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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조선족과 사업 잘하기] (2)주재원


 

국내 보안회사인 H사의 중국 베이징 법인.

이곳에 가면 법인장 O씨를 제외하고 우리말을 할 수 있는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 20여명의 직원 모두가 중국의 한족(漢族)이었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중국 공기업 정도에 해당되는 B사와 전략적으로 제휴한 뒤 시장기반을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직원 사이에 단합도 잘 되고, 향후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을 내리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 회사는 일단 인건비를 중심으로 한 경비절감에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

대개 이 정도 규모이면 한국 주재원이 2명 이상이고, 조선족도 한두 명은 있다. 주재비용을 포함하면 한국인의 인건비는 중국인의 10배에 달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또 조선족은 대개 통역이나 관리 쪽의 업무를 맡기 때문에 한족보다 인건비가 2배 정도 많다.

한국 주재원 한 명을 줄이면 중국인 10명을 더 채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에 정착했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인력구조를 현지화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회사는 중국진출 초기부터 현지화에 성공한 셈이다.

H사가 이처럼 중국 진출 초기부터 현지화 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법인장 O씨의 몫이 크다고 봐야 한다. 그는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중국통'이다. 하지만 그가 중국에서 유학했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를 진짜 중국 전문가로 만든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O씨는 "중국인이 될 각오로 이 곳에 왔다"고 말하였다.

O씨의 경우 이미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이 돼 있는 편이지만, 그보다는, '중국인이 될 각오'를 하고 있는 O씨의 마음자세가 그를 진짜 중국 전문가로 만들고, 이 회사를 남들보다 일찍 현지화하는 밑거름이었다고 봐야한다.

문제는 국내 중소기업 대부분이 O씨 같은 적임자를 당장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부터 중국 진출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최근 하얼빈에 진출한 D사. 이 회사의 경우 대기업이라 볼 수 없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기업이다. 이 회사 중국 주재원 H씨.

그는 그야말로 중국에 관한 한 '까막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국에 온 지 달포 가량이 되었다. 통역 겸 비서로 중국 조선족 한 명을 채용하고 있으며, 사비를 털어서 중국 조선족으로부터 '중국 말'을 배우고 있다.

H씨는 O씨에 비하면 그야말로 '풋내기' 주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 전문가들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 중국 주재원의 경우 O씨보다는 H씨의 사례가 여전히 많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O씨처럼 사전에 중국을 조금 알았느냐, 아니면 H씨처럼 중국에 대해 '까막눈'이냐 하는 차이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H씨 같은 사람을 주재원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 만큼, 그리고 필연적으로 중국 조선족과 함께 해야하는 일이 많은 만큼, 그 범위 안에서 중국 주재원을 잘 선택하고, 잘 교육하는 데에 중국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선양(深陽)에 있는 국내 A사. 이 회사 주재원인 B씨 또한 H씨와 비슷한 사례다. 이 회사는 결국 중국 진출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편이다. 회사에서 초기에 대규모로 지원했지만 지금은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하였다.

문제는 간단했다. B씨는 당시만 해도 '중국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그럴싸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경영진을 설득하고 중국에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 사정은 한국의 사무실 책상 위에서 설계했던 것과 달랐다. 중국의 현실과 '페이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그 자신마저도 사업 추진의 기본적인 방향이 전혀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금 한국 회사와 중국 주재원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례다.

자! 그럼 중국 주재원을 선택할 때 고려 사항은 무엇일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O씨의 사례처럼 '중국인이 될 각오'가 돼있는 지가 첫 번째 고려사항이어야 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재원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진국에 나간 주재원의 경우, 대개 물가 차이로 인해 한국에서보다 화려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대부분 한국에서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 별도의 운전 기사와 가정부, 그리고 비서 등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찌 생각하면, 주재원의 경우 친구와 친지를 한국에 두고 타국에서 애쓰는 만큼 그런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충분히 들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게 주재원이 되고자 하는 근본 이유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몸에 배고, 또 탐닉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는 특히 주재원과 중국 현지인 사이의 괴리감을 불러오는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종합적인 관리 능력의 소유 여부도 중요한 잣대이다.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밤낮 없이 일하는 일벌레인 것이 중국 주재원으로서 나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중국 주재원으로서 더 적격이다.

한국 회사로서는 대개 중국사업이 '제2 창업'이나 '돌파구'라는 성격을 갖는다. 의미가 그만큼 크다. 따라서 회사를 책임진다는 자세와 함께 'CEO'로서의 소질을 갖춘 사람을 선택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중소기업의 주재원이 중국에서 하는 일은 어떤 전문적인 것보다 대개는 'CEO로서의 종합적인 일'일 공산이 더 크기 때문이다.

원만한 대인 관계 또한 핵심적인 관건이다.

중국 사업은 중국인과의 사업이다. 특히 대부분의 중소기업으로선 중국 조선족과 얼마나 잘 궁합을 맞추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그런데 사상부터 생활습관이나 언어까지 다른 그들과 궁합을 맞추는 것은 의외로 쉽지가 않다.

실제로 중국에서 실패한 사례를 보면 중국 현지인, 특히 통역이나 관리분야의 조선족과 궁합이 안맞아 어그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조선족에게 전가하는 주재원이 많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사업의 궁극적인 책임은 최고 관리자의 몫이다. 중국 조선족, 그리고 이들을 통해 중국 한족과 손발을 맞추는 거의 모든 책임은 한국 기업의 중국 주재원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중국 사업에 접근할 때에만, 어렵기만 한 중국 사업에서 서서히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언어, 인내심, 비즈니스 감각, 전문성 등이 요구되지만, 이들 요소는 위 3가지에 비하면 다소 부차적인 것들에 해당된다.

문제는 언어나 비즈니스 감각, 전문성 등은 파악하기가 쉬우나 위에서 열거한 각오, 통찰력, 인간성 등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 주재원을 선택할 때, 이 모든 것을 감안한 CEO의 종합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중국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첫 걸음이다.

그렇게 확신을 갖고 판단한 뒤에는 충분히 믿고 기다려야 한다. 한국 잣대로만 중국 사업을 단순하게 평가하려 한다면, 아무리 준비된 주재원이라도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중국사업이 어려운 것일 게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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