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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과 탄핵정국은 닮은꼴(?)


 

MBC 대하사극 '대장금'이 마지막까지 '얘기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을 팽팽한 긴장 속으로 몰아넣은 탄핵정국을 연상케하는 상황을 내놓으면서 또한번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최상궁 일파 몰락후 긴장감 유지를 위해 '중종과 민정호, 장금간의 삼각관계'란 카드를 내놓았던 '대장금'은 탄핵정국을 맞아 의외의 수확을 얻고 있는 셈이다.

특히 22일 방영된 '대장금' 53회의 '민정호 탄핵' 장면은 현재의 탄핵정국을 그대로 떠올리게 했다. 먼저 그 장면들을 감상해 보자.

<장면 1>

"전하, 이는 경국대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로…."

유교적 세계관에 매몰된 조정 신료들의 반발은 거셌다. 좌(의정), 우(의정)가 따로 없었다. 한때 치열한 권력투쟁을 전개했던 이들이지만, 더 큰 적 앞에선 거침없이 손을 잡았다.

의녀 '따위'에게 정3품 품계에 해당하는 대장금 칭호를 내리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경국대전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태 앞에선 정파간의 노선 차이 정도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장면 2>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조선조 최초의 여자 주치의 대장금. 예상 외로 완강한 중종 때문에 어쩔수없이 '대장금' 교지를 받아들었던 조정 신료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동부승지 민정호 탄핵이란 카드를 집어든 것. 역시 좌우세력이 손을 맞잡고, '민정호를 탄핵하라'는 주청을 올렸다.

아무리 왕이지만, 중종 역시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민정호는 '경국대전의 근간을 뒤흔든 죄'로 유배를 떠난다.

(여기서 '역사적 고증' 같은 고차원적인 논란은 잠시 잊도록 하자. 그냥 '문학적 상상력'에 흠뻑 빠져보자. 그게 어지러운 세상을 즐겁게 사는 방법 중 하나다.)

◆ '좌-우 합동탄핵'은 한민공조(?)

'대장금' 탄생의 밑거름이 됐던 동부승지 민정호. 그는 필생의 연인인 의녀 장금이 정3종 품계의 '대장금' 자리에 오르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중종을 알현한다. 의녀 장금의 재주를 살릴 수 있도록, 후궁 간택을 하지 말고 주치의로 삼으라고 당부한다. 그가 자신의 재주를 맘껏 펼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청한다.

그는 꿈을 이루는 데는 성공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는 실패한다. 우여곡절끝에 의녀 장금을 '대장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좌(의정)-우(의정) 세력의 합동 탄핵 주장으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된다.

이 때 동부승지 민정호가 뒤집어 쓴 죄목은 '경국대전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것.

이 부분에선 '기존 상식을 뒤흔들었던' 노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다. '노무현의 최대 치적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란 어느 논객의 평가처럼, '대통령 노무현'이란 컨셉 자체가 우리 시대 주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힘겹게 대통령에 당선됐던 그는 한 때 자신의 젖줄이었던 민주당이 주도한 탄핵 정국의 희생양이 됐다. 이 부분 역시 어릴 적부터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해줬던 우의정으로부터 버림받은 민정호와 오버랩된다.

◆ 대장금 게시판은 지금 '오나라 한나라' 반대 열풍

'대장금' 홈페이지(www.imbc.com/broad/tv/drama/daejanggum/index.html)의 게시판이 시끄럽다. 작곡가인 임세현씨가 '오나라'를 한나라당에 로고송으로 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 네티즌들은 '차떼기당이 오나라를 사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배재범씨는 '임세현씨 부끄러운 줄 아세요'란 글에서 "불과 한달여전으로 기억합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특정 정당에서 총선을 목적으로 이 음악을 사용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죠"라고 비판했다.

미국에서 대장금을 보고 있다는 임철훈씨는 "대장금과 한나라당…. 정말 상식적으로 봤을 때, 어울리나요"라면서 "이런 허접스런 뉴스를 접하고 나니, 그간 보아왔던 대장금에 대한 실망감과 나머지 내용을 보아야 하는지 갈등이 생기는군요"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의견들에 대해 '웬 정치 얘기냐'며 반론을 펴는 네티즌들도 간혹 있었다. 이들은 '정치는 정치고 드라마는 드라마'라며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네티즌들은 '오나라송'을 한나라당에 주기로 한 것은 잘못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민정호를 버린 우의정, 노무현을 버린 민주당

민정호 탄핵의 일등공신인 우의정.

그는 민정호가 어린 시절부터 후견인 역할을 해 왔다. 한 때는 개혁적인 인물로, 오겸호로 대표되는 구악들을 쓸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 공로로 우의정 자리까지 오른 그. 하지만 의녀 장금을 싸고 도는 민정호가 못마땅하기 그지 없다. 장금과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을 하는 민정호를 다시 궁궐로 불러들이면서, 그는 '사사로운 정'을 끊으라고 명한다.

하지만 그가 한가지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민정호가 연연하는 것이 한 때의 사사로운 정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그 것.

결국 민정호가 의녀 장금을 임금의 주치의로 만들려는 것을 알자, 자기 조직의 안위를 위해 민정호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리곤, 좌의정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정호 탄핵에 앞장선다.

오겸호와 최상궁 일파를 제거하는 데까지가 민정호와 우의정의 인연이었던 것. 새롭게 전개된 정국에서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다.

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간의 애증섞인 관계 역시 비슷한 점이 많다. 대선 당시부터 적잖은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이들은 함께 '정권 재창출'이란 대역사를 이룬 관계.

하지만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랐던 이들은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란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다.

◆ 민정호와 노무현의 탄핵

민정호는 자신의 연인인 장금에게 '임금의 주치의가 돼라'고 끊임없이 권고한다. '조선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라'며, 고민하는 장금의 등을 떠민다.

'시대와 불화하는' 여인 장금인만큼, '새 역사를 창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민정호의 시대 인식이었다.

'탄핵'은 이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조정 신료들로선 왕명에 밀려 '대장금 탄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밑거름이 됐던 민정호는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 민정호 역시 자신의 탄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스스로 몸을 던짐으로써, 새 역사의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중종에게 '의녀 장금을 후궁으로 하기 보다는 임금 주치의로 명해 달라. 대신 나를 유배 보내달라'는 주청을 할 때, 그는 이미 자신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시련을 의식하고 있었다.

민정호는 유배길까지 자신을 쫓아온 장금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직분에 충실하라'고 충고한다. "얼마나 힘들게 받은 품계인지 아십니까? 앞으로 더 힘들어야 할 겁니다."란 그의 절규에는 새 시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배어 있다. 이것이 그가 장금을 '연모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노대통령 탄핵 역시 정치개혁이란 화두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1년간의 그의 행보 자체가 '탄핵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각 정파별로 해석이 다소 다르다. 야당측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을 문제 삼고 있는 반면, 노대통령 측에선 '정치자금 수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서로의 주장이 상반되는 부분인만큼, 이 정도에서 끝내도록 하자. 나머지 얘기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 "대장금은 새로운 시대정신"

대장금으로 변신한 의녀 장금은 이미 개인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 정신이었다.

의녀 장금. 그는 시대와 불화하는 인물이다. 상식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물이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변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의녀 장금은 시대 정신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겸호도, 중전도, 왕도 아니었다. 그가 민정호를 연모했던 것도 비슷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의를 향한 믿음, 올바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꿈. 그것이 바로 장금이 민정호를 연모하게 된 '조건'이었다.

그가 스승을 제치게 될 '임금 주치의' 자리를 받아들인 것도 시대 정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새 시대를 향한 꿈 때문이었다.

최근 촛불집회 현장에 나가 본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탄핵무효' 시위가 결코 '대통령 노무현'을 향한 것만은 아니란 것을.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전부 '노무현 지지세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어쩌면 노무현 지지세력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촛불을 들고 나선 국민들이 끝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다. 노무현이란 한 대통령이 뿌린 '새로운 시대정신'이란 새 싹을 고이 간직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스로 유배를 떠난 민정호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탄핵 당함으로써 상황을 반전시킨 노대통령은 비슷한 점이 많다.

◆ 탄핵정국 수혜자인 '열린우리당과 대장금'

4.15 총선을 20여일 가량 앞둔 지금,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열린우리당이다. 정당 지지도 10%대에 머물던 열린우리당은 노대통령 탄핵 이후 지지도가 50% 수준으로 치솟아 버렸다. 요즘은 너무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를 걱정할 정도로 여유를 되찾았다.

물론 이같은 시청률의 공을 탄핵정국에만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대장금'의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반영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상궁 일가 몰락 이래 '중종-민정호-장금' 간의 삼각관계란 다소 비현실적인 대안을 내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이처럼 높은 시청률은 다소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민정호의 사랑을 탄핵정국과 교묘하게 결합시킨 제작진의 선택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 정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탄핵을 택하는 민정호의 사랑은, 숭고하다는 말만으로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감동적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탄핵정국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 열린우리당 역시 남다른 분발이 필요할 것 같다.

◆ 막 내리는 대장금…현실속의 '대장금'은 어떤 결말?

`대장금`은 그 동안 숱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사체발견이 지연되면서 내의정 정윤수의 자살조작을 조심스럽게 빗대는 경우도 있었다.

이광재 전 청와대 실장은 특검에 소환되면서 "내 처지는 '대장금'의 '한상궁'이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최상궁 같은 한나라당의 모함으로 수사가 시작됐다"는 것이 이광재 전 실장의 주장이었던 것.

그런가하면 도올 김용옥은 '며느리론'을 동원해 탄핵 정국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22일 TV 특강에서 "문벌집안에, 그래도 집안이 제대로 된 집에, 며느리 하나가 덜커덕 들어왔어. 원하지를 않았는데. 우리 아들하고 그냥 결혼을 해버린거야. 그런데 그 며느리가 집안도 볼 게 없고, 학벌도 없고, 인물도 별로 없고, 돈도 없어요. 게다가 똘똘하고 말 잘해요. 얼마나 뵈기 싫겠어요."라며 탄핵 정국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처럼 말도 많고, 시청자도 많았던 드라마 '대장금'은 23일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제작진의 예고에 따르면 장금과 민정호가 마침내 부부의 연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드라마는 23일로 막을 내리지만, 현실의 탄핵정국은 아직 진행형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그리지 못한 부분은 현실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현재로선 4.15 총선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번 탄핵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 조사 결과가 그대로 선거 결과로 이어지고, 헌재가 '기각' 판정을 내릴 경우엔, 탄핵 정국은 노대통령의 안정적인 정권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치 장금과 민정호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듯, 대통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행복한 만남'을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20일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또 다른 변수가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들이다. 선거 결과 역시 여론조사 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장금'이 종영된 이후엔 현실 속의 '대장금'이 어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겠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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