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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하드디스크가 아편이라고?


 

인간은 본래 무엇이던지 비운 채로 내어 버려두고는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21세기의 인간들에게 있어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핸드폰의 저장 공간을 채우는 일은 소유 욕구의 기본적인 해소이자 자기 존재의 확인을 위한 과정으로 발전할 듯싶다. - 본문 중에서 -

며칠 전 IT뉴스 전문사이트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뉴스레터를 읽는데, 휴대폰 신제품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뉴스레터는 머리기사로 1.5GB 급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휴대폰을 침 튀기며 소개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용량이면 휴대폰 속에 MP3 파일을 300개(곡당 5메가 기준) 이상 저장할 수 있으며, 사진 파일의 경우에는 최대 1천장을 담아 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시간 30분 분량의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휴대폰이 수백 기가 이상의 저장 공간을 갖게 되면, 사람들은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본질적으로 저장 용량이 커질 수록 사람들은 이 속을 무엇인가로 채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본래 무엇이던지 비운 채로 내어 버려두고는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21세기의 인간들에게 있어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핸드폰의 저장 공간을 채우는 일은 소유 욕구의 기본적인 해소이자 자기 존재의 확인을 위한 과정으로 발전할 듯싶다. 설령 고민하지 않으려 해도 휴대폰 제조업체나 이동 통신 업체에서 소비자를 그대로 둘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저장 공간을 어떻게 가지고 놀 것인가를 충분히 고민하도록 이끄는 것은 이들의 수익 창출과 직결되는 임무일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초 대용량 저장 공간이 가져올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주워 담기 위한 시기가 임박해 오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른 영화나 동영상 촬영이나 음악 파일 정도 만으로는 엄청난 공간을 다 채우기에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저장 공간을 충분히 채우기 위해선 뭔가 독특한 허접쓰레기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재미있고 쓸모 있는 일로 느껴지지만 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러한 일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필요와 무관하게 가능한 많은 정보를 모으는 것을 "지식"으로 둔갑시켜야 하고, 이에 충실한 소비자들은 새로운 삶의 유형을 창조하는 신 인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여,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많은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

이미 P2P서비스 이용자들에게선 이와 유사한 종속적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동영상을 다운받고 정리하며 수백 기가 하드디스크에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그리고 인터넷의 기본 정신인 공유의 원칙에 충성하여, 틈나는 자신의 소장 자료를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여 칭송을 받는다. 파일을 수집하는 모습은 내재적 소유욕의 실천이고, 공유로 인한 타인의 칭송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기록과 공유는 디지털 세계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자 장점이지만, 인간은 본래의 성품대로 인식의 깊이와는 무관한 무지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많이 아는 것이 지혜를 대신 할 수 없는 것처럼, 정보를 많이 소유한 것 또한 지식과는 무관한 일이다. 가뜩이나 인터넷으로 인해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액체와 같이 경량화된 정보와 지식의 의미가 이젠 무선 전파를 타고 공중에 둥둥 떠다닐 정도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닌지 싶다. 오염된 공기 속에서 우리의 폐가 병들어가듯, 독가스는 아니지만 공기 중에 서서히 비중이 높아져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산화탄소와 같이, 앞으로의 시대가 무의미한 정보와 기록으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정도의 저장 기술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 의미 없는 활동에 소중한 삶의 시간을 탕진하도록 부추기는 아편과 같아 보여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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