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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SW, 과연 대안인가 - 상] 공개SW, 절망 속에 꺼낸 카드


 

"플랫폼에 도전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국내 업체들은 플랫폼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산다. 슬프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SW 생태계를 지배하는 핵심 '이데올로기'다. 이른바 '응용SW 중심주의'다.

운영체제(OS)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등 플랫폼은 이미 시장을 장악한 외국 업체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국내 업체는 응용SW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이같은 논리는 현실론을 등에 업고 한국SW시장에서 이미 '대세론'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IT업계 종사자 대부분이"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며 '응용SW 중심주의'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벗어나면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란 평가가 내려진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냉혹한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IT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SW플랫폼은 한국이 감히 넘봐서는 안되는 '성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응용SW 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SW 생태계는 과연 건전한가.

결과만 놓고 보면 응용SW 중심의 한국SW산업은 지금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다.

'한국에서 SW산업은 성공할 수 없다'식의 극단적인 발언이 나오는게 한국SW산업의 현주소이자 슬픈 자화상이다. 관련 제도의 미비와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이같은 '참극'을 불러온 '주범'임은 분명할 터.

그러나 진입 장벽이 높은 SW플랫폼 분야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 등 외국 기업에 다 내주고 국내 업체들은 진입 장벽이 낮은 응용SW 시장에 대거 집중된 상황도 '참극'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마이너로 가득찬 한국 SW 생태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따르면 2003년 4월 현재 회원사는 1천200개다. 회원사는 아니지만 SW사업자로 신고된 기업은 2002년 기준으로 5천400여개에 이른다.

시장 규모도 매년 30%대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 SW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SW 시장 규모는 약 18조원.

이같은 양적 팽창은 물론 응용SW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응용SW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SW산업을 속을 들여다 보면 겉보기와는 180도 다르다.

세계 시장의 1% 밖에 안되는 시장을 놓고 5천개가 넘는 업체들이 아옹다옹하는 아귀 다툼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연매출 300억원이 넘는 기업도 핸디소프트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나머지 업체들은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산다. 이마저도 안되는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결국 한국 SW산업 역사에서 응용SW 중심주의는 고만고만한 마이너들만을 대거 양산해 온 셈이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 등 플랫폼을 지배하는 거인들은 국내 업체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응용SW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SW산업을 기반으로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꾸준히 강화해 온 것.

이들은 이미 지금 수많은 응용SW 업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한국 SW 생태계에서 권력의 핵심을 장악한 상황이다.

소수로 구성된 SW플랫폼 업체들의 행보는 수많은 응용SW 업체들의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SW플랫폼 업체 제품을 지원하지 않으면 SW 생태계로부터 곧바로 퇴출 명령을 받게 된다. 수적으로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는 SW플랫폼 업체가 우위를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소수의 플랫폼 업체와 5천개가 넘는 국내 SW업체간 네트워크는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상하 관계가 분명한 수직 관계에 가깝다. 한국 SW 생태계의 본질은 이렇게 표현된다.

한 외국 리눅스 업체 관계자는 "과거 국내 솔루션 업체에 근무할 때는 SI업체 실무자도 만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IBM 등 대기업 임원들이 직접 찾아올 정도"라고 말한다.

모 서버 업체 담당자도 "솔직이 우리 유닉스를 지원하는 응용SW 업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들 업체간 경쟁이 심해야 플랫폼이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내 업체들은 밑지고 팔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OS업체에 고통 분담을 요구할만한 위치가 못 된다"고 털어 놓는다.

SW플랫폼과 마이너 응용SW 업체간 관계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SW플랫폼 업체와 응용SW 업체간 위상 차이는 시장 점유율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ID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국내 SW시장에서 상위 20개 업체가 차지한 비중은 45.1%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국내 업체가 차지한 비중은 7.6%에 불과했다.

또 상위 20개 기업중 1, 2, 3위를 차지한 MS, 오라클, IBM은 모두 SW플랫폼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업체들이다. SW시장의 헤게모니는 플랫폼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한국은 '응용SW 중심주의'를 고수해야 하는가. 제도를 개선하고 사용자 인식만 바꿔놓는다면 응용SW 중심의 SW산업은 한국을 지식 기반 경제 국가로 탈바꿈시킬 것인가.

◆2002년 국내 패키지 SW 상위 20개 기업 현황 (출처: 한국IDC)

순위 업체명 매출액(억원) 시장점유율(%) 전년대비성장률
1 마이크로소프트 2,196 11.2 -5.3
2 IBM 1,145 5.9 1.1
3 오라클 1,093 5.6 -6.1
4 EMC 682 3.5 50.4
5 삼성SDS 430 2.2 -4.1
6 어도비 395 2.0 -9.1
7 핸디소프트 355 1.8 19.9
8 CA 264 1.3 51.2
9 히다찌 247 1.3 103.3
10 안철수연구소 224 1.1 -0.1
11 SAP 212 1.1 -51.1
12 PTC 210 1.1 2.3
13 베리타스 206 1.1 47.6
14 HP 202 1.0 21.4
15 한글과컴퓨터 190 1.0 -37.8
16 Dassault Systems 171 0.9 -9.3
17 티맥스소프트 157 0.8 268
18 BMC소프트웨어 157 0.8 -23.7
19 더존디지털웨어 146 0.7 -10.1
20 BEA시스템즈 141 0.7 -14.8
합계 45.1
국내업체 점유율 7.6
외국업체 점유율 37.5

◆응용SW 시장 위기감 증폭

플랫폼은 외국에 의존하더라도 응용SW가 한국SW 성장을 견인해 낼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응용SW 중심주의'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최소한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대로 가면 어렵다'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어려움을 '절망'이란 단어로 바꿀 수 있는 변수까지 등장, 응용SW 중심의 한국SW산업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먹구름의 진원지는 응용SW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SW플랫폼 업체들이다.

오라클은 이미 전사적자원관리(ERP)와 고객관계관리(CRM) 분야에서 세계 정상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ERP 업계에서 3위로 평가되는 피플소프트를 인수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낸 바 있다.

MS 역시 응용SW로의 확장이라면 오라클 못지 않다.

MS는 이미 메신저와 그룹웨어 분야에서 확실한 기반을 다져놓은 상황. 최근에는그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업체들의 활동 공간인 ERP, CRM,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 시장 진출을 선언, 단숨에 국내 응용SW업체들로부터 '경계 대상 1순위'로 떠올랐다.

두 업체의 이같은 행보는 플랫폼 시장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다음 '먹이감'으로 응용SW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세계 ERP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SAP의 미래도 어두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시장을 놓고 일어나는 글로벌 SW플랫폼 업체들의 변화는 국내 응용SW업체들에도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ERP 시장의 경우 중소기업(SMB) 사업 강화에 나선 SAP와 오라클에 의해 국내 업체들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업체가 강조했던 가격 경쟁우위도 무너진지 오래다.

이 때문에 한때 잘 나갔던 국내 ERP 업체 상당수가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겨우 해결한 업체들도 미래에 대해서는 확실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ERP 업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 국내 응용SW업체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글로벌 SW플랫폼 업체들의 신규 사업 진출 소식이 터져나오는 상황을 그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MS가 뛰어든다면 빨리 도망가는게 상책'이란 말 속에는 중소 응용SW업체들의 절망감이 녹아 들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무엇인가 혁신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응용SW업체의 상당수는 SW 생태계에서 멸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도를 개선하고 사용자 인식만 변화시킨다면 응용SW 중심의 한국SW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변화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SAP도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판에 세계 시장에서 이름도 모르는 국내 업체들이 방어하기에는 지금 벌어지는 '패러다임 쉬프트'는 너무도 강력한 상대다.

그럼에도 지금 존재하는 SW생태계 속에서 응용SW중심주의를 고수해야 하는가. SW생태계를 지배하는 플랫폼 분야 도전은 과연 '미션 임파서블'인가.

국내 업체가 SW플랫폼 분야에서 지분을 확보할 경우 지금의 SW 생태계는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그게 SW의 핵심인 OS라면 변화의 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판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국내 대표적인 ERP 업체인 영림원소프트랩의 권영범 사장은 최근 아이뉴스24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국내 SW업체 가운데 SK텔레콤의 10분의 1 만큼이라도 되는 회사가 있는가.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SW플랫폼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권 사장은 "SW플랫폼 도전은 국가 차원에서는 해볼만하다"고 밝혔다. 대다수 SW업체 CEO들이 권 사장과 의견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SW플랫폼 도전은 해야 하는 일이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인 '실행 파일'이 없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실행 파일'만 있다면 플랫폼 분야 도전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플랫폼 국산화, 또 한번의 도전

국가 차원에서 데스크톱OS와 DBMS 국산화를 위해 추진된 'K-DOS'와 '바다' 프로젝트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90년대 초 정부가 앞장서 개발한 국산 주전산기인 '타이콤'도 될 듯 하다 결국 사라졌다.

SW플랫폼 국산화를 위한 '실행 파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같은 시기에 정부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번 SW플랫폼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번에는 리눅스로 대표되는 공개SW 카드다.

명분은 한국SW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MS 등이 장악한 SW플랫폼 시장 판도를 리눅스로 흔들어 보자는 것.

윈도와 유닉스 플랫폼 기반의 현 SW 산업에서 국내 SW 업체들의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새로운 리눅스 플랫폼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자는 얘기다.

이의 일환으로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리눅스 배포판을 만드는 것은 물론, 공공 기관에서 리눅스를 사용하는 환경도 조성해 나가겠다고 한다.

이미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추진하는 2004년 사업 계획에서 리눅스는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만큼 리눅스를 중심으로 하는 공개SW 육성에 대한 정부 의지는 강력하다.

그러나 정부의 리눅스 지원 정책은 한편에선 한국SW산업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응용SW 중심주의'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IT 시장은 지금 공개SW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위험은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란 의견과 '현실성 없는 탁상행정'이란 논리가 뒤엉켜 '옳고그름'을 판단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과연 공개SW는 한국SW산업의 취약지대인 SW플랫폼 분야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것인가. SW플랫폼 국산화를 위한 또 한번의 도전이 심판대 위에 올랐다.

황치규기자 de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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