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에 따른 대형 투자은행(IB) 탄생이 예고되면서 이에 맞설 은행과 보험권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금융투자회사와 보험, 은행간 일전을 앞두고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기싸움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5일 관련업계에따르면 자통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에 대비한 은행과 보험권의 겸영허용 등 규제완화 요구가 본격화될 조짐이다.
먼저 은행권은 증권업 라이선스 허가와 위탁매매 허용 등을 정부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더해 파생상품 취급업무에 대한 규제 완화까지 요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또한 보험사들 역시 지난 2005년부터 추진해온 어슈어뱅킹(보험회사가 은행업을 겸하는 것) 허용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일단 증권사처럼 지급결제만이라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같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진다면 은행, 보험 및 증권사들은 '무한경쟁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심지어 규모등에서 상대적 열세인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는 자통법이 되레 악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은행, 수익성 악화…증권업 넘보기
날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은행권은 증권업 진출 등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최근 예대마진은 2.94%포인트까지 축소됐다. 이는 2004년 10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예대마진은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로 예대마진의 축소는 은행의 수익구조도 그만큼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은행은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가 4.5%에 달하는 고금리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보통예금의 금리인상, 고금리 특판예금 판매 등 고객 붙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대마진은 급격히 축소된데다 자금이 증권사로 쏠리면서 자금조달용 양도성예금증서(CD)나 회사채 발행 등은 되레 늘고 있다.
이 탓에 그동안 은행권은 자통법 통과를 반대해왔다. CMA만으로도 타격이 적잖은 데 증권사에 지급결제마저 허용되면 보통예금 이용자 급감 등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우려되는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자통법 통과로 은행권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이번엔 반대로 은행의 증권업 진출 등의 요구가 거셀 전망이다.
실제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비치진 않았지만 은행협회는 조만간 증권사의 위탁매매 허용을 정부에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탁매매 의존도가 56%(증권업협회 추산)에 달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가 지급결제망에 참여하는만큼 역으로 은행도 위탁매매영업이 가능해야하는 것 아니냐"라며 "증권사가 그렇게 주장하는 투자자 편의를 위해 은행에서도 주식투자가 가능해야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기업은행 등은 증권업 라이선스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KGI증권 인수전에서 보듯 중소형 증권사의 인수합병(M&A)이 어려워지면서 신규 증권사 설립 허용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정부도 '전향적 검토' 등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긍정적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주목된다.
◆보험사 "어슈어뱅킹 허용해달라"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판매)허용으로 은행에 본업을 내줘야했던 보험사들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방카슈랑스의 반대개념인 '어슈어뱅킹'을 허용해줘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은 보험상품, 펀드를 팔 수 있고 증권사도 자통법을 계기로 신규사업이 가능해졌는데 유독 보험만 불리한 상황"이라며 "만약 보험에서도 예적금 상품을 팔 수 있게 해준다면 만기보험금을 다시 예적금에 유치해 수익모델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어슈어뱅킹이 어렵다면 일단 지급결제만이라도 허용해줘야 형평성이 맞는 것 아니냐"라며 "매년 은행에 지급해야하는 수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당장 이 문제만이라도 해결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요구에 다소 회의적던 정부 입장에도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어슈어뱅킹이 궁극적으로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급결제 참여 여부도 금융결제원 가입을 사실상 은행이 허가하는만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자통법 시행을 앞둔 관련 법제정비 과정에서 보험업의 은행·증권업 허용 문제 등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혀 파장을 예고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5일 "보험업법을 개편, 보험사가 겸영할 수 있는 금융업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현 정부내 개정안을 마련하겠다"며 자통법에 이은 보험판 '빅뱅'을 예고했다.
◆'밥그릇 뺏기'식 곤란…파열음
그러나 이처럼 교차진입 형태의 경쟁체제 개편까지는 '텃밭'을 지키려는 업계 갈등 등 마찰도 적잖을 조짐이다.
당장 증권업계는 이같은 요구에 반발하고 있다. 보험사보다 은행권 요구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황건호 증권업협회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자통법은 자본시장을 통합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지 서로 간의 영역을 빼앗기 위해 마련한 법이 아니다"라며 위탁매매 허용 등 움직임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 회장은 또 증권사 신설 요구에도 "장기적으로는 규제를 완화해야하는 게 맞지만 당장은 증권사가 많은만큼 중장기적으로 바라봐야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고 "자통법으로 증권사가 은행 고유업무를 빼앗는 것도 아니고 보험사들도 지급결제망을 갖춰 신규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안재만기자 ot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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