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HP가 소모품 시장을 두고 양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한잉크 업체와 손을 잡으면서 겉으로는 정품잉크 카트리지의 신뢰성을 발표하는 등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1일 한국HP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미국의 품질 평가기관인 퀄러티로직의 비교 연구결과를 들어 HP 정품 토너 카트리지의 신뢰성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비정품 카트리지는 정품 HP 흑백 레이저젯 카트리지를 사용할 때보다 총 출력비용을 두 배나 더 지불할 가능성이 높았다.
즉, 초기 구입 비용만 단순 비교할 게 아니라 출력품질, 재출력 비용,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정품 카트리지가 비정품 카트리지보다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게 이날 발표의 핵심이다.
경기불황에 소비자들이 값비싼 정품잉크나 토너 대신 재생잉크, 충전잉크, 무한잉크 등을 찾자 주 수익원인 소모품 시장을 지키기 위해 한국HP가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한국HP는 이날 HP 흑백 레이저젯 카트리지를 이용한 실험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향후 컬러 레이저 토너, 잉크젯 카트리지에 대한 실험결과도 발표함으로써 비정품 잉크 시장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는 한국HP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HP는 올 초 10여 개의 무한잉크 업체들로 구성된 잉크가공협회와 손잡고 '매직키트89' 판매에 나섰다.
매직키트89는 프린터헤드 2개, 검정잉크 2개, 컬러잉크 3개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으로, 가격대비 많은 용량을 내세우며 무한 잉크 시장에 대응해 한국에서만 출시된 것이다.
한국HP는 작년 2월 매직키트를 내놨으나 잘 팔리지 않자, 올 초 무한잉크 업체 채널을 통해 판매하기로 결정했고, 무한잉크업체는 지금까지 약 6천개의 매직키트89를 판매했다.
한국HP는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매직키트89 판매를 지속하는 한편, 그간 큰 성과가 없던 렌탈 사업에 대한 협력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국HP 관계자는 "불안한 무한잉크 사업에 염증을 느끼는 사업자에게 HP 정품을 판매하게 함으로써 사업전환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며 "무한업체와의 '공존'보다는 종국적으로 이들이 우리 공인 채널이 되는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속내야 어떻든 표면적으로 볼 때 한국HP는 무한잉크 업체에 '협력', '공존'의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한국 내 비정품 잉크 시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HP에 따르면 HP는 월 평균 10~15만 개의 토너 카트리지, 40~50만 개의 잉크젯 카트리지를 판매하고 있으며, 이 중 정품 토너와 잉크 카트리지의 점유율은 각각 78%, 70% 정도로 추산된다.
그간 대부분 영세한 규모에 프린터 제조업체에 종속될 수 밖에 없었던 무한잉크 업체들로서도 이를 좋은 기회로 여겨 수락했음이 틀림없다.
결국 한국HP는 필요에 따라 '공존'과 '비공존'을 넘나들고 있다.
무조건 무한잉크 업체 편을 들고자 함이 아니다. 그간 무한잉크 업체가 낮은 출력품질과 부실한 사후관리로 시장을 흐려놓은 게 사실이고, 최근 한국HP와의 협력도 무한잉크 제품 비중을 다소 줄이는 대신 시장에서 생존을 보장받겠다는 속내가 있다.
하지만 어찌됐든 몇년 새 무한잉크 시장이 크게 성장한 데는 무한잉크 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소비자들이 정품잉크 카트리지를 선택하게 하려면 이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정품의 신뢰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뭔가 특별한 게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건강한 공존과 경쟁이 무엇인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다.
/임혜정기자 hea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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