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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R&D, 빛과 그림자-상]원대한 꿈, 초라한 현실


글로벌 IT기업 R&D센터들의 활동이 기대를 밑돌면서 '동북아 IT R&D 허브'라는 원대한 구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좀 더 효율적인 R&D센터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아이뉴스24는 '글로벌 R&D, 빛과 그림자'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R&D 유치 정책의 문제점과 현황, 그리고 대안을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동북아 IT R&D 허브'라는 원대한 꿈이 흔들리고 있다.

정통부가 IT839 정책의 하나로 글로벌 IT 기업들의 R&D센터를 유치해 한국을 '동북아 IT R&D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매년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R&D센터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R&D센터들은 대부분 기초 연구보다는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또 한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보다는 국내 수요가 큰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R&D센터 유치 전략이 '실패작'으로 끝났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글로벌 R&D센터를 유치할 때 좀 더 정교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란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수적 팽창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이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하는 목적과 우리가 글로벌 R&D센터 유치로 얻고자 하는 것들의 '교집합'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과 글로벌 기업의 '동상이몽'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R&D센터의 면면들도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R&D센터들은 대부분 전기·전자, 기계, 자동차, 화학 등 한국 내 수요가 큰 사업 분야에 집중돼 있다.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부품, 소재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R&D센터 설립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진출한 글로벌 R&D센터 가운데 IT분야는 3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기계·화학·재료·섬유 기업의 R&D센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파급효과가 큰 IT분야 글로벌 R&D센터 유치를 위해 힘써왔던 정통부의 생각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편이다.

우리 정부는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 능력과 선진기술 등을 흡수할 수 있는 IT, 소프트웨어(SW) 분야 R&D센터 유치를 희망해왔다. 또한 이렇게 진출한 글로벌 IT 기업의 R&D센터가 국내 솔루션기업, 대학 등과 지식을 교류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의 괴리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R&D센터 유치 전략 자체가 잘못 실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해외 R&D센터를 설립하며 얻기를 원하는 연구인력, 국가 지원 등의 자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유치에만 급급했다는 얘기가 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해 있는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을 R&D센터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가운데 10%는 "한국에 투자해 기술적으로 얻을 것이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 없는 연구개발센터

이처럼 정부와 글로벌 IT기업들이 '동상이몽'을 거듭하면서 국내에 설립된 글로벌 R&D센터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국내에 진출한 IT 글로벌 R&D센터가 '연구'보다는 '개발'에 치중하거나 본사의 제품을 현지화하는 작업에 집중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R&D센터들의 규모 역시 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R&D센터의 평균 연구원 수는 35명이며 R&D센터 활동 가운데 기초연구의 비중은 1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부가 야심차게 유치해 온 글로벌 SW 기업들의 R&D센터 중에는 심지어 해외 연구개발 인력이 단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R&D센터를 기술을 이전하고 활발한 연구활동을 진행하는 곳이 아닌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마케팅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목적은 글로벌 R&D센터들이 대학 등과 활발한 교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R&D센터들은 대학, 협회, 정부보다는 자신들의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부 글로벌 R&D센터는 '극비사항'을 이유로 국내에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조차 밝히지 않기도 한다. 한 글로벌 R&D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서 진행하는 연구개발 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진출한 글로벌 R&D센터의 실적은 고사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곳이 많다는 얘기다.

IBM 코리아 SW 솔루션랩 남정태 연구소장은 "글로벌 R&D센터는 무엇보다 창조적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영업이나 기술지원 수준의 일을 하고 있어 비난을 받는 R&D센터도 꽤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내준 '동북아 IT R&D 허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동북아 IT R&D허브'는 '잊혀진 꿈'으로 전락하고 있다. 글로벌 R&D센터들이 한국을 연구개발 대상국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새롭게 '동북아 IT R&D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것.

실제로 글로벌 IT 기업들은 중국의 연구인력과 자원을 활용, 글로벌 시장에 적합한 기술과 솔루션을 개발하겠다는 목적으로 앞다퉈 R&D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중국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R&D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심지로 떠올랐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이 현지에서 R&D 직접투자를 수행하는 비율은 미국이 58.8%로 가장 높고 중국은 35.5%로 4위에 랭크돼 있다. 그만큼 중국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에 대한 R&D 투자율은 4.4%에 불과하다.

한국이 그동안 "휼륭한 IT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글로벌 IT 기업들은 중국의 연구개발 인력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중국의 시장 규모 자체도 글로벌 R&D센터가 진출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풍부한 연구개발 인력이 중국이 '동북아 IT R&D 허브'로 떠오르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SW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중국에 새 R&D센터를 만들고 800여 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한 후 향후 3~5년 동안 3천여 명의 연구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에 진출한 IT 글로벌 R&D센터의 평균 연구원이 30여 명 수준에 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변화의 조짐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인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적은 숫자이긴 하나 지난 2005년부터 2006년 사이 IBM, 오라클, BEA시스템즈 등 세계적인 SW 기업들이 국내에 새롭게 R&D센터를 개소했다.

이미 중국을 동북아 R&D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이 기업들이 한국을 새롭게 R&D 투자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글로벌 R&D 유치 사업에 아직 희망이 남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함정선기자 min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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