아이들이 별도의 치료나 상담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는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마약, 알코올과 같은 중독 물질은 자연 치료가 되지 않기에 반드시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지만 게임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또 타 중독물질과 달리 이번 ICD-11에 등재된 게임 이용 장애는 WHO의 아홉 가지 진단 기준 중 다섯 가지가 삭제돼 있으며, 애매모호한 네 가지 기준만 진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언급도 이어졌다. 삭제된 다섯 가지의 진단 기준에는 중독의 필수 증상인 내성과 금단 현상이 포함돼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화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

게임 개발자들은 "복건복지부와 한국정신의학계는 세계의 석학이 경고한 바 있는 학술적 검증과 연구가 부족한 중독 진단 기준을 앞세워 수백만명의 건강한 여가 문화와 놀이를 즐기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잠재적 중독 환자로 치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임은 다양한 플랫폼과 다양한 장르에 따라 이용자 특성, 게임 이용 형태가 다르고 몰입 방법이 다르다. 이것은 마치 불량 식품 몇개의 사례를 들어 음식 자체가 나쁘다는 일반화의 오류 논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며 "보건복지부 및 정신의학계는 본인들의 이해타산과 의학적 견해 이외에 산업적, 사회과학적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전에 자신들이 가진 게임에 대한 선입견과 몰이해부터 우선 깨우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WHO는 지난 25일(현지 시간) 오전 스위스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에 질병코드(6C51)를 부여한 국제질병분류 개정안(ICD-11)을 통과시켰다. ICD-11은 오는 2022년부터 국내를 포함한 각 회원국에 권고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