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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업계, '사이트 라이선스' 때문에 골병


"팔수록 손해"…싸게 사는 수단으로 악용

[김국배기자] #1. 소프트웨어(SW) 회사인 A사는 고객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서버 대수가 늘어났으니 SW를 추가로 설치해 달라는 요구였다. 물론 사이트 라이선스를 보유한 고객사는 별도의 SW 구매 비용을 내진 않았다. 문제는 A사가 요구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한 인력에 대한 인건비나 지방 출장비 등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2. SW 업체 B사는 한 고객사와 사이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고객사는 최초 100대의 서버에 SW를 설치해 운영했으나 점점 늘어 지금은 200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B사는 100대 사용 당시와 같은 비용으로 200대에 대한 기술지원과 유지보수를 제공 중이다.

SW 기업들이 ‘사이트 라이선스’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이트 라이선스(전사 라이선스)가 SW를 싸게 구매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수익에 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트 라이선스란 PC 수나 사용자 수를 정하지 않고 해당 특정장소 내에서 SW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말한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W 기업들이 사이트 라이선스에 따른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기업·기관들의 불공정한 구매 행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에서도 제안요청서(RFP)에 사이트 라이선스를 명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SW 업계 한 관계자는 "사이트 라이선스는 팔수록 적자가 나는 일"이라며 "먹고 살기 급급한 SW 회사들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고객사의 사이트 라이선스 요구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RFP에도 사이트 라이선스 버젓이…

실제로 공공 기관의 사이트 라이선스 요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월 초 입찰이 완료된 서울특별시(데이터센터)의 '2013년도 정보서비스 종합관리시스템 구축' 사업 제안요청서에는 '제공되는 솔루션은 에이전트(Agent)와 관리 SW에 대해 센터 내 모든 장비에 대한 영구적 라이선스(Permanent Site License)를 필수로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내용을 보면 데이터센터 내 운영되는 모든 서비스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리에 대한 라이선스 제한이 없어야 하며 구간별 사이트 라이선스도 필수로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구간별 사이트 라이선스는 주기적인 갱신이 필요 없으며 특정 장소 URL 점검 수량에 무제한 라이선스 정책을 적용한다.

지난달 25일 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디도스 대응시스템 운영의 안성 확보를 위한 네트워크 관리시스템 구매' 사업 제안요청서에서도 네트워크관리시스템(NMS) 제품에 대해 관리 대상 수량을 명시하지 않고 1식으로만 표시했다. 업계에서 1식은 사이트 라이선스의 다른 표현으로도 해석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8월 입찰 완료된 안전행정부의 '정부 통합 의사 소통시스템 구축' 사업에서도 통합 커뮤니케이션(UC) 메신저에 사이트 라이선스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업계 다른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공문서인 RFP에 버젓이 사이트 라이선스를 명기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SW에 대한 마인드가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식의 요구가 드문데 모범이 돼야 할 공공기관이 이렇다면 무엇을 더 기대하겠나"라고 말했다.

◆사이트 라이선스, SW 헐값에 넘기는 꼴

사이트 라이선스로 인해 SW 회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사이트 라이선스를 보유한 고객사가 서버나 PC 등의 시스템 확장에 따라 SW 추가 설치를 요구하면서 파생 비용은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다.

SW업계 한 관계자는 "많은 경우 업체에 연락해 추가 설치를 요구하지만 이 때 투입되는 인건비 등을 지불하는 고객은 없다"고 말했다. SW 회사가 해당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유지 보수에 대한 부분이다. 사용하는 SW의 수는 늘어나지만 유지보수 비용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더 많은 사용자가 생기는 만큼 유지보수 이슈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게 되니 업체에도 손해가 된다"고 말했다. 투입되는 자원은 늘지만 대가는 최초 도입 당시와 달라지는 않는 것이다.

반면 구매하는 기관이나 기업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초기 라이선스 구매 비용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유지보수 비용마저 그만큼 줄일 수 있어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PC 구매를 예로 들면 10대의 PC를 사 100대를 공급 받고 비용은 10대 값만 내는 대신 100대에 대해 모두 유지 보수를 해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특정 프로젝트용으로 SW를 납품할 경우 해당 프로젝트의 사용자 수를 따져 납품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를 사이트 라이선스로 달라는 건 프로젝트 구출을 빌미로 SW를 무제한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결국은 SW를 받아야 할 가격의 10분의 1, 100분의 1만 받고 파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김국배기자 verme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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