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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 방성석 이글코리아 사장


 

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코너입니다. 중앙부처 고위관료출신에서 벤처기업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솔트론 김정곤 회장의 비즈니스 감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김 회장의 창업기 역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리스크를 걸고,모험에 나서는 살떨리는 ‘올인’작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곤 회장이 바통을 넘긴 97번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은 방탄복,방검복 전문기업으로 유명한 이글코리아 방성석 사장입니다.

“20년넘게 한 우물을 파는 CEO입니다.비즈니스가 뭔지를 정말 몸으로 보여주는 경영자라 할수 있습니다” 원칙과 신뢰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모범적 CEO라며 추천했습니다.

오늘은 방탄복이란 독특한 사업아이템으로 20년넘게 국내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글코리아 방성석(56) 사장의 성공시대를 소개합니다.


이글코리아 방성석 사장은 30년간 한 우물을 파며,성공을 거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기업가다.

군복,군화 등 군수용품과 방탄복,방검복 등 안전산업용품이라는 특수한 사업아이템에 한 평생 매달린 끝에 이뤄낸 ‘성공시대’의 주인공이다.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우선 나이를 잊은 듯 넘치는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창업한지 22년쯤 되면 생각도 몸도 느슨해질 법도 한데,자신감과 의욕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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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코리아회사 소개서
쏟아내는 사업이야기는 화려한 청사진들 일색이다.그 오랜 세월 동안의 사업이야기를 풀어놓는 대목대목마다의 기억력은 전혀 막힘이 없다.

국제입찰에 관한한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듣고있노라면,“전문가란 이런 수준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든다.오랜 사업경륜에도 불구하고 반듯한 자세와 친절한 화법은 아직도 역동적인 글로벌 세일즈맨의 모습 그대로다.

방 사장은 해외사업을 오래한 탓인지,글로벌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있다.거래관행과 비즈니스파트너에 대한 자세,그리고 국제거래의 핵심 등에 대한 그의 설명은 교과서를 보는 듯 정통파의 느낌을 준다.

83년 설립된 이글코리아는 군수용품으로 국제입찰시장을 주도해온 전문기업.최근 방탄복,전자안전가방 등 안전산업용품으로 사업을 확대,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보이고 있다.

◆ 군납과장을 아세요?

방 사장은 정통 ‘섬유인’이다.그의 섬유인생은 74년 삼성물산을 거쳐 77년 효성그룹의 포트론이란 원단만드는 자회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된다.

고등학교,대학교에서 섬유를 전공한 그로서는 전공에 딱들어맞는 직장이었다.입사후 맡은 일은 국방부 군납담당. 국방부 조달본부를 통해 군복,군화 등 각종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일을 맡은 것.

방성석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통상 군납업무는 회사내 기피대상 1호의 한직.사람취급 해주지 않는 군인들의 세계,끝없는 로비와 툭하면 “사장오라,임원오라”고 불러대는 막무가내식 문화를 갖고있는 국방부의 업무스타일 때문.

방성석은 힘든 군납업무를 무려 7년간 담당하며 엄청난 실적을 쌓는다.혼자 국방부에 연간 30억원이 넘는 물량을 거뜬히 납품한데이어,82년에는 최초로 국제입찰에도 성공,1천만달러어치를 수주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82년말 그룹사내보 효성매거진에 ‘효성을 빛낸 얼굴’로 선정돼 소개될만큼 그는 군납영업에 관한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다.하지만 82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몰아닥친 대기업의 구조조정바람은 방성석의 인생항로를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신군부는 당시 재벌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선단경영에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강당에 과장급이상 간부 100명을 모아놓고 백지사표를 쓰라고 하더라구요” 며칠후 사장을 포함해 정확히 50명이 회사를 떠났다.

동양나이론에 흡수통합되면서 벌어진 살벌한 구조조정이었다.다행히 방성석은 30억원이 넘는 국방부 오더를 가지고 있던터라 생존할수 있었다. 당시 동양나이론이 주력해온 원사시장은 공급자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셀러 마켓’이었다.

배짱장사에 익숙한 동양나이론은 ‘체질에 맞지 않는’ 성가신 군납사업을 철수키로 전격 결정한다.방성석은 졸지에 ‘할일’이 없어졌다.심한 좌절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30대 중반의 방성석은 창업의 ‘창’자도 몰랐던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환경은 점차 그를 비즈니스의 세계로 내몰고 있었다.

방성석,그는 누구인가
49년,충남 아산생.한양대 섬유공학과(68학번)졸.삼성물산,효성 특판과장출신.83년부터 사업을 시작,22년째 한우물을 파고있는 국내 섬유산업계의 산증인. 52개국을 누비며 국제입찰시장을 개척해온 국내 유일무이한 군수물자 국제입찰전문가.매사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스타일.신뢰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섬유업계의 마당발.강한 추진력과 돌파력이 강점.
취미 사진(현재 대학에서 사진공부하고 있음)
운동골프
존경하는 CEO 예전에 사업을 같이했던 영국의 파트너.
친한 CEO 한재직 다성인터내셔널 사장,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염정순 한국토프론 사장
감명깊게 읽은 책읽은 책 '복수(마르크스저.사회주의 모순과 자본주의 장점 잘 비교). '화성에서 온 남자,금성에서 온 여자'(책을 읽고 아내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다)
10년후 모습이글코리아를 세계적인 안전산업용품 전문기업으로 키워낼 것이다.

◆ 운명처럼 다가온 사업,타고난 사업가

“군복위장지 100만야드를 오퍼낼 생각인데,가격을 제시해주세요.싱가포르,말레이시아등 동남아 수출물량입니다” 그가 효성에서 막 과장으로 진급,한창 열정적으로 일하던 81년 어느 여름날.

남대문 시장에 있는 작은 오퍼상에서 상담제의가 들어왔다. 이 기막힌 제안은 훗날 방성석이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밑져야 본전이었다.

군복지 100만야드는 당시로선 엄청난 물량이었다.엄청난 물량에 반신반의하며 파격적으로 깎아줬다.하지만 놀랍게도 6개월후 전투복 20만착 수출오더가 확정됐다.

싱가포르 국제입찰 수주에 성공한 것.82년,방성석은 그렇게 혼자서 싱가포르 국제입찰에서 무려 1000만달러(원화기준 100억원상당)어치를 수주,납품한 것이다.이후 현지 에이전트와 직접 계약,83년,84년 연속 입찰에 성공한다.

이런 와중에 군납사업을 접기로 결정하자,싱가포르 정부는 난리가 났다.이미 헬멧 배낭, 천막,수통 등 수십가지 군수품을 한국기업에 아웃소싱하고 있던 터에 납품회사가 사업을 접는다니,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방성석에겐 훗날 그의 인생항로를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바로 싱가로프 정부에서 “당신이 군수품납품을 계속하라”고 주문한 것.

싱가포르 정부는 공급사 동양나이론의 경우,담당자 방성석이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군수품을 한국내 전문업체로부터 소싱,납품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즉 방성석이 모든 것을 꽤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엄청난 행운이었다.방성석의 창업은 ‘회사 사업포기,고객사 요청’이라는 기막힌 두가지 사연이 맞물리면서 어쩔수 없이 떼밀려 시작하게 된다.

1,2년 하다 안되면 다시 취직할 요량으로 시작했다.83년 8월,명동 로열호텔 맞은편에 15평짜리 오피스텔을 얻었다.창업자금은 3천만원이 전부.이스라엘 이글사와 5대 5합작으로 설립했다.합작관계는 1년후 청산한다.

이미 국방부 군납업무에 진저리가 난 그는 아예 처음부터 국제입찰시장으로 눈을 돌렸다.하지만 사업은 간단치 않았다. 군수물자 납품이라는게 행정절차가 복잡한데다 일반무역과 달리 발주후 결제까지 1년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기 때문.

1년간은 정말 힘들었다.4명 직원 월급줄돈이 없어 늘 월말이면 돈꾸러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방성석은 이미 두가지 측면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에서 시간은 걸리겠지만,확실하게 구매의사를 밝혀온데다,방 사장 만큼 국내에서 최저가에 최고 품질의 군수제품을 소싱할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

한 해가 지난 84년,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10만달러짜리가 터지더니,85년에는 싱가포르 국제입찰에서 군복하나만으로 500만달러어치를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뛰어난 품질과 납기를 철저히 지키는 방 사장의 비즈니스 스타일에 대해 싱가포르정부는 크게 신뢰하기 시작했고,방 사장은 82년이래 내리 7년간 싱가포르 정부에 군수물자를 독점적으로 납품하는데 성공한다.

금액만도 매년 원화로 50억원에서 100억원대에 이를만큼,대박행진이었다.좋은 원단을 구하고,뛰어난 봉제공장을 찾기위해 불철주야 전국을 누비며 다녔다.

방 사장의 사업수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노하우는 협력사 관리.철저히 신용을 우선했다.그의 철학은 결제는 무조건 빨리,현금으로 해주자는 것.

“전직장 근무시 자금부서는 습관적으로 결제를 늦추더라구요.저를 믿고 가공을 해준 좋은 회사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고,이거는 아니구나 생각했죠” 하청업체엔 수출대금을 받는즉시 현금결제를 해줬다.

이글코리아하면 ‘현금 결제 잘해주는 회사’로 소문이 났다.수많은 회사들이 서로 일을 하겠다며 몰려왔다.그는 바이어한테는 극진한 접대를 하면서도 하청업체,공급자에겐 군림하는 방식대신 철저히 신뢰와 윈윈전략으로 나갔다.

신뢰가 구축되자,하청업체들은 품질과 납기를 정확하게 맞춰줬다.윈윈전략을 구사한 이유는 간단했다. “무역업은 납기가 생명입니다.전화 한통화로 곧바로 생산에 들어갈수 있어야 합니다.물론 품질은 최상으로 말이죠.그래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가격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하청업체가 수족처럼 움직여줘야함을 그는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70개 가까운 협력사는 늘 일산분란했다.

◆ 사선(死線)을 넘나든 4년여의 세월

“계약을 하면 곧바로 나이지리아 국방부 장관과 구매국장을 만나게 해주겠다.헌데 등록을 하기전에는 누구도 만날수 없다.그러니 등록비 2만5천달러를 먼저 내라”

나이지라아 공항에 내리자마자 대저택으로 안내된 방성석은 국제입찰전에 등록비로 2만5천달러를 그 자리에서 먼저내놓으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국제사기꾼에 걸려들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보스가 대통령의 정치자금모집책인데,워낙 극비사항이라 보안유지 때문에 집에서 만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총기로 무장한 사복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된 살풍경에 온몸이 굳는듯 했다.

잘못 대응했다간 폭행,린치를 서슴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기지를 발휘했다.한국의 외환관리법을 들이댔다.법상 여행자는 미화 5천달러이상을 가지고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서에 사전등록을 해야만 신용장을 개설한다는 내용을 명시해주면 한국 중앙은행의 특별인증을 받아 등록비를 보내겠다고 설득했다.겨우 빠져나올수 있었다.

89년 싱가포르 입찰물량은 중국의 저가공세로 결국 7년간의 연속 낙찰에 종지부를 찍게된다.이 때부터 방성석의 4년간에 걸쳐 52개국을 누빈 드라마틱한 국제입찰시장 개척기가 시작된다.온갖 국제사기꾼과 협잡꾼을 수없이 만났다.

방성석의 해외시장 개척기는 그야말로 가방하나 달랑 들고 홀홀단신 전쟁터와 오지,분쟁지역을 누비고 다니는 위험천만한 ‘무대포식 행군’이었다.

제품자체가 군수품이다보니,전쟁터인 중동과 분쟁지역인 남미,그리고 내전이 많은 아프리카 등이 주무대였다. 주로 스리랑카,방글라데시,파키스칸,요르단,아프리카,남미 등을 누비고 다녔다.

어느정도 무모했는지 몇가지 예를 보면 쉽게 짐작할수 있다.그는 국내서 특정국가 고객을 파악,출국하는게 아니다.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내전국가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나라 전화번호부를 북 찢어 군수란 의미의 ‘M’자가 들어간 회사에 무작정 다이얼을 돌려 걸리면 방문하는 식이었다.일면식도 없는 나라에 들어가,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찾듯 그렇게 전화번호부책 하나에 매달려 거래선을 찾아다녔다.

그는 궁하면 통한다는 의미의 ‘궁즉통’이란 말을 자주 한다.그는 이런 방법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응찰에 성공,480만달러어치를 수주하는 기적 같은 일을 일궈냈다.

방 사장의 시장개척은 매사 이런식이었고,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숱한 헛걸음은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그리크지 않은 키에 53㎏에 불과한 깡마른 방 사장은 휑한 두 눈을 부릅뜨고,그렇게 4년간 미친듯이 52개 나라를 이잡듯이 뒤졌다.

수없이 접한 국제사기꾼과의 한판승부,후진국 공항 공무원들에게 온갖 협박과 감금에 수없이 돈을 털렸던 기억,바로 옆 건물이 미사일에 폭격돼 반쯤 사라진 상태에서 밤잠을 자고,자신이 떠난지 불과 5분후 호텔로비에서 대형 폭탄테러가 발생하고,지하실에서 방탄복 검사 사격실험에서 오발탄이 눈앞을 스쳐가던 아찔한 순간.

방 사장은 22년간 사업을 하며,겪었던 아찔한 순간은 이제는 열거하기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단다.목숨을 부지하고 있는게 감사할 따름이란다.

“92년부터 95년까지 4년간 전세계를 누비던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뛰었던 시절이었습니다.40대 중반의 나이에 뭔가 찾아야한다는 절실함 때문에 정말 무모할 정도로 다녔지만,지금 생각해도 가슴뿌듯합니다”

◆ 뜻밖의 행운, 대박의 꿈

“찰스의 장례식 때문에 서울에서 런던까지 날라왔단 말입니까?” 나이지리아의 파트너인 난나는 영국 파트너 찰스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자 부리나케 달려온 방 사장을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뚫어라 쳐다보고 있었다.

“난나,난 자네가 존경스럽습니다.나이지리아에서 여기까지 오고 말입니다” 그날밤 둘은 장례식을 치르고 찰스의 집에서 찰스의 가족을 둘이서 같이 돌보자며 밤새 울먹이며 다짐했다.

백인인 찰스와 흑인인 난나,그리고 황인종인 방 사장 세명은 나이지리아 군납사업을 하는 같이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그야말로 형제처럼 지냈다.95년의 장례식장에서 확인한 인간적 관계는 97년 무려 1천만달러어치 수출계약을 성공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둘은 찰스의 친동생을 가르쳐 형이 하던 일을 하도록 했다.물론 그 이후 난나는 나이지리아 입찰물량에 대해 한푼도 깎지 않고 방 사장에게 오더를 줬다.

방 사장의 나이지리아 입찰성공은 93년,영국에서 날라든 한통의 국제전화로 시작된다. 그 전화는 방성석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다.

영국회사가 KOTRA 발행 주간지에 광고를 낸 이글코리아를 보고 전화를 한 것.방 사장은 국내 군수물자업체로는 유일하게 매년 코트라 매체에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미 나이지리아에서 1년가까이 헤매고 있던 방 사장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산으로 영국으로 날라갔다.그런데 영국 파트너가 나이지리아 군납을 좌지우지하는 실제를 직접 움직이는 진짜배기 무역상이 아닌가? 이런 행운이 있다니?

그는 국제사기로 유명한 나이지리아의 신용장을 어느나라 은행도 믿지 않는 점에 착안,대신 중간에서 신용장을 발급해주고 있었던 것.

물론 이런 독특한 매커니즘은 나이지리아내 공공기관의 투명하지 못한 거래관행,그리고 돈세탁과 커미션 등 복잡다단한 후진국 무역관행상 어쩔수 없는 구도였다.

진짜 에이전트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뚫는다해도 나이지리아와 직접 거래할수 없는 두가지 고민이 영국 파트너를 찾고나서 한방에 해결된 것.94년 첫오더를 받았다.150만달러어치 였다.거래은행에서 담보를 요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터졌다.

수출국이 나이지리아고,신용장을 개설한 영국은행이 지방의 너무 작은 규모라는게 이유였다.조흥은행 본점을 포함해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자포자기 상태로 도움을 요청한 외환은행이 접수해줬다.외환은행은 이건을 인연으로 1천만달러 수출에 이어 무려 3천만달러,원화로 350억원쯤되는 이글코리아의 신용장을 취급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97년 1천만달러,98년에는 무려 3천만달러어치를 나이지리아 정부입찰건을 수주,방탄복과 텐트,위장망 등 국산 군수제품 350억원어치를 선적하는데 성공했다.

무역하는 사람입장에서 3천만달러짜리 신용장은 평생 보기힘든 엄청난 규모.그야말로 대박이었다. 96년부터 매년 수출의 날에 500만달러,1천만달러 수출의 탑을 연달아 수상했다.

싱가포르 입찰을 통해 기업으로써 안정화를 이룬 이글코리아는 나이지리아 국제입찰을 통과함과 동시에 글로벌 기업으로 점프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방 사장은 이미 국내 독보적인 국제입찰전문가로 변신해 있었다.

이글코리아,어떤 회사인가
설립일1983년
종업원 11명
자본금2억원
연락처(02)3442-3866 www.eaglekorea.com
사업영역방탄복,방검복,방독면,전자안전가방,장철삼단봉,가스총 등 안전산업용품
경영목표세계 최고수준의 안전산업용품 전문기업으로 부상
매출목표 2005년 100억원

◆ 방성석의 성공론, 그리고 꿈

22년간 52개국을 돌며 국제입찰시장을 누빈 그의 성공론은 온 몸으로 세계를 누비며 터득한 체험담 그대로다. 자기만의 차별화한 길을 가야한단다.

“남들이 가기 싫은 곳,기피하는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남들이 하는 것을 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남과 다르게 하지 않으면 남과 다를수 없죠”

이유는 간단하다. “남들이 하는 시장은 잘되고,큽니다.당연히 경쟁이 치열하고 마진도 별 재미가 없죠” 그래서 경쟁자가 없는 일에 도전해야 크게 성공할수 있단다.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신뢰가 성공의 중요한 열쇠란다. “비즈니스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신뢰가 핵심입니다” 이렇듯 신뢰를 구축하면 그 네트워크속의 다른 파트너까지 연결된다고 귀띔한다.

그는 늘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라고 주문한다. 또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고 강조한다.그는 1%의 확률에 대해 늘 “Better Than Nothing”라고 표현한다.

“국제입찰은 정말 1%의 확률로 뛰어드는 비즈니스입니다.정말 뜬구름잡는 비즈니스죠.때문에 1%만 보여도 달려들어야 합니다.그리고 1년,2년 매달려야죠”

그는 벤처창업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스스로 안된다고 단정,시도하지 않으면 영영 안되는 겁니다.하지만,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험을 걸고 시도하다보면 1%의 확률이 100%의 확률로 변해 엄청난 결실을 거둘수 있는 거죠”

그는 오랜 세월 사업을 하며 배운 것은 비즈니스 파트너의 마음을 읽고 먼저해줘야한다는 것. “절대 하청업체라고 무시하면 안됩니다.하청업체가 물어봐야 겨우 가르쳐주는게 아니라 궁금할때쯤 먼저 알려줘야 합니다”

가려운 것을 먼저 긁어주는 자세는 비즈니스파트너에게 늘 감동을 줄수 있다는게 그의 지론.영국 파트너의 경우 심지어 답을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항에서 탑승직전 자필로 쓴 팩스를 보내온 것을 보고,정말 감격했다고 술회한다.

방 사장은 사업한지 22년을 맞는 베테랑이지만,아직도 열정이 넘쳐난다.99년 나이지리아 정권교체와 함께 입찰수주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정부 군수입찰에서 주력제품을 안전산업쪽으로 전환했다.

96년 구소련 몰락이후 탈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군수용품 수요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사업변신의 이유다.게다가 국내 군수용품 관련 공장들이 중국,베트남,인도로 대거 이전,이젠 국내에서 아웃소싱할 만한 제품이 거의 없단다.

그는 2000년이후 방탄복,방검복 중심의 안전용품시장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경비회사를 비롯해 경호,교도소,사격장,특수부대 등에 대거 납품하고 있다.청와대 경호실에도 방탄복을 납품하고 있다.

로비자금,이전투구가 싫어 지금도 국내 입찰시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그는 최근 국내 모대학과 공동으로 방탄복 신소재 개발에 착수했다.핵심소재를 수입에 의존해서는 차별화한 방탄복을 개발하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다.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그러려면 확실히 차별화한 제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방탄복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글코리아는 직원 1인당 연매출액이 10억원대를 넘어선다. “이글코리아는 앞으로 더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쪽으로 발전할 계획입니다”

안전산업용품 시장에 관한한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으로 키워,위험과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싶단다.전세계 수십개국에 지사를 뒀던 이스라엘 이글사는 이미 망해 없고,이글코리아만 유일하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맨주먹으로 세계 군수용품 국제입찰시장을 석권하며 국제입찰전문가로 우뚝 선 이글코리아 방성석 사장.22년간 한우물을 판 그는 또한번 세계 산업안전용품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50대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진정한 벤처기업가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방 사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학사과정중 국제입찰에 관한 서적이 전무한 사실을 발견하곤,96년 ‘국제입찰을 잡아라’란 책도 발간했습니다.이 책은 국제입찰의 바이블처럼 불리고 있습니다.현재 경제학 박사과정중에 있기도 합니다.중앙대에서 3년과정의 사진학을 1년째 공부하고 있습니다.집무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은 전문가빰치는 수준급 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모두 방 사장 자신의 작품들입니다.

/김광일 객원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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