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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모든 걸 다 바꿔"...안철수연구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타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

'현금 보유액 600억원', '2003년 대한민국 최고 SW기업',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벤처 CEO' 등 화려한 수식어로 중무장한 안연구소가 요즘 'SW기업다움'을 부르짖고 있다.

지난해 거둬들인 영업이익이 50억원을 넘었고, 순수 개발인력도 100명이나 되는 안연구소가 외치는 'SW기업다움'은 일회성 구호가 아니다. 내부 개혁을 포함한 강력한 '프로세스 이노베이션(PI)'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갖출 것 다 갖춘듯 보이는 안연구소가 창립 9주년이 지나서야 'SW기업다움'을 외치는 이유는? '변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면 국내서는 그럭저럭 '스타 대접' 받으며 먹고살수 있을 지 몰라도, 세계 시장에서는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뻔한 얘기처럼 들리는 이같은 위기감은 지금, 안연구소의 기업 문화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강력한 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모든 걸 다바꿔'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처럼 사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개발 프로세스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 파워를 갖추는 작업이 한창이다. 시스템 파워는 우수한 인재와의 환상적인 결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느새 한국 SW산업의 맏형이 되버린 안연구소. 이 회사가 지금 추진중인 변화와 도전은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하자는게 아니다. 단지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일해보자는 것이다. 그걸 바탕으로 SW기업다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경쟁력을 키워보자는 것이다.

◆ 인재를 확보하라

안연구소는 지난 4월 연구개발 부문 인력 10여명을 새로 채용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안연구소는 '글로벌 보안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것'이란 거창한 명분까지 달았다.

당시 안연구소가 채용하고자 했던 인력 가운데는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키텍트와 품질관리 전문가도 포함됐다.

아키텍트는 소프트웨어의 기본 구조를 설계하고 필요한 기술을 선정하는 등 SW 개발의 총사령관 역할을 맡는 설계 전문가. 품질관리 전문가란 말 그대로 SW의 품질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제대로 된 SW 개발업체라면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인력들.

한국을 대표하는 SW업체 안연구소가 이제 와서 연구개발의 핵심인 아키텍트와 품질관리 전문가를 뽑겠다고 나선 것은 역설적이다. 결국 안연구소 역시 그동안 주먹구구식 개발의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안연구소는 왜 이제서야 전문가 영입에 나선 것일까? 원인은 참담한(?) 실패를 통한 깨달음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안연구소는 지난 2001년 '탈 백신'을 선언하고 네트워크 보안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동시에 일본시장 공략에도 나선 바 있다.

당시 안철수 사장은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낙관하며 네트워크 보안 시장에서도 최소한 1개 분야에서는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안 사장 생각과는 반대였다. 일본시장의 성적표는 초라했고, 네트워크 보안 사업에서도 내세울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네트워크 보안 제품은 개발은 했지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고, 일본시장에서는 품질관리의 미비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안연구소 내부에서 상황을 지켜봤던 한 관계자가 털어놓은 원인 분석이다.

안연구소는 지금도 네트워크 보안 사업을 준비중이며, 일본과 중국 시장 공략에도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단, 과거의 과거의 방식으로 재도전할 경우 또 다시 패배의 쓴잔을 마실 것은 분명할 터.

국내 백신시장에서는 60%의 점유율로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섰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은 1%도 안되는 '마이너 업체'인게 안연구소의 현주소. 글로벌 표준없이 국제 무대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발상일 수 있다.

안연구소가 뒤늦게 나마 아키텍트와 품질관리 전문가 등 '고수'들 확보에 나선 것은 이같은 상황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단일 제품인 백신을 개발하는데도 아키텍트가 필수적인데, 네트워크 보안을 하겠다면서 아키텍트 없이 가능하겠는가.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보안 제품간 연동은 결국 아키텍트가 담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수 있다."

아키텍트 영입에 대한 안철수 사장의 말이다. 아키텍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사장 스스로가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가혹한(?) 품질관리 시스템 도입

안연구소는 지난해 '엔지니어링 프로세스 이노베이션(EPI)'이란 조직을 신설하고, 15명의 인력을 전담 배치했다. 최근에는 EPI실을 총괄할 전문가로 '대한민국엔 SW가 없다'의 저자이자 SW 컨설턴트인 김익환씨를 최고연구원으로 영입했다.

김익환 최고연구원은 프로세스에 의한 체계적인 개발을 강조하는 인물로 안연구소에서 자신의 지론을 실무에 적용하게 된다.

안연구소가 품질보증제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말부터. 김익환 최고연구원의 영입은 품질보증제가 좀 더 정교하게 운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품질보증제는 'A부터 Z까지 모든 프로세서를 만족시켰을 때에만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소한 버그라도 그냥 내보낼 수 없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품질보증제 아래에서 안연구소 개발자들은 목표로 했던 산출물이 나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안되면 계속 쳇바뀌 돌 듯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모든 개발과정마다 개발자와 품질관리 담당자가 함께 일을 한다. 특정 단계에 투입되는 인력이 10명이면 그 중에 5명은 품질관리를 담당한다고 한다.

결국 품질보증제는 손으로 뚝딱뚝딱 만드는 수공업이 아니라, 기계화된 대량 생산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없이 개발하던 과거와는 180도 다른 성격이다. 이런 이유로 기존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안연구소 개발자들은 품질보증제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품질보증제하에서 탄생한 첫번째 작품이 클라이언트 보안 솔루션 'V3프로2004'. 이 때문에 내부에서는 남다른 애정과 기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안연구소 설명이다.

◆"전문가도 임원될수 있다"...안철수 사장

우리나라 SW업체 가운데 100명이 넘는 '거대한' 개발조직을 거느린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개발자들을 관리하는 인사 제도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안철수 사장은 요즘 '인사가 만사'라는 표현을 수시로 사용한다.

개발자들이 제대로 일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관리하는 프로세스만 갖춘다면 제품 경쟁력은 저절로 올라간다는 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문가가 전문성을 살릴수 있는 기업문화가 없다. 때가 되면 전문가들도 관리자가 돼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것이란 고정관념이 강하다. 결국 외부 시선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관리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 개발자가 전문성을 살리면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안돼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안 사장의 발언이다.

그는 "외국에는 흰머리를 휘날리는 전문 개발자들이 많다"며 "안연구소에서는 전문 개발자가 관리업무를 하지 않아도 임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교한 보상 시스템도 안 사장이 강조하는 대목. SW업체 특성상, 철저한 관리가 부족하면 어떤 개발자가 열심히 일했는지를 제대로 측정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안 사장은 "철저한 인사 평가 제도없이 돌아가는 프로세스는 부실해 질 수 밖에 없다"며 "안연구소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인사 관리를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그러나 인재를 영입하고, 제대로된 보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스타 플레이어'를 키우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모든 직원들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 인사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세계 10대 보안 업체로 도약

사세 확장보다는 과감한 내부 개혁으로 변신을 추진중인 안연구소의 시선은 지금, 세계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내부 체질개선을 발판으로 전체 보안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보안 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구체적인 목표는 3년내 중국 시장에서 3대 백신 업체 도약, 그리고 2010년 세계 보안시장에서 10위권 진입. 앞으로 3년안에 매출도 1천억원을 돌파한다는 목표도 세워놨다.

물론 지금 진행중인 내부 개혁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

이런 이유로, 안철수 사장은 수시로 전직원을 상대로 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지금 안연구소의 변화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려섞인 시선도 엿보인다. 철저한 프로세스와 인사관리가 벤처 기업의 핵심 가치인 '열정과 창의성'을 죽이는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열정과 창의성 없는 프로세스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안연구소는 과연 열정과 창의성을 유지하면서 프로세스 혁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안연구소가 새로운 심판대에 올랐다.

황치규기자 de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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