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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정부의 HW 중심 사고, 의료정보화 가로막는다


 

의료 정보화를 통해 국민의 복지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의료용구(기기)를 규제하는 낡은 법제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료용구를 허가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시대에 뒤떨어진 마인드는 관련 산업을 죽이는 것은 물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서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서울 행정법원이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를 둘러싼 소송에서 식약청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PACS의 하드웨어(HW) 속성을 고집하는 식약청의 인식은 신기술을 앞장서서 수용하지 못하는 '관료 마인드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약사법' 외에도 오는 5월부터 시행되는 '의료기기법' 역시 현실에 맞지 않는 만큼, 원격의료와 사이버 의료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의료정보법'을 제정해서 하루 속히 제도의 불합리성을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PACS 허가제도, SW 심사제로 바뀌어야

식약청의 의료용구(기기) 허가 제도에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 때문.

식약청은 PACS에서 영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HW와 SW를 일체형으로 보고 제조시험을 거쳐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식약청 의료기기과 관계자는 "SW만으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느냐"며 "SW와 HW를 일체로 취급해야 PACS에 대한 품질 인증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국민 건강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HW가 변할 때마다 PACS 제품은 새로운 품목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에 따라 식약청은 이를 제대로 안 지킨 PACS 제조업체들에 과징금(2천500만원)과 제조정지(3개월)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PACS업계와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 IT 분야 전문가들은 "PACS의 핵심 기능은 SW이기 때문에 식약청도 미국 등 다른나라처럼 SW만 심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PACS는 범용의 HW(서버, 스토리지 등)에 특수 기능의 SW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서버 종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경우 HW 사용시 최소한의 요구조건만 명시하고(예컨대 486 이상, 또는 펜티엄 2급 이상 등) SW에 대해서만 사전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SW의 독자성을 인정할 줄 모르고, SW를 단지 'HW의 부속물'로 간주하는 후진적 인식에서 아직도 벗어날 줄 모른다. HW 중심적 규제에서는 PACS 제조업체가 개별 HW별로 품목허가를 받아야 범법자가 되지 않는다.

KISDI의 주지홍 박사는 "식약청은 엑스레이 판독기 시절의 HW 중심적인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바꿔 원격의료나 사이버의료 시대에 적합한 허가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 FDA의 PACS에 대한 가이드라인처럼 '인체에 대한 위험성 정도'에 따라 등급을 분류하고, 원격의료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SW만 떼내 별도의 의료용구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지홍 박사는 "식약청의 논리는 방사선 촬영기에 관련 SW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는 PACS 같은 원격의료 시스템의 경우 범용 HW와 SW는 다수를 차지하고 의료용 전문 SW는 일부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PACS의 영상 품질은 현재 기술 수준이 높아져 별도로 허가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도 초기에 이런 혼란이 존재해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특수 HW가 들어가는 대형 병원이 아니면 SW와 HW를 분리해 허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현행법 인정

전문가들의 시각과 달리 5일 서울행정법원은 식약청의 손을 들어줬다.

5개 제조업체가 식약청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처분취소청구소송'에 대해 "원구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선고한 것.

법원의 판결은 현행 법에서 PACS 제조업체가 위법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것이지만, 실제 효과는 HW와 SW를 하나로 심사하는 허가제도를 인정해준 셈이다.

주지홍 박사는 "법원의 판결은 현행법상 위법여부만 가린 것일 뿐, 법제도의 파급효과는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는 또 "결국 식약청의 규제태도(범용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까지 포함한 PACS 시스템 전체에 대해 하나의 품목허가를 요구)를 법원이 용인한 결과여서 의료정보화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정보법 제정이 필요하다

병원에서 사용되는 기기는 국민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약사법에 '의료용구' 지정 항목을 둬서 이를 관리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약사법에서 관련 규정을 삭제하고, 대신 '의료기기법'을 제정해서 의료기기 허가제도를 만들었다.

새로운 '의료기기법'은 오는 5월부터 시행될 예정. 식약청은 시행령 및 규칙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의료기기법'도 의료정보화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당초 이원형 의원의 발의안에는 '의료기기를 정의하면서 사람 또는 동물에게 단독 또는 조합해서 사용되는 기구·기계·장치·재료 또는 이들의 운용에 필요한 SW'라고 돼 있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조문은 '기구·기계·장치·재료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으로 바뀌었다.

발의 당시에는 SW 단독으로도 의료기기가 될 수 있었지만, 반대 의견이 나와 결국 빠져버린 것이다.

주지홍 박사는 "개정된 의료기기법에서 '이와 유사한 제품'이란 의미를 SW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의료기기의 제조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청의 마인드가 그렇지 않아 SW 단독 허가는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원격 의료 서비스에 있어 통신사나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도 의료기기법의 범법자가 될 우려가 크다"며 " 의료정보화의 현실을 반영할 의료정보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현아 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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